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와 일반인의 차이는 취향과 분리에 달려

이제 한풀 꺾일 기세이기는 하지만 최근 대중문화의 최대 이슈는 역시 <나는 가수다>이다. 무림의 고수를 가리듯 최고의 가수를 뽑는다는 '이상한' 기획 의도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출연 가수들의 혼신의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늘 논란을 불러 일으키게 마련이다.

'음이 높게 올라간다고 잘 부르는 거냐', '음색에 개성이 없다면 좋은 가수라고 할 수 있냐', '무엇보다 감정전달을 잘 하는 게 최고 아니냐'

미성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목소리에 선천적으로 깔린 비애감을 꺼려하는 사람도 있으며, 감정의 파고가 너무 크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수많은 취향이 난무하는 속에서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최고의 가수를 평가하는 게 가능한가?"

맛도 마찬가지다. 좋은 음식은 두 말할 것 없이 맛있는 음식이다. 그럼 맛있는 음식은 무엇인가. 신맛은 무조건 싫다는 사람, 누린내가 없으면 고기가 아니라는 사람, 쫄깃한 식감에 질겁하는 사람. 개인의 혓바닥 위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화학작용과 그로 인해 피어 오르는 행복감에 점수를 매기는 것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로 맛있는 음식은 지금도 매년 선정되고 있다.

최고의 음식은 최고의 혀에

맛이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에 속하는 이유는 뇌가 인간을 속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감각을 받아 들일 때 그것은 자료화되어 이미 뇌 속에 지어진 수 만 개의 서랍 중 하나로 들어간다.

가령 눈을 가린 채 파르메산 치즈와 토사물의 냄새를 맡는다면, 인간은 부탄산으로 가득한 두 물질을 거의 구별하지 못한다. 어느 서랍에 넣어야 할지 판단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눈을 뜨는 즉시 치즈는 치즈의 서랍으로, 토사물은 토사물의 서랍으로 들어간다. 치즈의 맛은 비로소 먹음직스러운 꼬린내로, 토사물은 다시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역한 냄새로 돌변한다.

맛은 입이 말해주는 진실이 아닌, '입이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다. 머리 속에 가득한 경험의 합이 맛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맛이 '개인적'이라는 것은 이런 뜻이다. 저마다의 삶을 살아온 개인은 저마다의 맛을 느낀다.

이것은 한편으로 맛을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된다. 경험의 합은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맛을 더 자주 대할수록 서랍은 점점 더 빼곡해진다.

게다가 세포는 마치 근육과도 같아서 자주 사용할수록 오래 살아 남는다. 특정 맛과 냄새에 반응하는 세포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시든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뇌는 우리가 먹는 대로 조성된다.

다양한 음식으로 골고루 개발된 뇌를 가진 사람의 맛 평가는 평생 김치찌개만 먹고 산 사람의 그것보다 당연히 더 들을 만하다. 과학자들은 특정한 맛과 냄새에 대한 민감성의 개인차는 무려 1000%까지 벌어질 수 있음을 밝혀냈다.

맛있는 음식에 랭킹을 매길 수 있다는 말은, 누구나 동의하는 최고의 음식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보는 단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고로 맛은 주관적인 동시에 평가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맛을 둘러싸고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는, 자신의 미각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부딪히는 지점은 보통 정해져 있다.

평양냉면, 캐비어, 고수, 김연우. 이들의 공통점은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취향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르고서는 즐길 수 없다. 엘본 더 테이블의 최현석 셰프는 "음식은 평가될 수 있다"면서도 취향과 평가를 혼동하는 것을 경계했다.

"개인 취향이라는 게 분명히 있죠. 격투기를 예로 들면 화려한 뒤돌려차기를 좋아하는 선수도 있고, 로 킥만 계속 해대는 선수도 있어요. 하지만 취향은 승부와는 무관해요. 로 킥만 계속 차서 이긴다면 그 사람이 챔피언이에요.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승부를 인정 못하면 안 되죠. 일반인과 미식가의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취향과 맛을 분리하지 못하는 반면, 미식가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그 맛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에요."

진짜 음식 비평을 하려면?

취향과 맛을 분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쓴소리를 던진다.

"대중은 자신의 입맛이 미개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15kg 들이 한 통에 3만 원짜리 된장을 사용하고, 흑미를 섞어 12시간 지난 밥맛을 감추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입맛을 신뢰하고, 거기에 더해 함부로 평까지 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는 이야기다.

"순대국밥집을 갔는데 국물이 이상할 정도로 진하다고 해보자. 원래 돼지 뼈만 고아서는 그렇게 나올 수가 없다. 주인이 닭 발을 넣은 것이다. 닭 발을 넣어 끓이면 콜라겐이 우러나와 국물이 쫀득해진다. 음식 비평이란 그 비결을 알아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것을 비결로 볼 것이냐, 속임수로 볼 것이냐 까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마카로니 마켓의 추찬석 지배인은 아예 푸드 크리틱(food critic)이 전문가의 영역에 한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남 걱정하는 것을 그토록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왜 음식에 대해서는 비평하지 않을까요?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자신 없는 맛 있다'와 '생각 없는 맛 없다'가 넘쳐나는 현실이죠."

그는 음식 평론가도 문학 평론가와 다름 없이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음식에 대한 감각과 지식, 주방에 대한 이해, 요리 실력, 와인에 대한 정보, 언어(양식당의 경우), 역사까지 여기에 포함된다.

"자존심이 있는 레스토랑이라면 블로거들의 가벼운 평이나 홍보에 목을 매지 않습니다. '셰프의 혼이 담긴 음식' 같은 모호한 표현으로 대중을 미혹시키는 게 아니라 깊은 내공을 통해 전문가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진짜 음식 비평가 아닐까요?"

다행히 경험이 재능을 뛰어 넘는 것은 미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셰프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는 영국인들의 미개한 입맛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5인 이상의 손님이 올 경우 주방장이 전적으로 메뉴를 제안하는 셰프 스페셜을 주문하도록 했다. 그는 결국 영국인들의 미각을 한 단계 위로 올려 놓았고 전설적인 셰프로 남게 됐다.

'나도 미식가'라고 말하고 싶은 이 중 늦은 사람은 없다. 경험의 축적은 민감성을 높이고, 그 경험을 통제하는 건 자신이다. 저녁 메뉴를 선택하는 것은 본인이 아니냐 말이다.

참고 서적: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