[도시농업] 연희문학창작촌서 예술인텃밭 일구는 안현미 시인애정 쏟은 작물 자라는 걸 보는 즐거움… 외로운 현대인에 꼭 필요
"올해에는 작년에 심었다 잘 안 자란 가지와 호박, 오이를 빼고 내버려 두어도 잘 자라는 것들만 골랐어요.(웃음) 아, 여긴 백합을 심었어요."
연희문학창작촌의 살림꾼인 안현미 시인이 흙 틈으로 동그랗게 솟은 구근을 지나치지 못하고 쓰다듬는다. 언뜻 보면 떨어진 솔방울 같은데, 심은 사람 눈에는 벌써 활짝 핀 꽃인가 보다.
보기에만 예쁜 것은 아니다. 입주 작가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엄연한 텃밭이다. 작년 박찬세 시인은 입주 작가들이 연희문학창작촌에 대한 단상을 '연희는 다'로 표현하는 '포토 아카이브'에서 "연희는 텃밭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만큼 텃밭 채소들을 쏠쏠히 이용한 모양이다. 물론 그 채소들을 거름 삼아 자신의 시를 길러냈을 테고.
예술인텃밭은 도시의 삶과 농사가 만난 풍경 중 하나다. 이렇게 소박한 만남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태어난다는 것을 안현미 시인이 들려주었다.
햇볕이 잘 드는 땅은 아니어서 생명력이 강한 것들로 골랐어요. 상추는 뽑아 먹으면 그 자리에서 또 나고, 고추는 한 그루에도 많이 열리죠.(웃음) 그리고 저와 친한 것들이요.
많이 길러보신 작물이요?
네. 집 옥상에 스티로폼 상자, 페인트 통 등을 놓고 작물을 심었었거든요. 10여 년 전부터 했는데, 지금은 옥상이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서 못하고 있어요.
당시엔 어떻게 시작하셨는데요?
제가 강원도 출신이라 농사짓는 건 많이 보고 자랐어요. 농촌에 살고 싶지 않아서 서울에 왔는데 결국 옥상에나마 작물을 심게 되더라고요. 아마도 뭔가 기르고, 자라는 걸 보고, 에너지를 얻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동물을 기를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개도 길러 봤지만 돈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가고(웃음) 여행 갈 때는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니까 제 생활과는 맞지 않더라고요.
기르셨던 작물 중 기억나는 것이 있으세요?
도라지요. 강원도 집 뒤란에서 꽃 핀 게 예뻐서 가져 왔는데 한 해를 넘기지 못했어요. 해바라기를 심은 적도 있었어요. 거제도에 사는 친구가 짚 앞마당에 있던 해바라기의 씨를 보내줬었거든요.
옥상 텃밭에 얽힌 추억도 있을 것 같은데요.
혼자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상추가 많으면 사람들을 불러 고기를 구워 먹곤 했죠.(웃음)
앞으로 길러보고 싶은 작물은 뭔가요?
감자, 고구마, 옥수수요. 강원도에서 하도 많이 먹고 자라서 평소엔 시큰둥한데 감기 걸리면 먹고 싶더라고요.(웃음) 그 이유가 텃밭 가꾸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아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면서 외롭거나 아플 때는 감자와 텃밭이 필요한 거죠. 일종의 예방주사라고나 할까요?(웃음)
예술인텃밭에서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나요?
작년에 씨 뿌렸을 때 팻말을 안 세워서 어디에 배추가 있고, 어디에 상추가 있는지 몰랐어요. 올라오는 떡잎들을 보면서 이게 뭘까, 저건 뭘까 궁금해 했었죠. 비슷했던 떡잎들이 제 모습으로 자랄 때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딸기와 고추, 토마토 등이 첫 열매를 맺었을 때요. 언제 익나, 언제 먹을 수 있나 하는 마음에 매일 들여다봤어요.(웃음)
원래 매일 들여다보면 더 더디게 익는 것 같잖아요.(웃음)
그러게요. 어릴 때 뒤란에 딸기 익는 것만 기다리다가 결국 안 익은 걸 따 먹고 할머니에게 혼났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일상 속에서 작게나마 농사를 시도해보려는 분들에게 응원의 말씀을 해주세요.
농사는 사이버화된 현대사회에서 접촉이 결핍된 외로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애정을 쏟은 만큼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봄에는 싹이 돋고, 가을에는 열매가 열렸다가,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는 등 계절에 따른 텃밭의 변화도 자연의 순환을 느끼게 해줍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