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선발, 극장 모니터링, 최고작 선정까지 '내 손안에 있소이다'

'슈퍼스타 Kim' 오디션장의 배우 심사단
"연출님 앞에서 하는 것보다 더 떨려요."

4월 18일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열린 뮤지컬 <김종욱 찾기> 오디션 현장. 얼굴 두껍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배우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느 오디션 장소와는 다르게 여기에는 연출가, 음악감독, 프로듀서 등 제작사 관계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전문가들 뒤로는 수많은 관중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수첩을 들고 배우들의 면면을 채점하고 있는 이들은 그 순간만큼은 관객이 아닌 평가단으로 객석에 앉아 있다.

배우도 내 손으로 뽑는다

배우 심사단 앞에서 오디션을 받고 있는 지원자들
2003년 초연 이후 지난해 영화로까지 제작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모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유독 관객 참여 이벤트를 많이 벌여왔다. 그러다 단순한 이벤트 차원이 아니라 아예 일반 관객을 공연 제작에 참여시키는 실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것이 지난해 처음 시작된 '주주총회'와 '슈퍼스타Kim'이다.

이 두 이벤트는 방송가의 오디션 열풍보다도 앞섰던 관객 참여 프로그램으로 한동안 화제가 됐다. '주주'의 자격은 간단했다. <김종욱 찾기>를 단 한 번이라도 본 관객들이다. 주주가 된 이들은 관람료 할인을 넘어선 특혜를 갖는다. 새로운 김종욱과 기타 배역을 선발하는 자리에 배우 심사단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배우 심사는 전문가의 영역인 만큼 일반 관객들도 이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프로듀서 체험' 워크숍이다. 특히 두 번째 해를 맞은 올해는 주주총회 대신 더 많은 일반 관객들에게 이 기회를 확대했다.

올해 '슈퍼스타Kim' 시즌2를 진행한 스토리P의 송명희 과장은 "온라인을 통해 선발된 관객들은 연출가, 음악감독, 안무가에게 4주간 공연에 대한 기본을 배웠고, 특히 이 워크숍을 통해 배우 캐스팅의 노하우를 습득해 오디션에서 1인 1표를 행사했다"고 설명했다.

최종 오디션에 올라온 김종욱 역의 배우 후보는 5명. 워크숍을 거쳐 최종적으로 오디션에 참석한 68명의 배우 심사단은 신인배우 라준을 김종욱 역에 낙점했다. 배우 심사단에 참가한 관객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주인공을 6월부터 무대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서울어린이연극상의 관객평가단이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다.
비주류 장르의 사활도 우리에게 달렸다

사실 관객을 작품이나 극장 운영에 끌어들여 장기적인 관객 저변을 넓히는 것은 공연계에선 오래 전부터 해왔던 전략이다. 특히 뮤지컬과 같이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닌 비주류 공연물에선 관객의 관심을 지속시키는 제도가 필수적이다.

2006년부터 관객평가단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춘천인형극장은 이들을 주로 모니터링을 위한 목적으로만 활용하지만 극장 운영 전반에 관한 의견도 받고 있다. 춘천인형극장의 박병규 운영팀장은 "인형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지원자의 수는 많지 않은 편"이라면서도 "그래도 해마다 10~15명 정도의 평가단이 꾸준히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춘천인형극장의 정기공연 작품을 관람한 후 공연평가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무료 관람이라는 소박한 혜택밖에 없지만, 이들은 저변이 넓지 않은 인형극의 수준 개선이라는 더 큰 역할에서 보람을 찾는다. 박병규 팀장은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점들을 이들의 의견에서 알게 돼 극장 운영과 각 극단의 작품에도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1995년부터 관객평가단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아시테지(ASSITEJ,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도 이들을 통해 비주류 장르인 아동청소년극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아시테지 여름축제(AssiFe 2011)의 일환인 서울어린이연극상에서 관객평가단은 전문 심사위원과 함께 최고 인기상을 선정하고 있다.

서울어린이연극상 관객평가단
어린 관객이라고 해서 심사도 간단하고 유치할 것이라면 오산이다. 어린이 관객이 많은 장르의 특성상 이 평가단은 성인과 어린이가 2인 1팀을 이룬다. 4~5편의 심사작 중 한 편이라도 놓친 팀은 그 순간 심사 자격이 박탈된다. 예치금 제도도 있다. 관람료를 할인받을 목적으로 참가하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아시테지의 도상원 홍보팀장은 "관객평가단은 대외적으로는 행사 홍보의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심사에 공정성을 갖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며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 상업성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개선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고작 선정도 우리에게 맡겨라

하지만 역시 관객평가단의 백미는 무엇보다 최고작을 선정하는 기쁨에 있다. 4월 19일부터 시작된 제32회 서울연극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30인의 관객평가단을 운영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행사 집행부가 바뀌면서 서울연극제가 그동안 연극인들만의 축제였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고 관객평가단 제도를 도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연극제의 관객평가단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연극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연극(아마추어 포함) 2편 이상 참가 경험이 있는 사람만 지원할 수 있다는 응모 자격 때문이다.

춘천인형극제 관객평가단 모습
축제 기간 동안 봐야 할 공식참가작도 8편으로 적지 않은 숫자다. 하지만 평가단으로서의 자격 기준이 까다로운 만큼, 이들에게는 온전히 자신들의 평가만으로 최고 인기상이 선정된다는 보상이 주어진다.

서울연극협회의 이보은 씨는 "지난해 이들의 등장으로 공연단체에서도 긴장한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귀띔하며 "앞으로 서울연극제가 시민과 함께하는 행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관객평가단에 지원과 보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5월 7일 개막을 앞둔 광주 평화연극제는 특별한 한 해를 기다리고 있다. 원래는 매년 10월에 열리다 5·18 민중항쟁 31주년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올해만 행사를 앞당겼기 때문. 또 4년째 이어오고 있는 관객평가단은 이번에 이 행사의 최고상이자 유일한 상인 '평화연극상'을 선정해 내년에 광주의 정신을 상징하는 브랜드 작품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주최 측은 "올해 행사의 주제가 '5·18, 무대에서 길을 물었다!'인데, 과연 관객평가단이 무대에서 '불편한 진실'에 대한 어떤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영화 한국연극협회 광주지회장 인터뷰

- 4년 전 어떻게 관객평가단을 시행하게 됐나.

우리 축제는 규모도 작고 경연도 아니다. 하지만 약간의 긴장감을 조성할 필요는 있었다. 궁리 끝에 시민과 관객의 눈으로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전문가의 이성적인 시각보다는 관객들의 감성적인 눈이 더 나은 작품을 선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 '31'이라는 숫자, 그리고 평가단의 구성도 독특하다고 들었다.

매년 30명 전후의 평가단을 선발하다 올해는 5·18 민중항쟁 31주년을 맞아 31명의 평가단을 구성했다. 또 매년 광주시장이나 정부기관장들이 '평화'라는 이름으로 상을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도 했다.

그래서 우리 관객평가단에는 시민들만 있는 게 아니라 적절한 평가를 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이 다 포함됐다. 일반 관객들을 비롯해 전문가 그룹, 기관장들까지 다 포함된 진정한 의미의 관객평가단이라고 할 수 있다.

- 시행 후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시행 전에는 기존 전문가 그룹의 선정에 불만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그런 게 사라졌다. 재미있는 것은 전문가들이나 시민들의 선정 결과가 대개 같다는 것이다(웃음). 공정성을 얻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