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일 생명과학연구소장가축분뇨 위험성, 농약보다 비료가 더 문제… 소비자 인식 바뀌어야

보다 크고 아름답고 선명한 빛깔의 농작물을 얻기 위한 인간의 욕심은 기어이 '채소공장'까지 만들어냈다.

한 줌의 흙도 없이 스펀지 위에서 자라난 채소들에선 과연 어떤 맛이 날까. 맛보다 먼저 눈에 띄는, 스펀지에 뿌리를 대고 있는 채소들의 모습은 흡사 인공배양액에서 갓 눈을 뜬 <매트릭스>의 네오를 연상시킨다.

시대는 이렇듯 변해가는데 다시 흙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이가 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산과 들의 식물들을 스승으로 삼고 자연의 힘만으로 더 건강하고 싱싱한 채소를 키워내고 있는 송광일 박사다.

그는 농학박사라는 학위 외에도 자신의 이름이 붙은 생명과학연구소와 국립 한국농수산대학 교수의 직함도 가지고 있지만, 그냥 '농부'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자연재배 연구가다.

국내에 '자연재배'라는 용어가 대중에 알려진 것은 역시 기무라의 '기적의 사과' 때문이다. 하지만 송 박사를 직접 만난 이문웅 서울대 교수는 그의 방식이 기무라의 자연재배 방식을 능가할 만하다고 평한다.

송광일 박사가 자연재배로 키워낸 채소들
이런 평가처럼 그는 광주의 자신의 농장에서 정성들여 가꾼 '기적의 채소'들을 방문자들에게 보여주고 전국에 보내면서 그 맛을 전파하고 있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하고 발견한 자연재배의 비결을 들어봤다.

채소 때문에 난리입니다. 자연재배를 전파하면서 유기농법의 위험을 지적하셨는데요.

"유기농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했습니다. 유기재배는 일반재배에 비해 조금 깨끗하게 하는 정도랄까요. 유기재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축분입니다. 때문에 유기농업자들을 자연재배 쪽으로 유도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반재배나 유기재배 관련 산업에 많은 종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식물성 비료를 사용했다는 유기농 채소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인가요.

"동식물성을 떠나 비료 사용 자체가 좋지 않은 거죠. 비료에는 질소(N), 인산(P), 칼륨(K) 성분이 있는데 이중 질소가 성장을 빨리 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질소의 양은 식물성이 동물성 비료보다는 적죠. 하지만 결국 양의 차이일 뿐이에요. 일반농법에 비하면 적다는 거죠.

보통 서구화된 식습관이 현대병을 야기시킨다고 합니다. 육류, 패스트 푸드, 빨리 성장시킨 음식들이 현대인들이 주로 먹는 것들인데, 이를 제가 만든 용어로 저전압 식품(low tension food)이라고 합니다.

고전압 식품(high tension food)이 분자 간의 결합이 강한 '슬로우푸드'(slow food)라면, 저전압 식품은 패스트푸드(fast food)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스트푸드가 보통 피자나 햄버거 같은 것만 생각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개념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빨리 만들어진 음식이에요. 이렇게 빨리 만들어지면 분자 간의 결합이 낮아지는데, 이런 음식들이 빨리 썩고 이런 것만 먹으면 사람이 저전압 체질로 바뀌게 됩니다. 한 마디로 부실해지는 거죠."

길들여진 입맛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사람들은 당연히 '맛있는' 음식을 좋아합니다. 맛있는 음식이란 한 마디로 달고 부드럽고 고소한 음식들인데요. 이런 음식들은 또 소화도 잘 됩니다. 이게 좋은 것 같지만 전혀 좋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달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음식들은 대개 당이나 지방으로, 몸에서 무리 없이 흡수되는 것들입니다. 몸이 이런 음식들에만 익숙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약해집니다. 담백하고 씁쓸하고 거친 음식들을 먹으며 이것들을 소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움직일 때 몸도 건강해지는 겁니다."

자연재배가 비료도 안 주는 거라면, 사람이 하는 일은 뭔가요. 아무 것도 안 하는 건가요.

"필요한 건 '기다림'입니다. 산림이 어느 시점에서 걷잡을 수 없이 울창해지는 것처럼 채소도 그렇게 스스로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오히려 식물들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일수록 울창한 숲을 이룹니다. 이렇게 자생하는 자연이 농작물에서 발휘되지 못하는 이유도 인간의 욕심 때문이죠. 얼른 성과를 내려고 하는 인간들이 비료와 퇴비로 땅을 변질시키니, 농작물이 자생 능력을 잃은 것입니다. 개발 시대야 배고팠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삶의 질이 중요한 시대지 않습니까.

인간의 역할은 '자연재배'라는 말 자체에 들어 있습니다. 자연재배는 '자연농법'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유기농법처럼 별도의 농법이 아니기 때문이죠. 자연재배라는 합성어는 자연+재배의 합성어로, 원래는 사전에도 없는 말입니다.

자연은 인간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고, 재배는 인간이 심고 가꿔서 기르는 것으로 상반되는 것이거든요.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인간의 역할을 최대한 줄여주는 게 자연재배의 영역입니다. 바른 방향을 위해서 가지를 살짝 쳐준다던가, 햇빛을 가려주는 게 전부죠."

하지만 도시에서는 자연재배 농산물을 구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깨끗하고 안전한 채소를 먹고 싶어합니다.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요새 가정재배가 거론되는데 도시에서 이런 재배법을 하기는 당연히 어렵습니다. 보통 3년 정도까지는 성과가 전혀 없거든요. 그래도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농약 유무에 신경을 쓰는데, 농약보다 비료가 더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농약에 대한 검사가 잘 이루어져서 이 부분은 개선이 됐지만, 비료 사용의 문제는 전혀 인식조차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많든 적든 비료가 투여된 농산물을 먹으면 우리 체질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보다 건강한 체질을 위해선 최대한 무비료의 농산물을 섭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재배야말로 진정한 친환경이라는 말씀 같습니다. 그럼 현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이런 인식이 확산될 수 있을까요.

"정부의 지원이나 생산자의 인식 얘길 많이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소비자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한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정책이나 생산자가 아니라 결국 소비자들이거든요. 사람들이 인간과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바꾸고 실천할 때 진정한 친환경적 생산과 유통, 소비가 이루어질 겁니다. 지금은 일부 민감성 체질인 분들만 찾고 있지만 앞으로는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라도 자연재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