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ㆍ고양이 카페 성업 속 줄지 않는 유기동물, 아이러니한 현실인간, 반려동물, 지역사회 함께 사는 방식이란 인식 확산 절실

한국사회에 반려동물이 급증한 건 2002년 전후다. 당시 입양된 개와 고양이가 올해 10살쯤 되었다는 뜻이다. 이들의 평균 수명이 15~20년인 것을 감안하면, 반평생 이상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도시의 풍경도 변했다.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동물을 위한 '프리미엄 서비스' 공간이 문을 열었으며, 고양이 카페가 성업 중이다. 빌딩숲 사이로 동물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반려동물문화도 성숙했을까.

동물 전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는 "아니"라고 말한다. "반려동물문화는 애완동물문화가 아니다. 단순히 내 개를 예뻐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반려동물, 지역사회가 함께 사는 방식이라는 뜻"이라는 데 비추어보면 말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 관계를 담고 있다. 일생을 함께 하는 짝 같은 동물이라면, 이해와 존중의 의무는 당연히 뒤따른다. 한 사회에서 반려동물문화가 성숙하면 생명과 환경에 대한 의식도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리온 유치원
하지만 줄지 않는 유기견 숫자, 길고양이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 구제역 발생에 대응한 '살처분', 서울시민의 문화 공간으로 마련된 세빛둥둥섬에서 열린 럭셔리 브랜드 모피 패션쇼 등이 증명하듯 한국사회의 생명과 환경에 대한 감수성은 여전히 둔하고, 이들 현상은 곧 반려동물문화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동물 보호 활동을 하는 이들 중 대부분이 반려동물과의 교감에서 출발해 사회적 의식으로 다다른 경우죠." 한국동물복지협회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의 증언은 지금 반려동물문화를 재점검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동물과 오래 동행해온 이들은 이 관계가 메마르고 병든 인간 중심적 문명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동물을 향한 선의는 곧 환경을, 따라서 인간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반려동물문화가 있을까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부족한 것은 '왜'와 '어떻게'였다. 반려동물이 외롭고 소외된 현대인의 친구이기에 받아들일 것인가? 귀여워하고 예뻐하기만 하면 반려동물과 사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인가? 이런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반려인도 이 사회도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한국사회에 반려동물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뭘까. 김보경 대표는 <임신하면 왜 개, 고양이를 버릴까?>에서 "변화에 비해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당에서 남는 밥을 처리하는 존재로부터 같은 생활공간에서 지내는 가족의 일원으로 동물의 신분은 달라졌지만 관계에 대한 논의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이리온 의료 장비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는 좌식 문화, 개 식용 문화 등도 영향을 미쳤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인 임순례 영화감독은 "개 식용 문화가 가장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먹을 수 있는 종이라는 인식이 너무 뿌리 깊어 동물 보호 운동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다 보니 반려동물에 대한 태도는 분열되어 있고, 평행선을 그린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아무리 늘어나도 좀처럼 그 의미는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개를 기르던 사람이 임신을 하면 주변으로부터 "이제 개 없애야지?"라는 압력을 당연히 받게 된다.

반려인과 동물 간 쌓아온 관계나 집을 떠나야 하는 동물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이 조건반사의 근거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들이다. 개털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친다거나 고양이를 기르면 기형아를 낳는다는 등의 '상식'은 사실 한국에서만 떠도는 괴담 수준. 하지만 놀라운 것은 아무도 진실을 밝히지 않고 관습을 따라 왔다는 점이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소문의 실체

반려동물 산업의 팽창은 끊임없이 '개팔자가 이제는 상팔자'라는 해석을 낳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유기동물이 줄지 않는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지금 동물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리온 호텔
지난 2월 문을 연 반려동물 전문 복합문화공간 이리온은 동물 관련 서비스를 고급화했다. 현대식 건물 내 두 층에 병원과 미용실, 유치원, 호텔, 카페가 함께 있고 동물 분양과 교육 서비스도 제공한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이라는 입지는 상징적이다. "인간 대상 병원으로 치자면 삼성의료원"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CT, C-arm, 초음파 장비, 수중 러닝머신 등 첨단 시설을 갖춘 병원과 충분한 상담을 거쳐 스타일을 완성하는 미용실, 지능개발 장난감과 '픽업 서비스'가 완비된 유치원, 방마다 습도와 온도가 조절되는 호텔, 전문 조리사가 직접 개발한 천연재료 수제 간식이 진열된 카페…. 이곳을 관습적으로 해석하기는 간단하다.

"밥 굶는 사람도 있는데", "개에게 저렇게까지 돈을 들이다니" 라고 말하면 끝이다. 그런 시선이 걱정되었는지 홍보를 맡은 경영지원팀 배연진 부장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열성적인 부모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는 일들이 정작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고급 서비스를 누리는 것이 반려동물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지는 알 수 없다. 이곳이 서비스를 이용할 여건이 안 되는 많은 반려인들을 씁쓸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이 표방하는 몇 가지 원칙들은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반려동물문화의 쟁점을 이해한 결과라는 점에서 짚어볼 만하다.

영화 '미안해, 고마워'
예를 들면 반려동물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사회성을 길러주는 교육 프로그램. 반려동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이 있다. 공공장소에 나가고 외부인을 만났을 때 공격성을 줄이고 욕구를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함께 참여하는 이리온의 교육 프로그램은 이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믿을 만한 생산·판매자와 좋은 거주 조건을 연결하며 동물을 진열하지 않는 분양 시스템. 현재 반려동물 분양 산업은 제도적으로 통제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암암리에 분양되는 동물들의 경우 그 과정도, 앞날도 불투명하며 펫샵과 대형마트의 동물 진열·판매는 학대 행위로 비판받고 있다.

반려동물문화가 성숙한 사회에서라면 공공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일들이 한국사회에서는 실내에서, 상업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개, 고양이 카페가 우후죽순 생기는 것도 동물을 데려가고 어울리게 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다. 또는 각박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동물과의 접촉이 필요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조희경 대표는 "사람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회 생활을 하면서 시민 의식을 높일 수 있다.

그것 역시 동물과 삶에 대한 책임감을 기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광장이 축제의 공간만은 아니듯, 동물이 출입할 수 있는 공공장소도 유희의 공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해에 도달하는 건 아직 너무 멀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반려동물과 관련한 '고급' 서비스들을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을까.

반려동물에 대한 오해와 진실

시중에 하룻밤에 몇 십만 원 짜리 호텔, 몇 백만 원 짜리 장례식이 반려동물용으로 나와 있다고 해서 모든 반려인이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품을 구매하는 욕망은 동물의 편의가 아니라 인간의 허영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둘은 잘 구분되지 않고 이야기된다.

동물보호단체들은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동물 진료비 부가가치세 부과가 그 결과라고 말한다. 반려동물과 사는 것 자체를 '사치'로 규정하는 발상이다.

"저는 예쁜 옷을 입히거나 비싼 간식을 먹이는 등 개를 의인화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개와 교감을 나누며 살고 싶을 뿐이죠. 대부분이 그럴 거예요. 더구나 요즘에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가 힘든 젊은 커플이나 싱글족들이 반려동물을 가족 삼아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이 양육비가 너무 높고 도시 생활이 각박하니까 반려동물이 필수적 구성원이 된 건데, 동물 관련 정책은 이런 사회적 요인, 정서와 동떨어진 것 같아요."

임순례 감독이 대표를 맡은 카라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다양한 문화적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사냥을 소재로 한 TV 예능프로그램 방영을 저지했는가 하면,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에는 폐허가 된 현장의 유기동물들을 돕고 그들의 사진을 찍어 전시했다.

무크지 <숨>을 발간해 반려동물은 물론 생명과 환경에 대한 이슈를 퍼뜨리고, 길고양이 보호 핸드북을 제작하기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동물보호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한 영화 <미안해, 고마워>도 임순례 감독이 총지휘했다. 반려견, 길고양이와 인간 간 교감이 과장 없이 성실하게 담긴 이 옴니버스 영화는 서로 다른 종의 동물들이 어울려 사는 의미를 가르쳐준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딸은 오래 전에 죽은 동생의 이름을 딴 개와 함께 가족의 기억을 이어가고, 어렸을 때 자신을 "형형"이라 부르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수의사는 '동생'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동물들과 아이들을 돌보며 산다. 나이 꽉 찬 딸이 길고양이 밥이나 주며 혼자 사는 게 못마땅했던 아버지는 딸과 화해하기 위해 고양이에게 접근했다가 정말, 그들과 친해져 버린다.

오점균 감독의 에피소드 '쭈쭈'는 노숙인이 반려견을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을 그린다. 사람은 자신이 지켜야 할 것, 돌볼 대상이 있을 때 스스로 회복하고 살아난다. 병든 개가 무기력한 노숙인에게 활기를 불어 넣고, 노숙인이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개를 지킬 때 그들은 서로 자신의 가장 나중 지닌 부분을 내어주고 받는다.

고양이 한 마리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전 세계 모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다

올해 초 책공장더불어에서 펴낸 <용산개 방실이>는 반려동물의 시선이 사회적 사안의 논의와 기억을 풍성하게 만든 사례다. 용산 참사 때 '아빠' 양회승 씨를 떠나보낸 후 음식을 먹지 않고 앓다가 24일 만에 죽은 개 방실이의 사연을 담은 만화책이다.

방실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언론 보도의 이미지가 아닌, 용산참사가 영영 파괴하고, 남긴 삶의 풍경을 드러낸다.

참사를 거쳐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과정은 그 일을 직접 겪지 않은 이들의 마음도 하염없이 무너뜨린다. "용산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기획되어야 하고 오래 기억되려면 구체적으로, 생활 속 이야기로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반려동물과의 동행에는 이처럼, 체온과 심장박동을 나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동물권리선언>의 마크 베코프는 "동물은 자연과 격리된 현대인의 선천적인 감정, 온정과 책임감을 회복시킨다"고 말한다.

이런 감정은 생태계 속에서 쉽게 퍼지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세계적으로 동물을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사심 없이 일한다. 우리가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동물에게 온정을 베푸는 방법을 배울 때, 온정은 쉽게 다른 종들에게 번지고 그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많은 반려인들이 같은 체험을 했다. 조희경 대표는 "반려견을 기르는 것이 다른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말했다. "저는 6.10 항쟁 때에도 사회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동물보호 운동을 하면서 사회의 다른 약자들에 대해서, 그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죠."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이기적 고양이>의 저자 이주희는 얼마 전 길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지붕에 올라갈 용기를 냈다.

"저희 집 마당에 와서 종종 밥을 먹는 고양이가 앞집 지붕에"서 못 내려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집주인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올라갔죠.(웃음)" "고양이 한 마리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전 세계 모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다"는 그의 깨달음은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작년 말 출간된 <이기적 고양이>는 3달 만에 4쇄를 찍었다.

유기 고양이였던 막내 '아톰'이를 입양하러 가는 길에 저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아이를 데려온다면 그 아이의 몫으로 준비된 사랑이 따로 있는 걸까, 아니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쏟던 사랑이 다시 한번 n분의 1로 나눠지는 걸까. 새로 집이 필요한 그 아이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쨌거나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건 지금 내가 책임지고 있는 내 새끼들이라 해본 생각이었던 것 같다.(중략) 이제 와 다시 저 질문을 돌아보니 아무래도 가장 적당한 답은 이게 아닌가 싶다."

"고양이를 들이는 데는 큰 결단과 깊은 생각, 그리고 무한한 책임이 필요하지만, 고양이를 들이고 나서의 사랑은 걱정할 게 없습니다."

분명 인간은 반려동물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