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언론인 겸 작가인 엘리자베스 드루는 "마음을 넓히지 않고 여행만 많이 해봐야 수다만 늘어날 뿐"이라고 말한다.

좋은 여행을 위해선 여행자 자신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시간, 돈, 체력 같은 실질적인 면과 태도, 정보 같은 곁가지도 충실히 갖춰야 제대로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여행이 삶의 일부가 된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의 여행은 무엇이 다른가? 생애 최고 여행은 무엇인가?

1. 내 인생의 여행을 꼽는다면?
2. 그 여행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나 단상.
3. 여행할 때 지키는 나만의 수칙이나 징크스는?
4. 계획하고 있는 여행 혹은 꼭 가고 싶은 여행지.
5. 여행 트렁크에 꼭 넣는 물건 3가지.
6. '나에게 여행은 000이다.'
7. 근황과 올해 계획


시인 허수경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등을 냈다.

1992년 독일로 가 고대 동방문헌학을 공부했다. 시와 소설을 쓰는 틈틈이 고고학을 연구하며 여름이면 터키로 가 발굴 작업을 한다.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장편소설 <박하>를 연재 중이다.

1. 서울을 떠나와 지금까지 독일에서 지내는 것. 어떤 의미에서 나는 영원히 여행 중.

2. 여행자의 자아를 분명하게 만들어 주는 건 새벽에 잠을 깨었을 때 보았던 낯선 여관의 사물들이다. 지구의 모든 장소는 여행지이자 고향이다.

3. 없다. 다만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필사적인 노력. 나에게 여권은 여권 뿐 아니라 독일에서 살아가는 신분증이다. 이웃도시로 갈 때도 여권을 가지고 간다. 진짜 여행자로서 살고 있는 셈 (본의 아니게). 여행자가 되는 건 선택의 일이지만 여행이 길어지면 이건 선택으로 시작된 우연처럼 느껴진다. 마치 이렇게 생이 주어졌다는, 아주 불길한 느낌이 든다.

4. 제주도와 서해안의 섬들과 동해안의 섬들. 아직 가보지 못한 한국의 섬만은 가보고 싶은 마음. 누군가 동행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혼자 가서 그리운 것들을 실컷 그리워하면서 지내도 좋겠다는 생각. 섬들을 보고 싶은 이유는 그 고독 때문. 대륙과 떨어져 나온 땅의 고독과 가끔 일치가 되기 때문.

5. 어떤 시인의 시집 (누구의 시집이라는 건 밝히지 않겠음) 내내 이 시집만을 읽으면서 했던 여행도 있다. 시집들은 언제나 넣어 다니지만 어떤 시집은 항상 트렁크 안에 집어넣게 된다. 손톱깎기. 여행 중의 긴 손톱은 명상을 방해한다. 귀를 잘 감싸는 모자. 바람은 귀를 아프게 하고 귀가 아프면 정말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

6. '나에게 여행은 부재하는 사랑과의 대화이다.'

7. 인터넷 연재소설을 쓰면서 모국어와 나와의 관계를 많이 생각한다. 지난 겨울갔던 서울이 좋았는지 서울과 그때 만난 사람들도 생각한다. 소설 연재가 끝나면 다시 잠수. 새로운 문장이 떠오를 때까지 그대들을 사랑하기. 7월 말이면 다시 터키로 들어가서 발굴 일을 하고 가을 무렵에 돌아온다. 혹 발굴 중 시간이 나면 동터키의 지역들을 방문할 생각.

그림 에세이 작가, 수진안네

여행하는 그림 작가. 단편 애니메이션과 사진 작업, 미술학원 강사, 그래픽 디자이너 등 여러 직업을 거쳐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그의 그림은 여행지의 예쁜 풍경과 소박한 이미지, 즐거움과 외로움을 작은 붓과 고형물감, 색연필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그림들을 발랄하고 아기자기한 글귀와 함께 책으로 묶기도 한다. 여행서 <스타일리시 싱글여행>, <베트남 그림 여행> 등 여행에세이도 여러 권 발간했다. 본명은 최수진.

1. 미얀마. 2005년 혼자 배낭 메고 떠났다.

2. 그곳은 꼭 비행기를 타야만 입국이 허가된다. 여행자가 적다보니 여행자와 현지인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굉장히 관광객에게 친절하다. 여행자들이 전부 '무장해제' 된다. 가장 완벽한 한달 간의 여행이었다. 현지 사람을 조용히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얀마를 꼭 권한다.

3. 첫날 동선을 미리 다 짜고 가야 한다. 첫날만 잘 적응하면 여행은 만사 오케이다.

4. 볼리비아. 수도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있다고 들었다. 전통 의상과 음식 등등 전부 내게 맞는 곳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살사에 꽂혀 있는데, 살사춤을 맘껏 출 수 있다는 점에서 콜롬비아도 가고 싶다.

5. 사실 여행을 하면서 되도록 물건을 안 갖고 떠나는 게 좋은데 굳이 꼽으라면 반짓고리와 손톱깎이. 여행때 필요한 물품이지만 막상 현지에서 사려면 파는 곳이 별로 없다. 하나를 더 꼽으라면 MP3. 한국음악을 꼭 넣어 가야 한다. 외국에 가면 한국정서가 그리워 잘 안듣던 국내가요도 생각난다. 김치보다 노래가 그립다. 옷은 현지 기후에 맞춰 싼 거 사 입는 게 좋다.

6. '나에게 여행은 자극이다.'

7. 한달 전 회현 시범 아파트에 작업실을 얻었다. 남산 케이블카 타는 근처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남산 산책하고 남대문 시장 구경하고 오래된 아파트 기운을 느끼면서 작업하고 있다.

가을쯤에 친구가 있는 뉴욕에 공짜로 묶을 기회가 생겼다. 3달 정도 지내며 작업구상할 생각이다. 뉴욕은 현대살사의 메카다. 나는 이제까지 한국에서 LA식 살사로 췄는데, 요즘 뉴욕식 살사를 배우고 있다. 매일 밤마다 다른 바를 다니면서, 살사도 출 생각이다.

소설가 박형서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을 냈다. 유머러스하고 멜랑콜리한 소설만큼이나 독특하고 기이한 여행을 많이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태국에 8개월간 체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새벽의 나나>로 지난 해 대산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했다. 현재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1. 94년도에 다녀온 중국여행. 첫번째 해외여행이었는데, 그 경험으로 유랑벽이 생겼다. 수평선 끝에 가면 거대한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여행이었다.

2. 그 첫번째 여행에서 인생의 첫번째 사기를 당했다. 한국 돈으로 삼천 원에 불과했지만, 몹시 낙담해서 종일 밥을 굶었다.제 나라를 여행하는 이국의 핸섬한 대학생에게 사기를 치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3. 여행의 첫 이틀이 위험하다. 경험한 대부분의 안전사고, 소매치기, 분실, 만취로 인한 노숙 등의 사고가 첫 이틀에 집중되어 있다. 때문에 여행의 첫 이틀은 숙소에서 멀리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최근 들어 사고가 그 다음의 이틀에 집중되는 듯하다.)

4. 남태평양의 팔라우에 가고 싶다. 바다가 몹시 아름답다고 하더라. 가서, 말레이시아 쁘렌띠안이나 태국 꼬리뻬 등의 바다와 비교해보고 싶다. 산이 멋진 곳과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 있다면, 나는 단연 바다를 택한다. 수영을 좋아하지만 등산은 질색이다. 산은 멀리서 구경하라고 있는 거지, 가서 밟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그냥 내 생각.

5. 보이스레코더. 놀라운 악필이라 메모 대신 녹음을 한다. 비자발급용 다량의 사진. 여행 중 갑자기 국경을 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모기 물린 데 바르는 약. 경험상, 모기를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사후 처치라도 잘 해야 한다.

6. '나에게 여행은 거의 모든 것의 원천이다.'

7. 내일(7월 2일) 이스라엘로 떠난다. 나중에 소설로 구상하겠다고 하지만, 이건 작가라서 하는 변명이고 일단 텔아비브에서 지중해를 즐기는 것 외엔 아무 생각이 없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