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뜨면 OST로 돈벌고… 각종 예능프로는 가수들 홍보 무대

SBS <시크릿 가든>
'8시간 33분'

시청률 조사기관 TNmS는 한 가구당 TV 시청 시간이 10년 전보다 49분 늘어났다고 밝혔다. 2001년에는 7시간 44분이었다. 젊은 시청자 층일수록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채널의 구분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1990년대 중반 케이블 채널이 개국한 이래 TV는 다양한 볼거리를 내세우며 대중을 끌어들였다.

하루에 9시간 가까이 TV를 시청하면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또 얼마나 될까? 늘어난 TV 시청 시간만큼 노출되는 음악도 많아졌을 것이다.

드라마 OST는 선택이 아닌 필수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KBS <아이리스>
1992년 가수 김국환은 이 노래 하나로 긴 무명생활을 청산했다. 그런데 그 계기가 특이하다. 그의 무명생활을 청산하게 만든 건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 해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엄마(김혜자 분)는 카세트 버튼을 누르며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를 흥얼거렸다.

<사랑이 뭐길래>는 한국 드라마 역사상 평균시청률이 59.5%로 1위를 기록한 드라마다. 그 속에서 울려 퍼진 '타타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국환은 '타타타'로 KBS <가요 톱 텐>(4월 넷째 주~5월 셋째 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드라마가 안겨준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20여 년 전 OST라는 말이 생소했을 때조차 드라마 삽입곡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0년대 중반 음악 프로그램들이 점차 사라지고 드라마의 시대가 열리면서 시작된 현상일 수도 있다.

드라마 속 음악들은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더욱 상승시키며 덩달아 성장했다. 단순히 삽입이 아니라 OST형태로 앨범을 만들어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드라마 OST의 영역은 더욱 확장돼 한 드라마에 여러 장의 앨범이 출시되기도 한다.

올초 선풍적인 인기로 '현빈 신드롬'을 낳았던 은 디지털 싱글 형태로 OST만 7장을 내놓았다. 백지영, 성시경, 김범수, 현빈 등이 직접 참여했다.

MBC <세바퀴>
드라마의 성공은 OST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백지영이 부른 '그 여자'와 '그 남자'는 폭발적 반응으로 각종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석권했다. 백지영은 2009년 의 주제곡 '잊지 말아요'부터 MBC <로드 넘버원>의 '같은 마음'에 이어 <시크릿 가든>까지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OST로만 20억 원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드라마 제작자와 OST 관계자들은 상부상조의 원칙을 따라간다. 드라마를 위해 최고의 가수를 영입해 OST를 작업하고 인기 드라마에 신인 가수를 내세워 '윈윈' 전략을 짜는 것이다. 드라마의 인기가 높을수록 더 많은 가수들이 참여할 수 있다.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부터가 큰 화제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제작자들은 드라마의 시작 전부터 OST 홍보에 열을 올린다. 특급 가수들의 섭외 자체가 드라마 홍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신인가수들의 등용문으로 여겨졌던 OST시장도 톱가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인가수들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지만, 유명 가수들이 OST 작업을 꺼리지 않으니 계약 조건은 한결 유연해졌다. 가수들은 사전에 앨범에 대한 계약을 맺는가 하면 음원 수익에 대한 몫도 챙긴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도 손해를 볼 것이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 연예기획사의 관계자는 "가수들이 앨범 활동을 하고 쉬는 기간에도 OST 작업 제의가 들어오면 가능한 한 참여하고 있다. 한두 곡만 참여해도 돼 부담이 적고, 인지도까지 챙길 수 있다"고 밝혔다.

KT뮤직 측도 "드라마 OST는 신인 가수의 앨범이나 기성 가수의 신보에 비해 안정적이고 시청자들의 충성도도 꽤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예능은 가수들의 구원투수?

"여러분 음원 많이 들어주세요. 예능을 이만큼 하는데 음원을 너무 안 들어주셔서 반응이 폭발적이지 않아요."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TV를 통해 한 말이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 아이돌 가수는 이날 앨범의 타이틀곡 한 소절을 들려주며 "음원을 많이 들어 달라"며 앨범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 스타들은 자신의 신곡을 한 소절씩 불러가며 '앨범이나 음원 좀 사주세요'라는 말을 했다. 앨범을 노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KBS <해피투게더>, , MBC <놀러와> 등의 프로그램은 가수들이 출연하면 그들의 음악을 홍보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아예 무대 중앙에 자리를 마련해 노골적으로 '홍보시간'을 할애한다. 아이돌 스타뿐만 아니다. 신인가수, 기성가수 할 것 없이 '노래 좀 들려달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자존심 따위는 애초에 집어넣어 버린 지 오래다. 이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자 줄을 선 가수들은 대기명단에만 수두룩하다. 가요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가수들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지상파 방송 3사에는 가수들만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등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평균 5% 내외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인다.

가뜩이나 공급은 많고 수요가 적은 판에 정식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면 그 대기시간은 미지수다. 그래서 시청률이 저조한 프로그램에 한참을 줄을 서서 여러 번 출연하느니, 20%의 시청률을 넘나드는 예능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하는 게 더 낫다는 얘기가 나온다.

음악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던 MBC <음악여행 라라라>나 SBS <김정은의 초콜릿> 등이 대중음악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그나마도 사라져버렸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은 평일 심야 시간대와 주말 프라임 시간대를 장악하고 있으니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겐 기회의 땅일 수밖에 없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은 게스트 섭외를 쉽게 할 수 있고, 가수들은 그 땅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가수들이 알아서 앨범 홍보나 소위 '개인기'로 시간을 때워주니 제작진으로서는 1석2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세바퀴>의 경우 아예 10분 정도는 노래를 듣는, 아니 홍보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했을 정도다. 가요 프로그램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10대 여자 아이돌 스타들의 민망한 퍼포먼스도 꾹 참고 봐야 한다.

선정성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음반 관계자들은 "이런 자리도 없어서 난리"라고 말한다. <세바퀴> 같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역시 대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기다려야 한다.

한 음반제작자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곡을 선보였던 가수가 다음날 음원 사이트에서 반응이 나타났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며 "최근 7080세대 가수들이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도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는 새 앨범 홍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시봉도 결국 TV의 덕을 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음반 시장이 예능 프로그램에 더 의존하는 이유는 또 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잠깐씩 보여주는 뮤직비디오 때문. 불과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2개의 뮤직비디오가 전파를 탄다. 한 편당 30초도 방영되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음반 관계자들에겐 귀중한 시간이다. 가수의 이름과 노래의 타이틀이 동시에 올라가 음반 홍보를 할 수 있다.

KBS <비타민>, <스펀지 0>, <상상오락관>, <안녕하세요>, <연예가중계>, <위기탈출 넘버원>, <해피선데이>와 MBC <무한도전>, <우리 결혼했어요>, <꽃다발>, <웃고 또 웃고>, SBS <일요일이 좋다>, <놀라운 대회 스타킹>, <밤이면 밤마다>, <스타부부쇼 자기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은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제작진 책상에는 앨범들이 넘쳐난다.

"주말에 누구의 뮤직비디오가 나오던가요?" 월요일마다 각 방송사 예능국 앞에 앨범 홍보를 하는 매니저들이 모여 하는 첫 마디다. 예능 프라임 시간대에 전파를 탄 영광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게 음반제작사간 자존심 싸움이기도 하다.

음반제작자 겸 작곡가 주영훈은 "가요 프로그램은 시청자 층이 10대로 한정돼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들은 그 연령대가 다양하다. TV를 통해 대중음악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공간이 예능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씁쓸하지만 이것이 가요계와 음반시장의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