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공연·특별기획전·영상감상회 등 행사 다채

1936년 최승희의 발랄한 단발머리
2011년은 한국 근대무용의 여명을 연 무용가 최승희(1911~1969년)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 근·현대 예술역사상 나름의 족적을 남긴 인물이 숱하게 많지만 그 중에서도 최승희는 특출하다. 그는 현대무용을 배운 조선 최초의 여인으로 신무용이라는 새로운 춤 사조를 창출하고, 세계무대로 진출해 한국춤을 인정받은 세계적인 무용가이다.

최승희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는 그의 업적과 예술이 더욱 평가받고 선양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승희를 둘러싼 친일, 친북 논란의 이념적 굴레에 갇혀 그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재평가하는 데 외면하거나 주저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한국 근대무용의 선구자로서 최승희의 예술세계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이념적 잣대에 의해 희석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더욱이 그를 둘러싼 친일, 친북 행위가 논란의 여지가 있고, 그의 예술 업적을 상쇄시킬 정도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최승희는 1920년대 일본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문하에서 춤을 익힌 뒤 귀국해 무용연구소를 차리고 공연을 하면서 후학을 양성했다. 한성준 문하에서 전통춤을 익혀 민족의 정서가 담긴 작품창작에 주력한 최승희는 1937년 미국을 경유해 유럽, 남미로 진출해 1940년까지 150여 회의 공연을 가졌다.

1931년에 발표한 현대무용 '빛을 구하는 사람'
1939년 파리 국립극장 공연 때는 피카소, 마티즈, 로망 롤랑 등 세기의 예술가들이 최승희 공연을 관람하고 격찬하기도 했다. 최승희는 세계무대에 '동양의 무희'로 이름을 알리며 중국의 매란방, 인도의 우다이 상카르와 더불어 아시아 출신 세계적인 무용가로 인정받았다.

1942년 동양발레위원회를 설립하고 일본, 중국의 전통을 소재로 한 작품창작에 주력하던 최승희는 이 무렵 만주, 중국 일대로 황군위문공연을 가졌는데, 이것이 후일 친일무용 비판의 빌미가 됐다.

8·15 해방을 맞아 북경에서 귀국한 최승희는 1946년 월북,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해 무용극 창작에 주력하면서 북한무용 초기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1951년 북경 중앙희극학원에 최승희무도반을 개설해 조선춤을 전수하는 한편, 종합예술로서의 경극을 독자적 무용체계로 정립해 중국무용 발전에도 기여했다.

최승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무용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최고의 위치에 오르지만 1950년대 후반 남편 안막의 몰락과 함께 그 역시 1960년 이후 북한 무용계 중심에서 밀려난 뒤 1969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1936년 11월 공연 팜플렛에서 사용된 최승희의 야외무용
최승희에 대한 연구는 월북무용가라는 이유로 40년 넘게 논의조차 되지 못하다 1988년 월북예술가들에 대한 해금조치가 단행된 이후에 시작됐고,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에 포함되는 등 9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연구성과가 조금씩 가시화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최승희를 다룬 단행본과 석박사 및 학술지 논문이 본격적으로 나오고, 그의 삶과 예술세계가 다큐멘터리, 영화, 뮤지컬, 전시회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 2006년부터는 강원도 홍천군이 주관해 '최승희 춤 축제'와 함께 최승희 관련 포럼과 심포지엄이 해마다 열렸다..

그러나 일본군 위문공연 등의 행적으로 2009년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포함되면서 최승희 재조명 작업이 주춤해졌다. 지난 5년간 최승희 선양사업을 이끌어온 홍천군과 (사)최승희기념사업회는 지난해 광복회와 보훈단체들이 최승희의 친일행위를 문제삼자 올 1월 최승희 선양사업을 중단하기로 발표했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폭격 등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면서 월북한 최승희를 선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최승희 탄생 100주년이 소리 없이 지나갈 것 같은 상황에서 최승희의 예술적 업적과 의의를 다채롭게 조명하는 두 행사가 주목받고 있다.

1930년대 '학의 춤'
우선 광주시립미술관이 4월 7일부터 8월 21일까지 개최하는 <불꽃처럼 바람처럼, 무희 최승희>전이다. 전시는 최승희 사진 150여 점과 회화 작품, 공연 리플렛, 서적, 언론보도 기상 등 아카이브자료와 영상물 등 희귀자료들을 통해 최승희의 삶과 예술세계를 다각도로 조망한다.

다음은 '최승희 탄생100주년기념회'와 국내 유일의 춤자료관 연낙재가 '자유와 상상, 그리고 발견'이라는 주제로 최승희를 새롭게 조명하는 행사다. 오는 10~12월 기념공연을 비롯해 최승희의 예술적 업적과 존재론적 의의를 집중 탐사하는 학술심포지엄, 미공개 최승희 자료를 중심으로 한 특별기획전, 영상으로 보는 최승희의 삶과 예술, 최승희 춤메소드 워크숍, 최승희 전집 발간사업 등이 이어진다

기념공연은 최승희의 초기 모던댄스 스타일의 작품이 한국 현대무용의 대모 육완순 선생과 전미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재안무로 무대에 오른다. 이어 최승희의 제자 김백봉을 축으로 양성옥(한예종 교수) 등 2~3세대로 이어져 온 신무용의 예맥과 현재를 살필 수 있는 공연을 펼친다.

최승희가 출생한 11월 24일 개막해 3일간 이어지는 '근대화·세계화 담론과 최승희'라는 주제의 학술심포지엄은 한국 근대무용의 여명을 열고 세계무대로 진출해 춤의 근대화와 세계화를 모색한 최승희의 예술적 업적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한다.

특별기획전인 '자유와 상상'전에서는 최승희의 창작정신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자서전, 공연포스터, 팸플릿, 작품사진 등 미공개 희귀 무용자료를 볼 수 있다.

최승희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여정과 예술활동을 담은 영상들도 선보인다. 10~12월 열리는 영상감상회에서는 최승희가 월북 후 안무해 북한 최초의 천연색 영화로도 제작된 민족무용극 '사도성의 이야기'를 비롯, 최승희 춤메소드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조선민족무용기본' 등 미공개 자료영상들이 상영된다.

최승희 춤메소드 워크숍에서는 한중일 3국에 존재하는 최승희 춤메소드를 조망하고 한국, 일본, 중국의 최승희 제자들이 참가해 춤메소드 전수와 함께 증언하는 기회도 마련된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기념회 추진위원장인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춤선구자 최승희의 삶과 예술세계, 무용사적 업적을 폭넓게 되짚어 보고, 나아가 한국무용사에 있어 그의 존재론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광주시립미술관)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