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예능, 뮤지컬, 연극, 오페라 등 만능엔터테이너로 종횡무진

가수가 뮤지컬을 한다. 오페라도 한다. 연기는 기본이고 예능은 옵션이다. 가수들을 일컬어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하는 말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공연예술계나 방송사에서는 이제 가수들이 없는 무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뮤지컬계와 영화계에서 티켓 파워로 부상한 가수들이 있고, 예능이나 드라마에선 시청률 보증수표 가수까지 등장했다.

선한 눈의 소유자 이승기는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인 KBS <해피선데이-1박2일>에 출연해 4년 동안 부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드라마 SBS <찬란한 유산>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연속 히트시키며 배우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CF계를 평정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승기라는 콘텐츠 하나가 가요뿐만 아니라 예능, 드라마, CF에까지 먹히는 도미노 법칙이 성립된 것이다. 현재 배우나 개그맨, MC 중에서 이런 도미노 법칙을 실현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가수들이 만드는 대중문화

KBS '해피선데이' '1박2일'
영화, 드라마, 예능, 뮤지컬, 연극, 오페라를 보면 어떤가. 가수들이 나오지 않는 문화콘텐츠는 없다. 이제 가수는 '멀티 플레이어'로서 장르의 벽을 허무는 존재가 됐다. 이들은 노래, 연기, 춤 등 다양한 재능을 갖추고 대중문화의 선봉에 서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TV에서이다. 예능과 드라마에서 가수들의 활약은 장르를 파괴하고 콘텐츠를 양산해낸다. '가수 겸 배우'나 '가수 겸 예능인'으로 구분되던 시나리오는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얼마 전 종영한 tvN <오페라스타 2011>은 가수들이 오페라, 즉 성악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중가수들이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며 실력을 평가받고 탈락하는 방식이 불편하긴 했지만 가수들이기에 쉽게 장르의 구분을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예능과 결합한 가수들의 활동은 그들을 대중과 매우 친밀하게 만들었다. 현재 지상파 방송 3사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의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KBS <해피선데이>의 '1박2일'은 이승기, 은지원, 김종민으로 가수가 구성원의 반을 차지한다. SBS <일요일이 좋다>의 '런닝맨'에도 김종국, 개리, 하하가 자리를 잡고 있다.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엔 윤종신, SBS <밤이면 밤마다>는 탁재훈, 정용화, 대성(빅뱅), 유이(에프터스쿨)가 포진했다. SBS <퀴즈클럽>도 토니와 한그루가 MC로 참여한다.

SBS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윤은혜
새로 편성된 KBS <자유선언 토요일>의 '불후의 명곡2-전설을 노래하다'는 아이돌 가수 아이유, 창민(2AM), 요섭(비스트), 효린(시스타), 예성(슈퍼주니어), 종현(샤이니)이 추억의 명곡들을 재해석해 노래를 부른다. MBC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도 신승훈, 이은미, 김태원, 김윤아가 멘토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드라마 영역도 마찬가지다. KBS <동안미녀>와 <로맨스 타운>에는 각각 장나라, 성유리(핑클)가 주인공으로 극의 중심에 서 있다. MBC <짝패>의 서현진(밀크)과 <최고의 사랑>의 이희진(베이비복스)도 출연 중이다.

SBS <49일>과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도 각각 남규리(씨야)와 윤은혜(베이비복스)가 있다. 재미있는 건 이들 모두 주조연급으로 드라마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캐릭터들이라는 점.

전직 가수라는 호칭을 쓰는 이들도 있지만, 앨범 발매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는 이들도 있다. 왠지 가수들에게 크로스 오버가 쉬운 듯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시장은 이미 가수들이 터를 잡고 '뮤지컬 배우'라는 호칭을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5~6월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에도 가수들이 넘쳐난다. <원효>에서는 이지훈이 원효대사로 출연한다. <헤드윅>에도 김동완(신화)이 뮤지컬계에 첫 출사표를 던졌고, <오디션>에도 문희준(H.O.T)이 나섰다.

KBS '동안미녀'의 장나라(왼쪽에서 세번째)
<모차르트>는 김준수(JYJ)가, <스페셜레터>는 김태형(클릭비)이 준비 중이다. 일찌감치 뮤지컬계로 자리를 옮겨 이제는 '뮤지컬 배우'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지킬 앤 하이드>의 소냐와 <몬테크리스토>의 옥주현(핑클)도 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가수가 되기 전의 연습생 과정은 가요계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며 "이 기간 동안 노래, 퍼포먼스, 연기, 춤 등을 기본적으로 배운다. 그러면서

다양한 끼와 재능을 겸비한 지망생들이 양산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수가 된 이들은 배우나 개그맨, 아나운서 등보다 더 자연스럽게 장르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지상파 방송사 PD는 "가요계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그 넘쳐나는 공급은 각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 필요한 자원이다"며 "공급이 많다 보니 가장 빠르고 쉽게 섭외할 수 있으며, 다양한 재능을 겸비한 사람들이 많아 언제든지 수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쯤해서 MBC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가 가진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가수다'는 가수가 예능 감각과 연기, 춤이 아닌 가창과 감성만으로 대중을 대한다.

만능엔터테이너로 군림하는 비교적 젊은 가수들과는 매우 차별적이다. 이들이 혼신의 힘으로 노래하는 모습은 대중을 감동시키고 눈물샘을 자극한다. 아이돌로 대변되는 지금의 가수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고전적 의미의 '진정한 가수'가 한편에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 잘하는 가수, 노래만으로 대중을 감동시키는 가수

들의 전면적인 부상은 '세시봉'의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수 권하는 사회

'서바이벌 오디션=가수 만들기'

대한민국이 '가수되기' 프로젝트에 들썩이고 있다.

Mnet <슈퍼스타 K>, MBC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1, 2>, KBS 는 가수 지망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슈퍼스타 K>는 시즌 3을 맞으며 3년 차가 됐고,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은 조만간 시즌2에 돌입한다.

도 밴드라는 장르에 차별화를 뒀을 뿐 가수를 발탁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해외에서까지 예선을 거쳐 단 한 명의 우승자를 선발한다.

특히 <슈퍼스타 K 3>의 경우 지난 4월 오디션 응시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서면서 폭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지난해 <슈퍼스타 K 2>는 오디션 접수 66일(3월 1일~5월 7일)만에 100만 명을 돌파했는데 이보다 더 빠른 증가 추세이다. 6월 28일 오디션 접수를 마감하면 200만 명이 넘는 응시자가 모여들 것으로 예상된다.

<위대한 탄생>도 온라인 오디션 등으로 눈길을 끌며 청소년부터 중장년층에게까지 참여하고 있다.유튜브를 통해 진행된 온라인 오디션에는 50개 국 이상에서 지원자들이 모여들었으며, 세계 각국에서 120여 팀이 오디션에 참여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1000여 팀의 밴드가 참가 신청을 한 상태다. 밴드가 4~5인으로 구성된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4000명 이상이 오디션에 참가하는 셈이다. 오는 6월 3일 첫 방송되는 tvN <코리아 갓 탤런트>도 가수 지망생들에게 열린 무대이다. 제작진은 이미 <슈퍼스타 K 3>에 지원한 사람들도 중복지원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는 가창실력을 장기로 보여줄 지원자가 많을 것임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영국판 <브리티시 갓 탤런트>의 경우 폴 포츠나 수잔 보일 등 '신의 목소리'를 가진 지원자들이 스타가 됐다"며 "개그, 만담, 마술, 악기 연주, 동물 조련 등 다양한 부분에서 지원자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가장 보편적인 건 노래 실력일 듯하다"고 말했다.

방송사들의 '가수 만들기' 열풍으로 전 국민 20명 중 한 명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각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풍년 속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오디션이 아니다.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일 뿐이다. 제작진은 진정한 가수를 선발해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