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재환 감독식당이 TV맛집으로 소개되기까지 과정 찍은 다큐멘터리"TV맛집은 조작이다"… MBC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TV에 나오는 맛집이 진짜 맛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기실 TV를 보는 사람 대부분이 했을 것이다. 화면 속에 불가피한 듯 스쳐 지나가는 간판과 상호, 음식인지 장난감인지 모를 희한한 콘셉트의 메뉴, 어색하게 박수 치는 손님, 그리고 무엇보다 최고라고 추켜 세우기에는 너무 수가 많은 맛집들.

온갖 의뭉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누구도 열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이 방문을 활짝 열어 젖힌, 아니 아예 부숴버린 이가 있으니 바로 <트루맛 쇼>의 감독 김재환 씨다.

엉터리 식당이 TV에 맛집으로 소개되기까지의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 쇼>는 올해 5월 초 전주영화제에서 단 2번 상영된 것만으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시청자들은 보기도 전에 분노하기 시작했고 감독의 몰래카메라에 포착된 방송사들은 즉각 대응도 못할 정도로 얼떨떨해 했다.

영화에 거론된 TV 맛집 프로그램은 10여 편이다. , <찾아라, 맛있는 TV>, <생방송 투데이>, <출발, 모닝 와이드> 등 너무도 익숙한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감독이 일산에 문을 연 가짜 식당 '맛'은 이 중 SBS <생방송 투데이>와 MBC <찾아라, 맛있는 TV>에 실제로 출연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방송 출연을 성사시키는 홍보대행사와 브로커의 정체가 밝혀지고 각 프로그램들이 거의 성문화하다시피 한 협찬금이 공개된다. 음식 맛도 안 보고 음식을 먹었을 때의 반응과 사장의 경영철학에 대해 미리 대본을 쓰는 작가, 동원되는 손님들, 수백만 원대의 출연료를 받고 처음 가본 집을 단골집이라고 서슴없이 부르는 연예인들도 등장한다.

다큐멘터리 '트루맛쇼'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인 이 영화는 대중의 지대한 관심 하에 6월 2일 개봉이 확정됐다. 그러나 현실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었다.

기자가 찾아가기 하루 전 MBC에서 끝내 <트루맛 쇼>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김 감독이 관련 서류를 송달받은 것은 5월 27일 금요일 오전. 심리가 열리는 5월 30일 월요일까지 반박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면 상영은 물 건너 가게 된다.

금요일에 만난 그는 바로 몇 시간 전, 책 한 권 분량의 두툼한 서류를 받아 들고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이 사회에서 정의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는 스스로 영화 주인공이 되어 보여주는 중이다.

반박 자료를 준비할 시간이 있나? 이렇게 급하게 보내도 되는 건가?

원래는 방송사들이 많이 당하는 일이다. 기업의 비리를 폭로하는 내용을 방송에 내보냈을 때 기업들은 미처 반박 자료를 준비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데드 라인을 바짝 당기는데 이번에 방송사가 그걸 그대로 이용한 셈이다. 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당하기만 했던 방송사가 반대로 주체가 되는 건, 그것도 기업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하는 건 아마도 국내 최초이지 않을까 싶다.

혹시라도 반박 자료를 제대로 준비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의 주장은 영화 속 모든 내용이 확실한 사실로 밝혀질 때까지 상영을 미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손해배상은 둘째 치고 앞으로도 영화관 개봉은 포기해야 한다.

극장 측이 방송 3사 눈치 보느라 개봉관도 겨우 10군데만 잡혔는데 그것도 하루에 1~2회 상영이 전부다. 그런데 만약 상영이 연기돼서 스케줄이 엎어진다면 향후 개봉관을 다시 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이 노리는 게 이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나? MBC도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한 일 아닌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쪽도 손해가 큰 일이라 설마 했다. MBC 사장이라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웃음). 정말 무식할 만큼 용감한 결정이다. 만약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방송사 쪽에서는 <트루맛 쇼>를 법이 인정한 영화로 만들어주는 셈이다. 사실은 이 가처분신청 자체가 이미 많은 진실을 말해준다. 영화제에서 딱 2번 상영한 것으로 이런 강경 대처라니, 그만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식당이 주는 협찬금은 외주제작사가 부족한 제작비를 메우기 위해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방송사도 이것을 근거로 <트루맛 쇼> 논란에서 발을 빼려고 한다.

KBS와 SBS의 경우 방송사가 제작사의 협찬금을 상당부분 떼어가고 있고 어떨 때는 100% 다 가져가기도 합니다. 믿지 못하겠지만 깡패가 어린 애 돈 뺏는 것과 똑같이 돌아간다. 이는 제작사들이 모일 때마다 분통을 터뜨리는 부분이지만 정작 영화가 개봉되고 나니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제작비 현실화'는 제작사들의 모임에서 올해의 목표처럼 외치는 모토지만 보복당할까 봐 두려운지 조용하다. 협회 차원의 움직임도 전혀 없다. 현재 탈퇴 서류를 보내 놓은 상태다.

MBC에서 교양 프로그램 PD로 있었다. 그때부터 이런 영화를 기획한 건가.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이런 현실을 몰랐다. 그때는 회사에 박혀서 일만 하느라 이렇게 협찬이 넘쳐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방송국을 나와 제작사를 차려 보니 알겠더라.

1년에 1만 개에 가까운 식당이 TV에 소개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 시간에 다른 좋은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 있을 것 아닌가. 게다가 내용도 조작된 찬사 일색이다. 여기에 무슨 음식 비평이 있나. 식당의 문제를 짚어내고 맛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은 어디에도 없다.

직접 차린 식당의 음식이 궁금했다. 정말로 먹지 못할 음식을 판 건가?

그렇지 않다. 돈가스와 라면을 파는 분식집이었고 거의 2년 가까이 운영했다. 다른 곳과 차이가 있다면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된 좀 넓은 분식집이었다는 것뿐이다.

영화에 나온 캡 사이신 범벅의 매운 음식들은, 음식이 특이해야 튄다는 브로커의 조언을 따라 메뉴를 바꾼 것이다. 여기에 작가가 '매워서 죽든지 말든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는 요리사 중 박찬일 셰프도 방송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작가가 이탈리아 보양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더라.

박 셰프가 이탈리아에는 보양식이 없다고 했는데도 계속 만들어 달라고 우겼지만 끝내 무산됐다. 그리고 며칠 후 TV를 보니 다른 식당에서 이탈리아 보양식을 만들고 있더라.

그 식당은 지금 어떻게 됐나. 계속 영업을 하고 있나.

영화 개봉 후 식당을 닫았다가 최근 다시 열었다. 지금은 커피를 팔고 있다. 어차피 7월에 계약이 만료되는데 그때까지는 영화 상영 기간에 맞춰 이벤트 차원으로 열어 둘 계획이다.

다른 방송사들은 아직 조용하지만 매체와 인터뷰한 해당 방송의 PD들은 속았다는 사실에 불쾌해한다.

'속았다' 라든가 '함정 취재'라든가 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시청자를 속인 건 바로 그들이다.

혹시나 영화관 상영이 불가능해진다면 그 후의 대책에 대해 생각해 놓은 것이 있나?

그런 생각은 아예 하고 싶지 않다. 무조건 상영이 되어야 한다.

방송사 측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 영화가 예정대로 개봉된다면 <트루맛 쇼>는 6월 2일부터 시중에 공개된다. 서울에서는 CGV 대학로,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아트하우스 모모. 부산에서는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부산 국도예술관, 아트씨어터 씨앤씨, 경기도에서는 롯데시네마 라페스타, 대전에서는 대전아트시네마, 광주에서는 광주 극장에서 개봉한다. 온 종일 상영되는 것이 아니므로 각 극장의 홈페이지에서 상영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