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미디어'인 세상, 상업화된 언론 선정적 내용 경쟁적 보도'대중은 알 권리도 있지만 모를 권리도 있다' 신중한 접근 태도 필요

<동거녀 살해 암매장 40대, 차량서 연탄 피워 자살>
이것은 지난 6월 1일 웹 상에 오른 모 매체의 헤드라인이다. 다음 날 또 다른 자살 사건이 보도됐다.
<"이 정도로 내가 병신 같을 줄이야", 이등병 총기 자살>

간결하고 흔한 이 헤드라인들은 언론의 자살 보도 기준을 모두 위반한 것들이다. 자살 방법에 대한 묘사, 유서 내용 공개, 그리고 자살이라는 말을 제목에 올린 것 자체가 권장 사항이 아니다.

좋든 싫든 하루에 한 번 이상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는 요즘이다. OECD 국가 중 자살 1위라는 말에는 이제 무감해졌고 하루 평균 43명, 34분마다 한 명 꼴로 자살한다는 식의 분석을 내놔야 잠시 눈길이라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치솟는 자살률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자살 소식을 전달하는 언론의 행태에 있다는 데 주의를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다.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미디어의 책임과 윤리를 끄집어내 최근의 자살 보도 기사를 비춰보면 지금 한국에 '적절한' 자살 보도는 없다. 오직 자살을 팔고 사는 이들뿐이다.

"자살, 차라리 보도하지 마세요"

자살 보도 기준이 최근 다시 이슈가 된 것은 송지선 아나운서의 죽음이 원인이 됐다. 갈등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세계에서의 주목도, 관련된 인물의 인지도, 자살 방법과 시기가 던져준 충격,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절제는 커녕 부풀리고 추측해 보도한 미디어들 때문이었다.

사망 시 사용한 이불부터 시작해서 추락에 의해 부서진 구조물 사진, 그 구조물에 남은 손 자국, 심지어 근처 죽집 아주머니의 인터뷰까지 등장하자 세브란스 병원의 천근아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보도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자살을 보도할 때 추정 보도, 선정 보도는 자제해야 한다. 병원 응급실에서 그 여파를 실감하고 있다. 차라리 보도를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는 이어서 자살 보도 시 유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다. 자살 방법을 세세히 묘사하지 말 것, 자살 동기를 단순한 특정인 또는 특정 사건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지 말 것, 자살이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인 것처럼 묘사하지 말 것, 자살 외의 대안을 제시하고, 자살을 극복한 사례를 조명하며 남겨진 유가족들의 고통을 알릴 것 등등.

천 교수의 지침은 지난 2004년 자살예방협회가 발표한 언론의 자살 보도기준 중 일부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당시 한국협회, 보건복지가족부와 함께 '자살 언론보도 권고기준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7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 지침들 중 철저히 준수되고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아예 존재한다는 것 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모니터한 결과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자살 관련 언론 보도 271건 가운데 약 88건 (33.1%)이 지침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인지가 턱없이 부족하다. 정보의 제공자도 수용자도 여기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자살을 영웅시하거나 낭만적 행위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몇 년 전 노무현 대통령 사망 시 각 매체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단어는 담배였다.

"담배 있나?" "없는데 가져올까요?" "가져올 필요는 없네."

언론사들은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위에서 노 대통령과 경호관이 나눈 마지막 대화를 상세히 기술했다. 이어 "저기 아래 사람이 지나가네"라는 말과 함께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진 대통령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전기의 한 구절이었다.

'부패한 세력에 항거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지친 영웅의 마지막'을 묘사한 낭만적인 그림은 자살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로망을 부추겼다. 결국 지난해 50대 남성이 같은 장소에서 투신했다. 유서에는 "노 대통령을 따르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자살은 일반적으로는 감추고 싶은 일로 치부되지만, 개인의 철학에 따라서는 소신 또는 자기 희생의 정점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실존의 문제에 근접해 있는 이들에게 특히 두드러진다.

그들은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 들어간다면 그것은 죄일까?"와 같은 셰익스피어의 말에 감동하며 자살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키운다. 이런 상황에서 우호적이고 상세한 자살 보도에 노출될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빚어진다.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고 지나친 동정을 보내는 것도 금지다. 송 아나운서 사망 시 근처 죽집 아주머니를 인터뷰한 기사는 '밥도 못 먹을 만큼 상심했던' 고인의 상태를 대중에게 알려 동정론을 불러 일으켰다. 애도하는 측근의 멘트를 여과 없이 싣기도 했다. "안팎으로 위축됐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는 등을 돌렸고 회사에서는 징계를 논의하고 있었다. 게다가 송지선을 모르는 불특정 다수 네티즌은 자기 주장을 사실인양 배설하고 퍼 날랐다. 낭떠러지 앞에 선 송지선의 등을 민 것은 우리 모두다"

이 같은 보도는 얼핏 인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럴 만 했다"고 수긍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연인의 동반 자살 보도에 쓸데 없는 문장력을 발휘해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 자살했다"고 표현하는 기사도 있다. 이는 자살에 합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불어 자살이 고통 해방의 한 방편인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과의 김현정 과장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너무나 힘들었겠다' 류의 보도는 자살이 당연한 선택이었음을 은연 중에 인정하는 격이라고 말한다.

"어떤 식으로든 '이해하는 듯한' 태도는 보여선 안 됩니다. 자살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헤드 라인에 삽입해서는 안 된다

자살을 자살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야 할까? 해외의 경우 자살이라는 단어는 제목이 아닌 본문에 삽입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헤드라인에 들어가기에 적합한 단어는 사망, 운명, 별세 등이다.

이는 독자의 관심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데 기여한다. 오스트리아는 80년대에 지하철 자살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는데 여기에는 지하철에 뛰어드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기사화한 미디어가 한 몫을 했다.

오스트리아 자살예방협회에서는 자살보도가 자살률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결과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자살이 증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살에 대한 기사의 수가 늘어날 경우, 그 기사가 1면에 보도될 경우, 그 기사의 제목이 극적일 경우.

결국 자살 소식의 노출 빈도 자체를 낮춰 그로 인한 관심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살이라는 단어와 자살의 원인 모두 제목에서 삭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망자 사진을 싣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지는 텍스트에 비해 관심 집중도가 월등히 높기 때문에 클릭 수를 높이는 일등 공신이다. 여기에 더해 개인적인 내용이 담긴 유서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를 자세히 기록한 자살 노트 등 흥미를 끌 수 있는 어떤 것도 노출되어서 좋을 것이 없다.

어떤 방법으로 자살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해선 안 된다

탤런트 최진실 사망 당시 한 주요 일간지에서 그가 사용한 압박 붕대의 구입 경로와 가격까지 모두 공개해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네티즌과 전문가들의 항의로 기사는 삭제됐지만 결국 같은 해 10월 두 명이 압박 붕대에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그 행태는 최근까지도 이어져 송 아나운서 사건에서도 그대로 재연됐다.

그가 자신의 오피스텔 19층에서 뛰어내렸다는 것, 뛰어내릴 때 파자마를 입고 이불로 몸을 감쌌다는 것, 추락 시 주변 반응에 의하면 자동차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는 것 등이 시시콜콜 묘사됐다.

전문가들은 "자살의 상세 묘사로 인한 공포 심리 유발은 일반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심각하게 자살을 고려하는 이들에게는 정보로 받아 들여질 수 있다."고 말한다.

위의 불필요할 정도의 자세한 보도는 은연 중에 '19층 높이면 장애인이 되지 않고 한 번에 죽을 수 있다, 이불을 뒤집어 쓰면 덜 무서울 수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는 셈이다. 실제로 탤런트 안재환이 사용했던 일산화탄소 중독 방식은 이번 달 초 일어난 두 건의 자살 모두에 활용됐다. 그리고 이번에도 여과 없이 보도됐다.

"오늘 낮 1시 30분쯤 경북 성주군 금수면 영천리의 하천가에 주차된 승합차량 내부에서 26살 김모씨 등 4명이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차량 내부에서 연탄재 3장과 연탄 6장, 번개탄 7개 등이 발견됐고 차량 창문이 테이프로 막혀있는 점 등으로 미뤄 이들이 집단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웨인주립대학교의 스티븐 스택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유명 인사의 자살이 불러올 수 있는 후속 효과는 평범한 사람의 그것에 비해 약 14배 가량 높다.

그 유명인이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제 인물일 경우 영향력은 더 높아진다. 자살 방식 묘사는 언론사의 모든 윤리 강령에서 강력하게 금지하는 사항이지만 최근의 보도 실태는 메이저 언론이나 군소 언론이나 다를 것이 없다.

고인의 정신 건강 상태에 대해 쉬쉬해선 안 된다

죽은 자의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이나 무작정 덮어두어서도 안 될 일이다. 통계에 따르면 자살자의 90% 이상이 사망 당시 중대한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은 기분 장애와 물질 남용인데, 이들은 대부분 전문가에게 보여진 적 없이 방치된 경우가 많다. 고인의 명성에 누를 끼칠까 우려해 기사에서 이것을 삭제할 경우 원인은 자연히 그를 둘러싼 상황 속에서 책임 소재를 발색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안재환씨 사망 당시 "고 안재환 채무액 100억 원대?" 같은 헤드라인이 돌아다녔지만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 요인이 얽히고 설켜 일어난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그러나 몇몇 보도로 인해 원인은 돈 문제인 것처럼 귀결됐고 이는 결국 또 다른 무고한 죽음을 불러 왔다. 송 아나운서 사건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원인을 한 사람으로 지목하고 있다. 언론에서 무리한 추측을 자제하지 않으면 또 어떤 불행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고인이 가지고 있던 정신적 문제에 대해 과장 없이 밝히는 것은 자살이 '상황이 빚어낸 운명'이 아닌 뇌 질환으로 인한 것이며, 치료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최근 연속적으로 일어난 자살 중 하나인 가수 채동하씨의 사망 시 그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한 기사에는 "얼마 전부터 상태가 좋아져 약을 먹지 않기 시작했으며 그 스스로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는 정신 질환으로 인해 병원에 가서 진료 받는 것 자체를 대단히 터부시하는 풍조를 반증한다. '우울 증세에 대해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않은 것도 사망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기사에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갈수록 천박해지는 언론의 자살 보도 행태는 도를 넘어섰다. 송 아나운서의 마지막 손자국을 찍었다는 매체가 나타나면서 포털 사이트에 '000 손자국'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올랐고, 장례식장은 죽치고 앉아 조문객들의 의상과 표정을 찍어대는 언론사들로 인해 유례 없는 '침통한 패션쇼 장'이 됐다.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언론환경 다변화다. '너도 나도 미디어'인 세상에 "내가 안 써도 어차피 쟤가 쓸 텐데"라는 생각에 선정적인 내용을 경쟁적으로 쏟아 내고 있다. 언론중재위원에서는 시정권고 심의기준을 자세하게 명시하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 하에 개인(고인과 유족)의 법익은 가볍게 침해되는 중이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알 권리도 있지만 모를 권리도 있다. 일부 미디어 소비자들은 일방적 수용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현명한 소비자로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스로의 삶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선정적인 보도는 폭력이나 다름 없다.

자살을 생각하는 10명 중 10명은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망설이지 않는 이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김현정 과장은 매스컴이 이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정적인 자살 보도는 젠가 게임의 마지막 한 조각일 수 있습니다. 흔한 보도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의 마지막 조각을 빼는 행위지요. 만약 빼지 않았다면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참고 문헌: '한국 사회의 자살과 언론 보도' 정책 심포지엄) 중 맹호영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과장, 김창룡 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자살예방협회가 권고하는 언론의 자살 보도기준

하지 말아야 할 것
l 자살을 영웅적 해우이나 낭만적 해결책처럼 포장하기
l (새로운) 자살 방법을 소개하고 세세하게 설명하기
l 작은 사실에 근거하여 일반화하거나 자살의 원인을 단순화하기
l 자살이 아무런 예고나 이유 없이 일어났다고 서술하기
l 자살한 사람의 매력이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정신 건강 상태나 약물 중독과 같은 문제를 쉬쉬하기
l 자살이란 용어를 헤드라인에 쓰거나 사인을 자살로 밝히기
l 자살한 사람의 사진 넣기
l 유명인의 자살을 주요 기사로 싣기

해야 할 것
l 자살률의 최근 경향
l 최근의 치료 및 상담의 발전 양상
l 치료 및 상담을 받고 자살 위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사례
l 자살의 신화(잘못된 상식)
l 자살 징후들 소개
l 자살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