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영화 연극으로 원작의 힘 보여줘'전복과 일탈의 상상력', 판타지, 난센스 등 억제되었던 요소 재인식해야

100관객 달성을 앞둔 <마당을 나온 암탉>
올해 2월 말, 이탈리아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그림책 '마음의 집'(글 김희경, 그림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이 라가치(Ragazzi)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은 것이다. 이 상은 '아동출판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릴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2004년 이후, 한국의 어린이 책 5권이 픽션과 논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았지만 대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번 도서전에서 인권 그림책 '거짓말 같은 이야기'(강경수)도 논픽션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며 한국 아동문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세계적인 무대에서의 수상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성장한 한국의 아동문학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만 해도 당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접할 수 있었던 아동문학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당시 아동들에게 권해졌던 책은 번역되어 나온 세계문학 전집이나 위인전집 등이었다.

그나마도 번역의 질이 좋지 않은 짜깁기 식의 번역이 주를 이뤘다. 그 외의 교훈적이고 계몽적이거나 획일화된 사상을 강요하는 서적들은 아동문학이 성장할 여건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아동출판계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침체에 빠졌던 기존의 인문·문학 출판사들이 아동출판계로 눈을 돌려 그곳에서 활로를 찾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들의 선택 폭은 한층 다양해졌고, 눈에 띄는 양서도 늘어났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차지한 <마음의 집>
장르도 다양해져 역사와 허구를 접목한 팩션이나 교양과 엔터테인먼트의 조합, 문학과 미술의 접목, 아동문학의 결점으로 지적받던 스릴러와 판타지 등 성인 도서 못지않게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해진 아동출판물은 책에서 멀어진 아이들을 다시금 서점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또 아동문학은 '애들이나 읽는 장르'라는 인식에서 차츰 벗어나 지금은 그런 구분 없이 폭넓게 소비되는 장르가 됐다.

그러나 국내에서 질적인 측면에서 수준 높은 아동문학의 사례는 아직까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준이다. 기존의 아동문학이 가진 '순수한 동심'과 '교훈 주의'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첨단 매체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 독자의 감성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작품도 드물기 때문이다.

아동문학평론가 원종찬씨는 "우리 아동문학에 부족한 '전복과 일탈의 상상력'을 비롯해 판타지, 난센스, 패러디, 유머 등 그동안 억제되었거나 주변부로 여겨졌던 요소들을 재인식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진단한다. 이는 최근 다른 장르로 변주되며 아동문학이 좋은 텍스트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작품들로서 입증되고 있다.

성공한 아동문학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 제작 중인 영화 <완득이>
최근 극장가와 서점가에서 동시에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6년여의 작업을 거쳐 완성된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얼마 전 6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역대 국내 애니메이션 1위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와 함께 원작인 황선미 작가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도 단박에 전체 베스트셀러 7위로 뛰어올랐다.

애니메이션 그림책도 15위로 급상승했다. 두 책은 아동도서 부문에서는 나란히 1, 2위(인터파크 도서 8월 1일주 기준)에 랭크되는 등 독자들의 반향도 뜨겁다.

2000년 초판을 찍은 이후 줄곧 이 부문의 1위를 지켜온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양계장에서 편하게 사는 것을 포기하고 마당을 뛰쳐나온 암탉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꿈과 자유, 사랑을 실현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가족의 틀을 상징하는 '마당'을 벗어나 자연을 상징하는 '저수지'로 향하는 중심 캐릭터, 동물 세계의 약육강식에서 맞은 죽음 등 기존의 동화의 설정과 한계를 모두 뒤집는다. 하지만 주어진 운명에 안주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암탉의 모습은 오늘날 비슷한 현실을 사는 독자들의 감성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권정생의 베스트셀러인 '강아지똥'(1969)은 동명의 연극으로 만들어져 지금도 해마다 무대에 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강아지똥을 통해 아무리 작고 하찮게 보이는 것이라도 모두가 귀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연극이 된 동화 <강아지똥>(사진제공=극단 모시는 사람들)
강아지똥 역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암탉과 마찬가지로 외면당하는 존재다. 자신이 하찮다는 생각에 슬퍼하던 강아지똥은 우연히 민들레 꽃씨에게서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듣고 민들레꽃을 위해 자신을 거름으로 희생한다. 이처럼 비극적인 현실을 희생을 통해 초월하는 세계관은 기존의 아동문학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신세대 아동문학 작품에서 이처럼 동시대의 사회 상황을 반영하려는 의지는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10대 아이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그려낸 '완득이'(김려령)는 온갖 비주류 구성원으로 이뤄진 가족 속에 살아가는 완득이가 주인공이다.

난쟁이 아버지와 외국인 노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완득이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마음만은 여리다. 때로는 아이답게 엉뚱하고 서툴러 보이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나타날 땐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작품이 더 주목받은 것은 아이라는 존재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성숙한 인격체'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몰라 방황할 뿐이고, 그런 시행착오의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킥복싱을 배우면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법을 익히고, 어머니를 만나며 애정을 표현하는 법을 깨달으면서 작품 속 완득이는 조금씩 성장한다.

이제까지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불량 청소년의 등장은 국내에서 공감을 얻기 어려웠지만 이 같은 가정 환경과 '성장'의 과정은 그런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게 한다.

어린이와 함께 성장해온 해리포터 시리즈의 완결편, 영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또 아이의 시선을 통해 장애인과 다문화, 빈부 격차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완득이'는 기성 세대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이 작품이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연이어 옮겨지고 있는 것도 원작 텍스트가 가진 힘을 말해준다.

한국 어린이 책에서 2% 부족한 그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가의 아동문학은 정체된 상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1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고, 한국 아동문학의 오랜 아이콘으로 자리해온 권정생의 동화, 만화로 그리거나 쉽게 풀어쓴 역사서와 미하엘 엔데를 비롯한 다수의 해외 작가들의 번역서가 다수를 차지한다.

달리 말하면, 아동문학에 있어서 세대교체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좋은 책은 시공을 초월해 읽히게 마련이지만 그만큼 새롭게 선보이는 책이 어린이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큼 흥미롭거나 신선하지 못하다는 점을 방증하기도 한다.

(사)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09년에 번역 출판된 총 발행 종수 중 아동출판 부문은 문학 다음으로 많았고, 사회과학 서적보다도 많은 7천여 종에 이르렀다.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이 다수를 차지했다.

2000년 이후 크게 늘어난 번역서는 문화권이 편중되어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세계의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기보다 주요 국가의 세계관을 주입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렇다면 한국의 아동문학은 어떤 점이 부족한가. 전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아동문학평론가들은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아동의 등장과 아이들 시각에서의 유희 부재, 아동문학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판타지의 결핍을 문제로 꼽는다. '교훈주의'와 '동심'의 흔적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오랜 연구를 통해 전래동화가 어린이들의 내면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가 말하는 좋은 어린이책이란 "어린이 인생 전반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즐거운 이야기여야 한다. 또한 그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암시해주며 마음의 안정과 더불어 자신감을 북돋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국 역시 전래동화를 통해 이런 부분을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지금의 어린이는 20년 전의 어린이와는 분명 다르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상현실은 단순한 판타지라기보다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아동문학에서의 판타지는 더욱 중요해졌다.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황영숙씨는 저서 '디지털 시대에 어린이의 자리를 묻다'에서 "인터넷, 게임, 텔레비전, 영화 등 가공된 현실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오늘날의 어린이들에게 현실의 의미는 과거와 많이 다르다. 가상현실, 환상세계는 어느새 현실의 일부분이 되었고 때로는 현실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판타지는 이렇듯 급변한 아동의 삶과 정서를 담아낼 문학 양식으로써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이 시대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 문학의 존재 이유를 역설한다.

조앤 롤링을 세계적인 부호로 만들어준 '해리포터'의 문학적 가치를 폄하하는 비평가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 세계 어린이들과 함께 자라온 책이었고, 교사나 학부모의 입김이 아닌 아이들이 직접 선택해왔다.

평론가들은 그 이유를, 환상세계임에도 현실세계에도 존재하는 학교, 은행, 백화점 등을 구체적으로 살려놓은 점, 흡인력 있는 문체, 자연스러운 서사 전개를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황영숙 평론가 역시 이런 점에 주목하며, 단순히 신화적 존재나 전설의 차용이 아니라 "작가의 새로운 해석과 서사의 개연성 있는 결합이 보다 중요하다"며 기존의 신화의 새로운 해석과 더불어 신화적 요소의 발굴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아동문학 작가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