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재우 서촌라이프 발행인한때 시대에 뒤처진 동네, 지금은 희귀하고 소중한 가치 품은 동네

약 1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누구보다도 반갑게 맞아준 것은 서촌의 풍경이었다. 30년 인생의 대부분이 깃들인 곳, 구석구석이 제 몸 같은 서촌은 고맙게도, 변함없었다.

오래된 골목, 정든 얼굴들과 마주치며 정말 돌아왔구나, 싶었다. 고향이란 그런 것이다. 귀향 후 삶의 갈림길에 선 설재우 씨는 이제 서촌에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서촌의 삶을 담아 알리는 '서촌라이프'는 그렇게 탄생했다.

동네에 배포되는 2천부가 5일 만에 동난다는 '서촌라이프'의 인기는 의지와 상관없이 떠돌아다녀야만 하는 현대인들의 향수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용 하나 하나가 오래된 것, 변하지 않은 것, 그런 것들에 대한 설재우 발행인의 애정이다.

"서촌에서는 오래 산 사람 앞에서는 계급장 떼는 문화가 있어요.(웃음) 30년 이상 산 사람이 태반이고 50년, 심지어 80년 산 분도 계시거든요. 10년 살면 그제야 좀 살았다고 인정해줄 정도죠. 그만큼 이웃 간 정도 깊고, 서로 잘 아는 분위기예요. 누가 가게를 열면 다들 와서 들여다보고, 며칠 문 닫아 놓으면 어디 갔냐고 묻고요. 사람 사는 데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내 이곳에 살다 7년 전 사정이 생겨 동탄 신도시로 이사를 간 설재우 발행인의 부모는 지금도 주말마다 통인시장으로 장을 보러 온다. 이웃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서촌은 눈에 보이는 풍경만큼이나 사람 관계도 정취 있는 곳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에서 서촌은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곳,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곳입니다. 사람이 만든 동네가 아니에요, 시간이 만든 동네죠."

청와대 옆이라는 지리도 한몫했다. 개발에 대한 규제가 옛 모습의 보존과 삶의 연속성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 덕분에 한때는 시대에 뒤쳐진 동네였지만, 지금은 희귀하고 소중한 가치를 품은 동네가 됐다.

"언젠가 독일 하이델베르크를 '100년의 역사가 있는 낭만의 도시'라고 소개한 기사를 봤어요. 그때 하루하루가 이렇게 다른 한국에도 낭만의 도시가 있을까, 싶었죠. 도시 전체를 보존할 수는 없어도 서촌만큼은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몇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가 한 곳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설재우 발행인은 경쟁에 치이고 공부에 찌든 아이들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과감히 서울을 떠날 자신이 없는 가족에게 서촌살이를 권한다. 이웃 간의 정이, 동네의 역사가 함께 아이들을 길러줄 것이란다.

한번이라도 서촌의 골목을 찬찬히 걸어본 사람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이곳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삶의 가치를 가르쳐준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