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MBC 앞 '삼보일퍽'
'김여진 법', '삼보일퍽'.

MBC가 내외적으로 시끄럽다. MBC는 최근 '소셜테이너 금지법'을 시행하면서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예정이었던 배우 김여진의 출연을 무산시켰다.

MBC는 개정된 심의규정에서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하여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하거나 사실을 오인하게 하는 발언이나 행위로 인하여 회사의 공정성이나 명예와 위신이 손상되는 경우'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김여진이 출연한다는 예고가 나가자마자 MBC는 부리나케 '소셜테이너 금지법'을 확정지었다.

문화콘텐츠 제작자 겸 성공회대 겸임교수 탁현민씨는 지난 7월 18일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앞에서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삼보일퍽'은 세 걸음 걸은 뒤 '소셜테이너 출연 금지'에 항의하는 뜻으로 MBC 사장실을 향해 팔뚝을 들어 보이는 행위. 그는 "'소셜테이너 출연 금지법' 폐지를 촉구하며 MBC를 규탄한다"며 "만약 MBC가 포기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MB정부의 미디어정책 평가와 미디어개혁 과제' 토론회(사진제공=PD연합회)
그러자 작가 이외수, 공지영과 배우 김여진과 문성근, 화가 임옥상과 강풀, 영화인 김조광수와 고영재, 학자 제정임과 최영묵, 김창남, 홍성태 등 21명이 'MBC에 출연하지 않겠다'며 출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사회 저명인사들이 마치 MBC에 항거라도 하듯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우리는 이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언론계, 토론회·세미나로 바빠진 이유

"훼손된 미디어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언론계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나섰다. 갈수록 고민이 없어지고 연성화된 미디어를 바로잡아보겠다는 취지다. MBC는 '소셜테이너 금지법'을 확정지었고, KBS는 한 정치부 의 도청 의혹으로 떠들썩하기만 하다. 이를 지켜보고만 있겠다는 게 아니다. 문제를 직시하고 관계자들이 먼저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짚어보자는 데 있다.

'한국방송의 현주소' 세미나(사진=PD연합회)
먼저 7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선 열린 '2011 한국언론정보학회-미디어정책개혁 논단' 시리즈 1에선 'MB정부의 미디어정책 평가와 미디어개혁 과제'가 주제였다. 단국대 정재철 교수의 사회로 열린 토론회는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은 향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회복과 미디어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번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성공회대 최영묵 교수는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 결과 '미디어 산업의 국내외적 경쟁력 지속적 하락', '공공미디어의 영역 붕괴 위기 가속화', '특혜성 사업자 선정 추진, 정당성 위기 가속화', '언론에 관한 정치적 통제 강화에 따른 표현의 자유 위축', '갈수록 심해지는 신문, 방송 등의 수익 구조', '한국사회 언론, 공론영역의 붕괴 위기 가속화' 등을 꼽았다.

그는 "언론정책은 미디어, 민주주의, 시민참여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 근거해야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지속될 수 있다"며 "과거 대부분의 집권세력은 언론자유와 공익성, 공공성을 표방했지만 이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그 결과를 정책의 근거로 삼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한국 언론정책의 한계이자 현주소"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미디어 시장, 여론 시장 정상화를 위한 과제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모든 미디어정책의 근간은 미디어 영역에 무관하게 각 개인의 표현의 자유 보장을 중핵으로 해야 한다', '미디어 산업 정책의 핵심은 미디어의 다원적 균형발전에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디어 정책은 권력의 정치적 개입과 자본의 시장을 통한 개입의 제어' 등이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향후 우리사회가 진행해야 될 미디어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는 여론마저 편중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동의대 문종대 교수는 "종편 출범으로 지역 간의 여론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종편이 완비되어도 결국 수도권 뉴스를 소비하는 게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KBS '톱 밴드'
즉 지역에 를 파견할 정도의 규모로 종편이 성장할지도 의문이고, 수도권 중심의 뉴스가 결국 기존 미디어의 균형마저 무너뜨릴 것이란 우려다.

사회고발 프로그램 소멸현상

"비판적 저널리즘의 말살 위기"

또한 22일에는 서울 정동 환경재단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와 한국PD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해 '한국방송의 현주소'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의 취지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대내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잦은 결방과 지연 등과 관련해 방송인과 학계의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MBC스페셜'의 '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은 예고까지 나간 상황에서 불방됐다. 방송 사흘을 남기고 결방된 것. '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은 정치인 남편을 둔 그 아내들의 이야기였다.

KBS '낭만을 부탁해'
김영명(정몽준 의원 부인), 박영옥(강기갑 의원 부인), 송현욱(오세훈 시장 부인), 신은경(박성범 전 의원 부인), 이순삼(홍준표 의원 부인), 이정숙(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부인), 이현숙(박주선 의원 부인), 정영자(한광욱 전 민주당 상임고문 부인) 등 '정치인의 부인'이라고 불리는 그녀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결방되면서 'MBC 스페셜'의 정성후CP가 보직을 사퇴하는 상황까지 초래됐다. 'MBC 스페셜'은 시사고발의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기 보다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돼 감동을 선사하는데 더 힘을 싣는 쪽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이 결방되면서 현 정권의 영향력이 미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여기에 '고정출연제한 심의조항'인 '소셜테이너 금지법'까지 제정하면서 '할 소리 하는 사람들'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일고 있다. 이에 언론계나 학계에서는 "제대로 된 시사고발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을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국방송의 현주소' 세미나도 이 같은 취지에서 기획됐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극동대 김형일 교수는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비판적 저널리즘을 말살시켰다"며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KBS 황대준 PD협회장과 MBC 최승호PD는 "현재 PD들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라며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제작 자체가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tvN 'tvN 스페셜'
이에 대해 방송의 자유와 편성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형일 교수는 "정부의 비판적 저널리즘에 대한 공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근거 및 제도를 개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유영주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도 편성권 독립에 힘을 실었다. "각 방송사별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방송법과 연동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게 수반돼야 할 것이다."

24시간 즐거운 케이블 채널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지상파 방송 3사에는 서바이벌에 목숨을 건 듯한 모습이다. 특히 금요일 밤은 KBS '도전자',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SBS '기적의 오디션' 등이 장악하고 있으니 '케이블판'이 따로 없다.

주말에도 사정은 마찬가지. 각 방송사는 황금시간대에 예능과 드라마에 자리를 내주고 있으니 뉴스 이외에는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 모든 게 다 케이블 탓일까? 케이블의 '슈퍼스타 K'의 성공이 지상파 방송의 케이블 베끼기를 합리화 하도록 내버려 뒀으니 말이다.

KBS의 경우 교양국이 서바이벌 신드롬에 편승해 '톱 밴드'를 제작하고, 예능 '낭만을 부탁해'를 방영 중이다. 지상파 방송의 범람하는 예능 코드에 눈을 돌려 케이블 채널을 봐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국내 최대 케이블 채널을 보유한 CJ E&M. 무려 18개의 채널을 확보하고 있다. 종합오락채널 tvN과 영화채널 채널CGV OCN 수퍼액션, OCN시리즈 그리고 스타일 채널 온스타일, 올리브, XTM, 스토리온, 음악채널 Mnet과 KMTV, 게임채널 온게임넷과 바둑TV, 어린이채널 투니버스,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 중국전문채널 중화TV, 프리미엄 채널 캐치온, 캐치온플러스 등이다.

그런데 이들 채널에서 방영되는 시사고발프로그램은 몇 개나 될까? tvN이 다큐테인먼트라는 카테고리 안에 '백지연의 끝장토론'과 'tvN 스페셜'이 존재할 뿐 다른 채널에선 심도 있는 시사고발이란 기대하기 힘들다. 스타일과 영화, 만화 등이 대부분이라 24시간 동안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들이 줄기차게 전파를 탄다.

'tvN 스페셜'도 시사고발보다는 다큐멘터리의 성격이 강하다. 첫 회 '아시안 팝'을 시작으로 '진정성 세계를 홀린 피노이', '개방, 중동을 흔들다', '아시아류에 주목하라', '인간 vs 고래', '아빠의 임신', '스마트폰 연애시대' 등 현 트렌드를 비추는 역할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에서 시사고발에 대해 허기를 느낀 시청자들이 케이블 채널로 리모콘을 돌릴 리 만무하다. 지상파 방송보다 표현수위 면에서 제재를 덜 받는 탓에 예능적인 감각을 유감없이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

지상파 방송의 한 교양PD는 "결국은 시청률 장사가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사정은 달라진다"며 "만약 시사고발프로그램의 시청률이 20% 가까이 올라간다면 제작의 여건과 환경은 더 좋아졌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고민 없이 재미와 쾌락만을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이 넘쳐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