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제5대 국새' 공개"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 따르지 않고 조선총독부 철자법 따랐다"대종언어연구소 문제제기"국새 제작 표기 규정이 옛글자 그대로 표기한다는 의미 아니다"행정안전부 해명

▦고대 전서체로 새겨진 제1대 국새.
우여곡절 끝에 제5대 국새(國璽)가 공개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일 국새가 지난달 말 완성됐으며 '국새 규정'을 개정하는 대로 이달 중 훈‧포장증과 외교문서 등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5대 국새는 지난해 제4대 국새 제작단장인 민홍규씨의 제작 비리가 드러나면서 새롭게 제작됐다. 손잡이인 인뉴는 전통금속 공예가 한상대씨의 작품을, 아랫부분인 인문은 서예전각가 권창륜씨의 작품을 토대로 했고, 제작은 제3대 국새를 만든 한국과학기술원(KIST)가 맡았다.

국새는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 문서에 국가의 표상(表象)으로 사용되는 만큼 한 나라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한다. 그런데 제5대 국새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체를 사용토록 한 '국새 규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국새 재질변경 의혹에다 인문 모형에 공정성 시비의 여진으로 사용 초기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제5대 국새와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글자체' 부분이다. 국새의 글자체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字體)에 따르지 않았고, 중국식 표기법을 추종했거나 조선총독부 철자법을 따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국새 제작 표기 규정에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제5대 국새는 이를 지키지 않았고, 국새에 새겨진 '한'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중국 한나라의 한(漢)을 가리키던 말"이라고 주장했다.

▦<동국정운>의 '대,한,민,국' 한글 표기로 조합한 국새의 글자체.
박 소장은 갑골문(甲骨文) 연구의 권위자로, 지난해 6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 보물1411호)'이 한국어식 한문 표기가 아니라는 새로운 연구 내용을 학회지에 발표해 관심을 끄는 등 한문, 한글 분야에서 독창적 연구 성과를 내오고 있다.

현행 국새규정(대통령령 제22508호)은 제5조(국새의 인문)에 "①국새의 인문은 '대한민국'의 네 글자를 한글로 하되, 가로로 새긴다. ②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한다"로 명기돼 있다.

규정대로라면 '대한민국' 네 글자는 훈민정음의 규정에 따라 표기되야 한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체'는 1446년 창제된 <훈민정음>(국보 70호)의 규정에 따라 1448년에 작성된 <동국정운(東國正韻)>(국보 71‧142호)에 나무활자로 찍은 한글 자체가 그대로 존재한다.

박대종 소장은 "동국정운의 글자체에 따라 현재의 '대한민국'은 각각 '대(大)→ㆍ땡', '한(韓)→ㅎ한', '민(民)→민', '국(國)→귁'으로 표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당시 'ㄸ', 'ㅎㅎ'은 현재처럼 된소리가 아니라 '긴소리(長音)'이며, 'ㆍ때' 받침의 'ㅇ'은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묵음(默音) 표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大)가 'ㆍ땡'이라고 적혔다고 해서 '땡'으로 읽히는 것은 아니며, 당시 꼭지가 달리지 않은 ㅇ은 묵음으로 읽혀 '땡'이 아니라 '대'와 똑같은 발음"이라고 말했다.

▦<동국정운>에 나오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최초의 글꼴.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는 "국새 규정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꼴을 활용해 '대한민국'을 표기한다는 의미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글자를 그대로 표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새규정은 "글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한다"고 명시돼 있고 '활용'이란 말은 없다. '활용' 하려면 행안부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구한 후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새 규정을 바꾸는 게 순리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대(大), 韓(한), 民(민), 國(국)'에 대한 자체가 국보로써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고 임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다. 이는 제1대 국새가 '대한민국지새'라고 새겨져 국새의 자체는 전서체로 한다는 규정에 충실하게 따른 것과도 대조된다.

행안부 관계자는 또 '대한민국'을 국새 인문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중국의 국새가 된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박대종 소장에 따르면 '한(韓)'의 훈민정음 창제 당시 자체는 탁성 쌍자음 'ㅎㅎ'과 중성 'ㅏ'와 종성 'ㄴ'으로 구성된 반면, 중국을 대표하는 '한(漢)'의 자체는 단자음 'ㅎ'과 'ㅏ', 'ㄴ'으로 구성돼 현재 국새와 가깝다.

게다가 제5대 국새의 인문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언문철자법'을 강제, 아래아(•)를 폐지하는 등 일본어 표기규정을 따르도록 한 것을 그대로 답습한 형태로 볼 수 있다. 1930년대 박승빈, 최남선, 윤치호, 이병도 등 지식인들이 일본어 표기법에 부합하는 주시경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대해 '한글식 新철자법 반대성명서'를 낸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다.

그밖에 국새 제작 과정에 재질변경 등 낙찰자 선정이 투명하지 못해 다툼이 일었고, 국새 인문 공모전에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 것도 제5대 국새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다.

▦제5대 국새와 현대문 글자체(위 사진). 4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이서행 국새제작위원장이 제5대 국새를 보여주고 있다(아래 사진).
'국새규정'과 국새의 역사성, 정통성 등을 감안할 때 제5대 국새는 시작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이러한 국새를 국가 중요 문서에 국가의 표상으로 계속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 재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