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K-POP 이을 글로벌 경쟁력 강화 위한 국제 포럼 개최'포맷 바이블' 만들고 진출국 현지화, 공동제작 등 방안 모색

KBS '도전! 골든벨'
일본의 실력파 가수들이 노래로 서바이벌을 벌인다면?

6월 14일 MBC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 제작진은 간담회를 열고 미국과 일본에 포맷 수출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일본은 '나는 가수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드라마 '겨울연가' 이후 드라마 수출이 호황을 누렸던 2000년대 초반, 일본 시장은 국내 드라마 콘텐츠의 대부분을 수입하며 한류 열풍을 선도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콘텐츠는 어땠을까. 우리가 일본의 것을 많이 가져다 쓴 게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예능국의 PD들은 인터넷으로 일본 예능 감상에 빠져있다'고 했을까.

그래도 이젠 옛말이 될 듯 싶다. 이미 의 포맷은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수출이 됐다. 지난해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한콘진)의 지원 속에 '포맷 바이블'까지 만들어 체계적으로 포맷이 수출되는 성과를 올렸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도 한콘진의 지원을 받아 포맷이 터키, 미국 등에 소개되고 방영된 경우다. 해외시장에서 국내 예능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아시아 예능 시장은 어떤가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포맷이 해외진출을 하기 위해선 우리 밖의 시장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6월 25일부터 27일까지 제주도에서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포맷의 글로벌화'를 주제로 국제 포럼을 개최했다. 드라마, K-POP에 이어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해외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할 수 있도록 예능 프로그램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이번 포럼에선 일본의 유명 예능 작가이자 연출가 모리노 신지와 포맷 프로듀서 오쿠이 코헤이가 초청돼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 글로벌 전략과 아시아적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 강연했다.

국내 예능 작가 곽상원, 김경남, 김일중, 문선희, 모은설, 문은애, 박원우, 신여진, 이우정, 이지은, 최대웅, 황선영 등 27명과 함께 국내 예능의 세계화를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토론을 벌였다.

SBS '웃찾사'
모리노 신지는 일본의 '사루지에', '오하스타' 등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는 대표적인 예능 작가다.

그는 1998년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해 '요시모토 신희극'의 각본 및 연출을 맡아 활동했으며, 요시모토흥업(일본의 기업으로 매니지먼트, 텔레비전·라디오 프로그램 제작, 연예 사업 등의 주력 회사)의 아시아프로젝트의 업무로 대만 근무를 하며 '타이완판 요시모토 희극'을 제작해 현지화를 모색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번 포럼의 강연자로서 '아시아 예능 프로그램의 동향'과 '일본 예능의 아시아 현지화 사례'에 대해 발표했다.

"한국의 예능 포맷이 해외진출을 하기 위해선 우리 밖의 시장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같은 아시아권 시장이라 해도 각 국가마다 웃음의 코드가 다를 수 있어 진출 국가에 따른 현지화 전략이 필수이다."

모리노 신지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같은 아시아권이라도 개그(웃음)에 대한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화 전략으로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한국이나 일본은 같은 공개 라이브 개그공연을 즐기고 있다. 우리와 같이 일본도 '라이브 개그 공연'이 비교적 대중화되어 있어 그리 낯설지 않다.

일본 미국 공동제작-더 라스트 스퀘어 가상도
그러나 대만이나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 대만은 개그맨이라는 전문 카테고리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성대모사나 흉내내기에 그치는 경향이 많다. 공개 라이브 개그공연 등의 프로그램 포맷은 대만에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다.

중국은 공개 공연을 할 때 무대에서 제약이 많다. 일본식 '츠코미(딴지걸기)' 정도의 유머가 적용되지 않는다. 모리노 신지는 "'상하이판 요시모토 신희곡'을 제작했을 때 중국측에서 '경찰을 무시하는 대사나 스토리는 피해 달라'는 요구사항이 있었다"며 "여성, 특히 결혼한 부인을 비판하거나 웃음의 소재로 사용하는 내용은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이런 점을 보면 각국의 습관이나 문화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도전! 골든벨'이 베트남 등에 수출이 됐지만 유럽과 미국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후의 1인에게, 그것도 10대 고교생에게 학교의 명예를 짊어지게 하는 것은 매우 강압적인 분위기로 서양의 정서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포맷 비즈니스를 위해 각 국가의 심리나 정서를 빨리 파악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공동제작도 살길이다

오쿠이 코헤이는 '일본 예능의 미국진출 사례'와 '해외 공동 제작 프로그램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일본에서 '헤이헤이헤이', '링컹', '다운타운 디럭스' 등의 프로듀서이면서 미국과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을 타깃으로 한 예능 포맷을 개발하기도 했다.

온스타일 '프런코 시즌3'
"사실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큰 시장은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발 포맷의 아시아 진출에 비해 아시아발 포맷의 미국 상륙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일본은 아시아권 국가로서 예능 프로그램 포맷을 구미시장에 상륙시킨 선두주자다. 처음부터 미국을 타깃으로 한 기획으로 시장을 공략하거나, 공동제작을 통해 미대륙에 진출했다."

오쿠이 코헤이는 일본이 미국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를 '공동제작'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지상파 방송사 TBS와 일본 프로그램 제작사 요시모토흥업, 미국 최대 제작사인 CAA(Creative Artists Agency)는 '미국을 웃겨라'라는 프로그램을 공동제작 했다. 이는 TV제작의 국제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개발·고안한 프로젝트였다.

'미국을 웃겨라'는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에 출연한 배우 마시 오카가 제안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TBS 즉 지상파 방송국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전부터 일본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에 판매할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TBS는 이미 '사스케', '풍운! 다케시성' 등 1960년대 이후 50년 이상 해외 프로그램 판매에 적극적이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포맷 프로그램 판매를 실시한 방송사다.

이에 '미국을 웃겨라'는 일본에서 처음 녹화할 때부터 미국 출연자들에 의한 영어 파일럿판이 동시에 제작됐다. 프로그램 내용을 각각 현지화한 것이 기획의 특징이라는 것.

KBS '1대 100'
'미국을 웃겨라'는 일본 버라이어티 기획을 해외에 팔기 위해 진행되는 독특한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5개 정도로 기획된 프로그램을 미국 프로듀서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심사를 통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 미국에 기획을 팔 수 있는 형식이다. 그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셈. 기획 단계부터 진행 과정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선 너무도 생소한 포맷이다.

국내의 한 예능작가는 "일본의 예능 포맷은 매번 상상을 초월한다는 데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참신한 기획 아이템을 발전시켜 상업적으로 연결시키는 단계가 우리보다 훨씬 앞서있다"고 말했다.

한국 예능의 포맷, 어디까지 왔나?

이번 국제 포럼에서 논의된 '포맷'이란 무엇일까.

'포맷'은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구성이나 형식상의 독창적 요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에 따르면 15조 원 규모가 되는 방송프로그램 포맷 사업은 미래 콘텐츠 시장을 주도할 새로운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tvN '코리아갓탤런트' 심사위원3인
포맷은 어느 나라에서 구매하든지 그 기본 포맷을 기반으로 해당국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기에 성공적인 포맷의 시장 범위는 전 세계가 된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TOP 10 안에 8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포맷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이다. 세계 포맷 관련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포맷 제작을 통한 프로그램 편성비율 역시 매년 22% 증가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이 해외 프로그램들의 포맷을 사들여 편성표를 짜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2007년 은 네덜란드의 TV프로그램 제작사 엔데몰사로부터 포맷을 구입해 현재까지 방영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이 프로그램의 포맷을 구입해 방영 중이다.

KBS는 계약 때문인지 홈페이지 내에서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시청이 되지 않으며, 다시보기 서비스도 지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 이내의 시청률을 보이며 4년여 동안 장수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MBC '브레인 배틀'은 일본 후지TV의 포맷을, SBS '퀴즈 육감대결'도 일본 후지TV의 '퀴즈 헥사곤'의 포맷과 계약을 체결해 방송된 프로그램들이다.

이미 국내 케이블 채널들은 지상파에 앞서 해외의 예능 포맷을 사들여 국내 시장에 접목하는 데 일조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이하 프런코)와 '도전! 슈퍼모델'이다. '프런코'는 영국 프리멘틀 미디어로부터 포맷을 정식 구매해 벌써 시즌4를 준비 중이고, 미국 CWTV에서 포맷을 구입해 만든 '도전! 슈퍼모델'은 시즌2가 시작된다.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예능 포맷을 사들여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청률로서 좋은 결과를 말해주니 해외 포맷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MBC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영국 BBC 'Strictly Come Dancing'을, tvN '오페라스타 2011'은 영국 ITV 'Popstar to Operastar'의 포맷을 구입했으며, tvN '코리아 갓 탤런트'도 영국의 'Britain's Got Talent'를 포맷으로 구성됐다. QTV '순위 정하는 여자'는 일본 아사히TV에서, QTV '엄마를 바꿔라'는 영국 채널4의 'Wife Swap', tvN '러브 스위치'는 프랑스의 'Take me out'의 포맷을 들여왔다.

이처럼 해외의 포맷 구입은 예능 분야가 많다. 리얼리티쇼나 오디션 등의 포맷이 많은데 이들은 제작비가 저렴하다는 장점과 함께 이미 흥행에 있어서 검증된 결과(더불어 홍보와 마케팅에서도)를 낳았기 때문에 방송사에겐 무엇보다 안정적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해외 포맷을 수입만 할 것인가. 지난 2009년 한콘진은 방송 콘텐츠의 포맷 수출을 위해 우수 TV프로그램을 선정, 이들을 위한 '포맷 바이블(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집대성한 일종의 제작 매뉴얼)'을 제작 지원키로 했다.

SBS '인터뷰 게임', KBS '해피투게더-프렌즈',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게릴라 콘서트', Mnet '러브파이터'와 '추적 X-boyfriend' 등 예능·교양, 드라마에서 14편이 선정됐다.

'프런코'가 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포맷 바이블'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포맷 수출이 '맨땅에 헤딩하기' 수준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콘진은 당시 '포맷 바이블' 등의 제작을 위해 약 3억 6000만 원을 지원했다.

한콘진의 이러한 모색은 '도전! 골든벨'이나 '우리 결혼했어요' 등의 포맷 바이블을 제작하는 데도 지원됐으며, 정식 포맷 바이블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포맷 수출 가격에 있어서도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다.

결국 한국 예능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이번 국제포럼에서도 드러났듯 기획력과 세계 시장의 이해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포맷 구성에 대한 시스템화와 기획 단계에서의 해외 시장 연계 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예능작가 출신 SBS ETV 김경남 PD는 "예능은 장르적 특성상 기본적인 구조만 있으면 내용을 달리해 변종 생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표절에 대한 의혹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며 "그러나 바꿔 말해 제대로 된 틀만 가지고 있다면, 여러 작업을 통한 다양한 제품들을 수출할 수 있다. 각 나라에 맞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포맷들이 한꺼번에 개발될 수도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