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문화 중심에 서다삶의 공간은 섬세한 생태계 자발적 동네 문화는 그 출발점

"동네는 섬세한 생태계, 자율적 가치 만들어가야"

김일현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시민이 스스로 동네 문화를 꾸려가도록 지원하는 서울문화포럼의 지역문화발굴워크숍 '서울을 큐레이팅하다'의 멘토다. 그는 도시가 정권에 의해 규정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삶의 공간은 섬세한 생태계고, 그 안에 얽힌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돌보려면 구성원의 자발적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동네에 애정을 갖고 이웃과 공감대를 만드는 문화는 그 출발점이다.

도시민의 정주 기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아파트 이외의 다양한 주거 형태가 고민되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 그만큼 주민들이 동네의 정체성을 공유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부동산 가치가 서울시민의 이사를 결정짓는 절대적 기준이었던 이전에 비한다면 말이다.

"이제까지 서울에서 지역 정체성을 공유한 집단은 두 종류였어요. 아파트 부녀회와 철거민들. 이외에 지역을 형성하는 다양한 가치가 이야기되는 건 흥미로운 현상이죠."

김일현 교수는 개인의 선택이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동네 문화에 기대를 걸지만, 그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우려가 많다. 동네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 정서적 공감대 외에도 현실적 조건들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율성도 그 중 하나다.

"예를 들면 한 동네에서 어린이 대상 성범죄를 줄이는 방법을 논의한다고 칩시다. CCTV 설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어요. 그보다는 동네 어디나 사람들이 항상 생활하는 환경으로 만들거나, 학부모회 등 지역 공동체가 함께 아이들의 방과 후를 책임질 때 범죄가 예방되죠. 이런 합의와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 없이 지역사회가 지속 가능할까요?"

동네 문화는 편의성을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개발되어 온 한국의 도시들에 배려의 가치를 불어 넣을 수 있다. 구성원들의 관계가 바탕이 된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웃의 할머니와 어린이, 작은 쌀가게와 과일가게에 대한 생각으로 가꾸어진 동네는 누구에게나 인자한 곳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타워팰리스일 때, 그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삶의 터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행복한 사회 아닐까요?"

김일현 교수는 "도시는 소모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천천히 일구어 나가야 하는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그 작품은 사람의 수명보다, 한 세대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에 더 정성을 들여야 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