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식당, 미디어 짜고 치는 '트루먼 쇼' 음식 비평 원천 봉쇄

5월 17일,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이 발간됐다. 지난해 4월 미쉐린 본사와 가이드 북 발간을 위한 MOU 협약을 체결한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5월 프랑스어판 5000부를 발간해 현지에서 판매를 시작한 데 이어 오는 11월 영어판도 출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나온 책은 레스토랑에 별점을 매기는 ‘레드 가이드’가 아닌, 관광지를 소개하는 ‘그린 가이드’다. 한국에서는 발간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식당이 언급됐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외식업계와 요식업계 전체가 들썩였다. 아마도 레드 가이드가 나온다면(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이르면 1년 안에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그 파급력은 웬만한 막장 드라마 또는 톱 가수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 버금가지 않을까?

고수를 가리는 일은 유치해서 재미있다. 국내에도 ‘나만 셰프다’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 그 셰프가 만든 음식을 먹고 눈물을 흘린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그래서 굳이 찾아가 먹었는데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건 나만 그런 건지, 전부 그런 건지.

귀 있는 사람 모두가 최고의 가수에 대해 한 마디씩 하듯이 혀가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내공의 요리사를 1등부터 100등까지 줄 세우는 일에 참견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미슐랭을 둘러싼 폭발적인 열기는 단순히 ‘누가 짱이냐’를 가리는 흥미진진함 때문만은 아니다. ‘맛 없다’는 말이 원천적으로 금지돼온 이 나라에서 공신력 있는 음식 비평은 한 번도 터진 적 없는 폭탄이기 때문이다.

“맛없다는 말만은 제발~”

'결정맛대맛'
한국에서는 왜 맛 없다는 말을 보기가 힘들까? TV 속 식당에서 사람들은 아사 직전의 짐승과 다르지 않다. 입을 크게 벌려 시뻘건 점막 안으로 부글부글 끓는 국물을 밀어 넣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엄지를 치켜 드는 이들뿐이다. 신문과 잡지에서는 윤기가 반지르르한 음식 사진이나 요리사의 일생을 비장하게 그려낸 글들이 넘쳐나지만 부족한 맛을 지적하거나 왜 부족한지에 대해 분석하는 기사는 찾기 힘들다. 서점에 나와 있는 식당 관련 책들도 마찬가지다. 잡지의 내용에서 분량이 늘고 한 발 늦었다는 것 외에는 다를 게 없다. 이른바 맛집 천국이다. 그런데 정작 엉망진창으로 음식을 내는 식당은 왜 그렇게 많을까?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2000년대 초반 한 잡지와 함께 식당을 평가하는 기사에 참여했었다. 된장 찌개나 냉면 등 한 가지 메뉴를 정해 놓고 잘 한다는 식당 2곳을 선정해 기자와 전문가가 몰래 가서 그 내공을 비교 평가하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기획물은 1년도 채 끌지 못하고 중단됐다.

“식당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담당 기자가 두 손 다 들었습니다. 담당 변호사까지 끼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그만할 수 밖에 없었죠.”

원색적인 비평에 기함한 것은 식당 주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공짜로 줘도 안 먹을 비빔밥에 대해 단호히 빵점을 매겼는데 그 달에는 해당 기사가 아예 빠져 버렸다. 연재가 중단된 이후에도 기사는 한동안 웹 상에서 떠돌아다녔지만 놀랍게도 3점 이하(5점 만점)를 줬던 식당들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전문 레스토랑 가이드에도 비평은 없다. 2005년 출간된 다이어리알과 블루리본은 나름대로 전문가들을 초빙해 매년 각각 700곳에서 1000곳에 이르는 레스토랑의 콘텐츠를 쏟아 낸다. 그러나 비평이라기 보다는 표면적인 소개에 그치는 내용과 빈약한 비주얼, 가격 부담으로 인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라 불리는 집단 중 “내 이름을 걸었소”라고 나서는 이도 없다.

겁 먹은 매체와 소외 당한 레스토랑 가이드 사이에서 식당 비평의 새로운 권위자로 떠오른 것은 블로거다. “이해 관계에 매여 있지 않아 솔직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비로소 맛 없다는 말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굉장히 유명한 셰프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네요.”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전문가가 아닌 그들은 ‘맛 있어요, 맛 없어요’ 이상의 평을 내놓지 못했고 심지어는 “오리 콩피가 너무 짜서 별로”(원래 짜야 한다), “커피 맛이 너무 셔서 짜증”(케냐 커피는 신 맛이 미덕이다) 수준의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포털의 접근성을 등에 업고 블로그의 영향력이 자꾸만 커지자 급기야 돈을 받고 써주는 이들이 등장했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파워 블로거는 ‘익명에 가려진 비전문가들이 비평의 핵을 이루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나도 블로거지만 블로거들 중 전문가라고 불릴만한 수준의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솔직히 블로거들이 인정 받는 이유는 오직 자주 가고, 돈을 많이 쓰고, 사진을 많이 올린다는 것뿐이다. 비평을 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입에 안 맞는 음식을 ‘안 맞다’가 아닌 ‘맛 없다’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블로거들, 또 그들의 이야기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진짜 맛집은 어디에?

제대로 된 음식 비평을 볼 수 없는 이유가 단순히 ‘잘 몰라서’, ‘책임 지기 무서워서’, ‘비평을 싫어하는 정(情)문화라서’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런 건 식문화가 개선되면 자연히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맛 없다는 말을 틀어막는 세력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돈도 많고, 정치적이다.

지난 해 레스토랑 가이드 자갓(zagat)의 한국판이 발간됐다. 1979년 뉴욕에서 시작된 이 가이드는 소수 전문가의 미각을 기반으로 한 미슐랭과 달리 집단지성의 힘을 일찍이 채택한 레스토랑 평가서다. 다수의 비전문가들이 평가한 내용이지만 전통이 있으며 무엇보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자갓이 한국에 들어 왔을 때 관계자들은 잔뜩 고무됐었다. ‘자갓 서울판’ 역시 4398명의 고객 평가를 취합해 발간됐다. 그런데 한 카드사를 통해서 들어왔다는 점이 좀 걸렸다. 이 카드사는 지난해부터 뉴욕의 ‘레스토랑 위크(일정 기간 동안 여러 식당에서 반 값에 음식을 제공하는 행사)’를 벤치마킹한 이벤트를 개최하며 한창 미식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 행사에 식당 정보 제공, 셰프 소개 등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한 레스토랑의 오너에게 카드사 관계자가 찾아 왔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자갓에 당신의 레스토랑을 소개할 때 어떻게 써 줄까를 묻는 말이었다. 심지어 30점 만점으로 표기되는 점수에 대해서도 자문(?)을 구했다.

“행사에 참여하고 도움을 준 레스토랑이 여기뿐이 아닌데 이런 특혜를 받은 곳이 우리밖에 없을까요? 행사 참여를 거부한 레스토랑에는 어떤 점수가 매겨질까요? 아니, 책에 이름이 오르기는 할까요?” 그는 아예 점수를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해당 카드사가 주최하는 미식 행사에는 카드사 회원들만 참여가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그것도 전 회원이 아닌 일정 등급 이상의 카드를 소지한 회원에 한정된다. 현재 자갓의 레스토랑 선정 기준이나 내용 오류에 대해 문의할 수 있는 통로는 오직 카드사 홍보팀뿐이다. 홍보 담당자는 자갓 편집팀이 회사 내부에 있지 않으며 연결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자갓 뉴욕본사에 문의한 결과 담당 디렉터는 “레스토랑 평가에 관련된 모든 투표는 자갓 홈페이지에서만 이루어지며 현대카드를 포함한 다른 어떤 이의 수정 없이 그대로 표로 만들어져 출판된다”며 “따라서 어떤 레스토랑도 특별 대우를 받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서 시중에서 자갓 서베이를 구입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현대카드는 회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목적으로 자갓에 서울 서베이를 의뢰했다”며 자갓 편집팀에 접촉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갓 홈페이지(http://www.zagat.com/contact-us)와 창립자인 자갓 부부의 이메일(nina-)을 소개했다.

성역은 없다, 자본에 목을 잡힌 비평

두꺼운 베일에 가려진 맛집의 진실은 좀처럼 정체를 드러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식당, 미디어가 단단히 연합해 짜고 치는 그야말로 트루먼 쇼다. 여기에 때마침 전직 방송사 PD가 찍은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 화제다. 가짜 식당을 차리고 방송사에 돈을 건네 맛집으로 소개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 쇼>는 개봉도 하기 전 방송 3사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다. MBC는 26일 결국 서울남부지법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감독은 블로그를 통해 “다 물어줄 테니 마음껏 소송하라”고 외치지만 일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전쟁임이 확실하다.

미슐랭 가이드를 향한 기대는, ‘맛 없다는 말은 목숨 걸고 하라’는 작금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미슐랭 역시 성역은 아니다.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 협약이 체결된 것이 작년 4월, 보도자료에 따르면 평가단 방한은 그 해 하반기다. 그리고 올해 5월 그린 가이드가 나왔으니 준비 기간은 길어 봐야 3~4개월 정도다. 여기에 소개된 식당의 개수는 107곳(카페와 술집을 제외하고). 별점이 없으니 평가는 그렇다 치고, 선정은 어떻게 했을까? 황교익 씨는 “한국관광공사가 107곳의 리스트를 고스란히 주어야 겨우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한국에 있는 식당을 다 보려면 하루 세끼씩, 2년을 다녀야 한다. 백 번 양보해서 107의 10배수에 달하는 식당 정보를 제공한다 해도 다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관광공사 측에서는 식당 정보에 대해서는 일절 제공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태영 팀장은 “공사 측은 결과물에 대한 교정과 1억 원을 들여 광고를 실은 것 외에는 참여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선정 기준과 평가단 수에 대해서는 “5명 정도로 알고 있으며, 국내에 거주하는 프랑스 인이나 미쉐린 코리아 직원들로부터 추천을 받았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짧은 평가 기간에 대해 미쉐린코리아 홍보팀 백주현 차장은 “본사의 한국 실사는 지난해 3월부터 연말까지, 총 3차에 걸쳐 10개월간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MOU 체결 시기는 2010년 4월이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나온 것은 2009년 여름부터다. 그때부터 평가단이 오갔다. 보도자료에 나와 있는 ‘평가단 하반기 방한’ 내용은 마지막 3차 본실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슐랭 가이드에 대기업이 연관돼 있지 않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재벌 기업에 의해 비평이 왔다갔다하는 현실입니다. 아직까지는 그 배후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기업 중 신용카드와 식품 사업 모두에 손을 뻗치고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미슐랭을 탐내지 않겠습니까?”

알맹이가 없어 홍보에 기대는 식당들, 이를 덥석 받아 문 자본과 미디어, 그들이 만든 가상의 ‘맛 천국’에서 헤매는 소비자들. 이제 영화에서처럼 하늘인 줄 알았던 폭신폭신한 흰 스크린이 찢어져야 할 때가 왔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벌거벗겨지는 지옥 문이고, 누군가에게는 진짜 세계로 향하는 문이다.

한국 미슐랭 그린 가이드에는 어떤 내용이?

미슐랭 가이드는 1900년도 초, 타이어 회사 미쉐린의 두 창업자, 에두아르 미쉐린과 앙드레 미쉐린에 의해 만들어졌다. 초반에는 자동차 관리법과 정비소, 호텔, 레스토랑 등의 정보가 담긴 여행 안내서였지만 10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레스토랑 가이드 북으로 자리매김했다. ‘타이어가 닳도록 여행하라’는 취지에서 발간한 여행 가이드가 셰프들이 목을 매는 레스토랑 평점서로 발전한 셈이다.

이번에 발간된 그린 가이드는 450쪽 분량으로, 한국의 관광지와 문화 유적지, 사회ㆍ경제ㆍ문화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전쟁 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기적의 나라라든지, 태극기의 음양오행 의미 등 너무 오래된 내용도 있지만, 하트 모양 침대와 바로크 풍 인테리어가 특이한 ‘러브호텔’과 나눔 문화의 결정체인 ‘찜질방’, 한 가지 메뉴만 주문하는 식문화(일품 음식)와 러시아에 이은 음주 2위국 등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하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한국 개고기 문화에 대한 적극 해명과 동남아에서 열풍을 일으킨 한류에 대해서도 실었다.

총 110곳의 관광지 중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별 3개를 받은 23곳에는 경복궁과 북촌, 국립중앙박물관, 경남 해인사, 안동 하회마을, 도산서원, 경주 불국사, 석굴암, 양동마을, 전주 한옥마을, 마이산도립공원, 한라산국립공원, 성산일출봉 등이 있다. 식당에 대한 언급도 있다. 레드 가이드가 아니니 별점은 없지만 서울과 지방을 합쳐 194개의 음식점이 거론됐으며 이중 식당은 107곳, 디저트 가게는 12곳, 술집 12곳이 있다. 특이한 점은 소개된 식당 중 70% 이상이 한식당이라는 것과 우래옥부터 놀부 부대찌개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식당을 다뤘다는 것. 디저트 가게 중에는 종로 낙원 떡집이, 클럽 중에는 이태원 마카로니 마켓 내 클럽 펑션이 소개됐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