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팬티가 더 섹시하다."

최근 한 백화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속옷 매장을 방문한 남성 고객 200명 중 51%가 '가장 매력적인 여성의 속옷 색깔'로 화이트를 꼽았다. 정열의 붉은 브라, 귀여운 핑크 팬티, 고혹적인 검정 티 팬티 대신 남자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하얀 빤쓰?

물론 구체적인 상황설정이 필요하다. 배우 신세경이 시트콤의 식모 역할로 떴을 때 그가 신인 시절 찍었던 베드신이 새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영화 <오감도> 중 고등학생들의 스와핑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친구와 애인을 맞바꿔 하루 밤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청순하고 음울한 얼굴은 뻗어오는 낯선 손길 아래에서 두려움과 망설임으로 굳어 있다. 떨리는 남자의 손가락이 그녀의 다리 아래로 끌어내린 것은 하얀색 면 팬티. 곧 이어 앵글에 잡힌 여자의 종아리가 꿈틀거리며 잔뜩 구겨놓은 것도 새하얀 면 시트다. 온통 하얀색에 둘러싸인 그녀는 숫처녀보다 더 자극적인 피해자다.

다리만 걸면 넘어지는 흰색

하얀색은 왜 섹시할까. 흰색의 이미지는 대부분 자연에서 왔다. 다른 어떤 색의 침범에도 굴하지 않고 먹어버리는 검정색과 달리 흰색은 연약한 노랑과 회색의 공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옅은 자극 하나도 감추지 못하는 흰색의 히스테릭한 깨끗함은 늘 정신적 순결함과 연결돼 왔다. 죄 없는 어린 양, 처녀의 웨딩 드레스, 모든 공격성을 포기한 백기,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구성하는 치아, 몸을 정화하는 흰색 알약.

'색의 부재'라는 물리적 특성 때문에 흰색은 종종 천상의 어떤 것들과 이어지기도 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영혼이나 귀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흰색을 뒤집어 쓰고 있다.

<색채와 문화 그리고 상상력>의 저자 신항식 박사는, 그러나 하얀색의 자연적 의미인 깨끗함, 순결, 천상 같은 것들은 인간이 만든 문화 속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주목할 만한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자연에 의해 동기화된 하얀색은 인간의 역사에서 지나치게 익숙하다. 익숙해졌다는 것은 진부해져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얀색의 운명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순백의 화이트는 질렸다. 지금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의 머리 속에서 하얀색이 어떻게 발전되었고 무엇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다. 신세경에게 흰 팬티를 입힌 이유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얀 속옷이 더 섹시한 이유

신항식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육감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육감, 즉 섹스 어필(sex appeal)은 '신체의 은폐와 노출을 조절하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매혹과 지각의 게임'이다. 여기 육감의 대표 주자로 핑크색 팬티가 등장한다.

그는 능동적이고, 의도로 가득하며, 생생하게 살아서 머리를 굴린다. 유혹의 매뉴얼을 모조리 꿰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팬티 속 제모까지 완벽하다. 반면 육체적인 것은 별 생각이 없다. 멀끔히 누워 있는 나체, 아무 것도 계산되지 않은 최소한의 은폐에 적합한 색깔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하얀색이다.

흰 속옷을 입은 여자는 무드 등을 켜고 기다리는 여자가 아닌 혼자 잠드는 여자다. 색도 없고 의도도 없는 여자, 그 수동적 태도가 남자의 능동성을 부추긴다.

허슬러란제리코리아
이마에 '오염 가능'을 써 붙이고 대책 없이 누워 있는 순백의 여자는 '더럽힐 수 있다'는 권리와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고 이는 포식자와 관중 모두의 뒷목을 뻣뻣하게 긴장시킨다. 흰색 속옷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의 난잡도는 핑크색 속옷에 감히 비할 바가 못 된다.

흰색의 무구함은 침범과 관음의 욕구를 부채질하다 못해 성도착과도 결합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흰 팬티 페티시즘이 있다는 사실은 그의 사후에 아내인 프리실라에 의해 밝혀졌다.

그녀는 남편의 취향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침실에서 온갖 종류의 하얀색 란제리를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 중 일부가 사라지면서 혹시나 타의로 공개될 것을 대비해 잡지에 이 같은 사실을 미리 밝혔다.

"엘비스는 작고 하얀 팬티를 입은 여성을 좋아했다. 그런 여성과 섹스를 하고 싶다는 구체적 욕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보면서 즐긴다."

90년대 초 일본에 등장한 브루세라 숍은 여중생과 여고생의 '중고 속옷'을 파는 곳으로 유명했다. '세탁한 팬티는 얼마, 이틀 입은 팬티는 얼마'하는 식으로 오래된 팬티일수록 높은 값을 받았고 최고가는 소변 또는 그 이상의 것이 묻은 팬티였다.

주목할 것은 브루세라 숍을 비롯해 일본의 무수한 페티시즘 상품 중 최고 선호 컬러가 흰색이라는 사실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일본 열광>이라는 책에서 왜 그렇게 일본인들은 하얀 빤쓰에 열광하는가에 대해 분석했다. 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팬티는 모두 흰색인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넘어질 때 보이는 속옷 색깔도 흰색, 짱구 엄마의 팬티도 흰색, 길거리에서 파는 귀여운 얼굴에 큰 가슴을 가진 전투 복장의 소녀들도 단합이라도 한 듯 흰색 팬티를 입고 있다.

그는 '스미마셍'이 입에 밴 일본인들의 어딘가 억눌린 듯한 태도에서 하얀 팬티와의 연관성을 찾아냈다. 저자에 따르면 진정한 근대화, 즉 제대로 된 자기 주장을 할 만큼 성숙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일본 사회는 아직도 '하면 안돼'의 사슬에 묶여, 성질을 드러내는 것도 성욕을 드러내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질척대는 섹스와 대척점에 서 있는 깨끗한 흰 팬티는 "안 할 테니까 보기만 할게"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른바 스스로를 괴롭히고 억제하는 '도덕적 마조히즘'의 발현이다.

"하얀 빤쓰를 소비하는 행위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몸짓이다. 상대방과의 성관계가 아니다. 빤스의 색이 하얀색이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하얀색은 그 빤스 속의 성기에 대한 상상을 방해한다. 하얀 빤쓰 속에는 여자의 성기가 없다. 남성 자신의 뿌리 깊은 정신적 상처가 있을 뿐이다."

돌아온 화이트, 순결을 벗어버리다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백양 메리야쓰'와 '쌍방울 빤쥬'를 필두로 한 흰색 속옷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하향세를 탔다. 속옷에 패션의 개념이 스며들면서 노란색, 연보라색, 분홍색 등이 표준색의 자리를 차지했고 이어 검은색, 빨간색, 호피무늬 등 점점 더 일반적인 속옷 색깔과 동떨어진 화려한 컬러들이 속옷 시장을 점령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다시 흰색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바퀴를 돌아 거울 앞에 선 화이트의 표정은 이전 같지 않다.

얼마 전 국내에 들어온 허슬러 란제리는 세계 최대 성인 콘텐츠 회사인 허슬러의 래리 플린트 대표가 직접 주도해 론칭한 브랜드다. 과연 성인 사업계의 대부답게 헛웃음이 나올 만큼 도발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 브랜드에서 최근 메인 컬러인 블랙과 핑크를 잠시 미뤄 두고 주인공으로 내세운 컬러가 바로 화이트다.

화이트가 얼마나 섹시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순백의 색채는 온갖 농염한 모습으로 변신을 꾀했다. 전면이 비치는 화이트 슬립부터, 세로로 된 스트랩으로 간신히 가슴 중앙 부분만 가리는 디자인, 등이 휑하게 파인 백오픈(back open) 슬립, 심지어 스트리퍼들이 팁을 받는 용도로 허벅지에 끼우는 머니 밴드까지 있다.

이토록 교묘한 매력의 화이트를 옷 속에서만 즐기는 것이 안타깝다면 이번 봄 여름 돌체앤가바나의 컬렉션을 주목할 만하다. 도미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자신들의 25주년 기념쇼를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온통 화이트로 장식했다.

그렇잖아도 비치는 흰색 천에 레이스, 망사까지 자유롭게 사용한 그들은 중요 부위는 어김 없이 하얀색 속옷으로 가려 놓아 섹시하면서도 소녀 같은 화이트 란제리 룩을 완성했다.

이 정도면 쏟아지는 햇살을 무색하게 할 완벽한 봄 나들이 룩으로 손색이 없지 않을까? 단, 브라는 풀컵 브라, 팬티는 마릴린 먼로가 입은 것처럼 허리부터 덮는 레트로 스타일 핫팬츠여야 좀더 실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사진 제공: 허슬러 란제리 코리아 (http://www.hustler.co.kr)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