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덴의 종말'
구제역 파동, 방사능 오염 식품, 위생 불량 생수, 그리고 변종 대장균까지. 한국에서부터 유럽, 미국까지 지구촌에서 먹을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물이나 채소처럼 '건강식'에 관련된 음식들에 대한 새로운 의혹은 육류나 패스트푸드 일변도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 몸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점점 더 줄어드는 선택지

건강과 장수를 위한 최후의 선택으로 채식문화가 본격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던 요즘, 유럽발 채소 공포는 국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국은 우리나라가 유럽산 채소를 수입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발생 3주 만에 수천여 명의 감염자와 30명의 사망자를 낸 장출혈성 대장균(EHEC)의 위력에 '혹시'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유기농 텃밭을 체험하고 있는 시민
EHEC는 그동안 국내에 'O-157'이나 'O-26', 'O-111' 등 오염되거나 덜 조리된 육류를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진 식중독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염된 비료로 키운 채소가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어 채식주의자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매년 1만여 명의 식중독 환자가 발생하는 우리나라에서 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채소나 과일 등을 조리하지 않고 날것으로 즐겨 섭취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번 사건은 경종을 울리고 있다. 광우병 파동 때에도 단순히 육식만 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됐던 것은 아니었다.

과자나 유제품 등 광범위한 식품에 이미 미국산 우육 성분이 들어 있었던 사실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번 경우도 깨끗하다고 생각됐던 유기농 채소에서 문제가 시작돼 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매년 이어지는 황사로 인한 농산물의 중금속 오염과 최근 매몰된 고엽제와 구제역 사체에서 나오는 침출수에 의한 지하수 오염까지, 국내산 먹을거리도 이제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자연을 내버려두지 않는 인간의 미래

애니메이션 '배불뚝이'
웰빙의 산물이었던 채식이 위협받을 때 사람들은 '더 안전한' 먹을거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고민의 끝은 대개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에 닿게 된다. 예전에는 깨끗하고 안전했던 자연을 누가 오염시키고 훼손시켰을까. 답은 어렵지 않게 금방 떠오른다.

많은 생태주의 담론들은 자연을 조작해 거기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둬내려는 인간의 행동에 오래 전부터 비판을 가해왔다. 특히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유전자 변형 농산물)는 최근 환경 다큐멘터리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다루고 있는 소재다.

녹색 혁명을 중심으로 한 먹을거리 환경을 포괄적으로 조명한 SBS스페셜 <생명의 선택>의 신동화 PD는 기업의 GMO 기술을 선물처럼 받아들인 농부들이 '트로이 목마'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 중요한 것은 GMO가 농부들의 권리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환경과 생태에 부담을 줘 다음 세대에 심각한 폐해를 끼칠 것이라는 사실. 신 PD는 "듣도 보도 못했던 '유전자 오염(Genetic Pollution)'이 세계 곳곳에서 번지고 있고, 국내에도 이미 이 기묘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며 경각심을 일깨운다.

몇 해 전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소개된 <킹 콘>도 GMO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높은 생산성을 위해 유전자 조작 씨앗과 강력한 제초제가 사용되고 여기서 생산된 옥수수가 유통되는 과정은 식품 시스템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 '킹 콘'
같은 해 제초 성분이 담긴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부의 고충을 그린 애니메이션 <자라나라!>도 조작된 자연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말해준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이런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행동이 가져오는 미래를 판타지로 표현한 작품이 소개돼 시선을 끌었다. 단편 <배불뚝이>는 GMO 음식만을 먹는 고도 산업사회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행성 여행자의 여정을 그린 <에덴의 종말>은 그 때문에 아름다운 행성이 점점 쓰레기장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담으며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풍자한다. 이는 지금처럼 '지속 불가능한' 개발이 장기간 이어질 때 어떤 미래가 올 수 있는지를 코믹하지만 무섭게 이야기하고 있다.

가짜 친환경 대신 진짜 자연으로 돌아가야

자연에 대한 잘못된 태도는 '친환경' 담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는 '친환경적인' 농산물, '친환경적인' 축산업의 결과물을 먹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친환경' 상품이 기업과 관련되어 고가의 웰빙산업으로서만 기능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이 값싼 음식만을 먹으며 체질적으로 허약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애니메이션 '자라자라!'
친환경의 문제는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현재의 친환경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다. 유기농 산업 역시 축산업이나 일반 농업에 비해 친환경적이지만, 자연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이는 현재의 환경 담론이 단지 육식이냐 채식이냐 혹은 일반농법이냐 유기농법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을 얼마나 소비하지 않느냐의 문제로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이정배 감신대 교수는 "친환경은 겉으로는 녹색을 표방하지만 실제론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고 말한다. 그린워싱이란 가령 무늬가 프린트된 유기농 셔츠를 만드는 과정이 이미 반환경적이라는 것. 이 교수는 "결국 기업의 성장으로 환원되는 녹색성장보다는 '에코 지능'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동네 슈퍼마켓이나 대형 마트에서 수많은 음식들을 편리하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음식들이 어떻게 재배되고 어떤 유통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른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게 된 지금에서야 생산과 유통에서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은 더 이상 '그들'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음식에는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동시대의 모든 것이 집약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잡식동물 분투기-리얼 푸드를 찾아서>의 저자 마이클 폴란은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위해 농장에서 직접 트랙터를 몰고 동물을 키우며, 사냥과 채집을 하는 등 고생을 사서 한다.

'진짜 음식'을 먹기 위해서다. 그가 고생 끝에 얻은 선택지는 단순하다. 단지 편하게 살기 위해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여 가짜 음식을 먹거나,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렸다.

자연의 경고가 먹을거리의 공포로 다가온 지금, 우리는 선택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많은 친환경 전문가들이 말하듯, 자신이 먹을 음식을 바르게 고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고, 또 그것은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규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참고=<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신동화 지음, 민음인 출간)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