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일가가 재산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의혹이 있는 대기업 내부거래에 제동이 걸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내부거래 공시 의무를 어긴 STX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등에 과태료를 부과한 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 계열회사간 상품ㆍ용역 거래(내부거래) 현황을 공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국정과제로 공정사회와 공정과세를 강조해온 터라 대기업들은 공정거래위와 국세청이 향후 어떤 추가 조치를 취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벌 재테크에 제동?

공정거래위 발표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SK 등 5대 대기업 내부거래 금액 총액은 지난해 100조원을 돌파했다. 내부거래란 계열사끼리 물건을 사주거나 인력을 지원하는 행위. 내부거래로 일감을 독식한 계열사는 경쟁 자체가 없어 승승장구했고, 그 회사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도 엄청난 재산을 챙겼다.

경제개혁연구소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계열사 글로비스와 오토에버시스템즈에 547억원을 투자해 불과 10년 만에 3조원 이상으로 불렸다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의 물류를 맡고 있는 글로비스 지분이, 만약 총수 가족이 아닌 모회사 몫이었다면 현대차그룹과 그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이었다.

그룹내 IT 업무를 총괄하는 오토에버시스템즈도 매출 규모가 지난 2001년 485억원에서 2009년엔 5,669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는데, 그룹 내부 거래 매출 비중은 지난해에 무려 85%에 이르렀다.

경제개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SK그룹 최태원 회장도 SK C&C 등에 101억원을 투자해 2조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SK텔레콤 고객 정보를 관리하는 회사인 SK C&C는 최 회장과 여동생 최기원씨가 50% 이상을 보유한 가족회사. SK C&C는 SK그룹 지주회사인 SK의 최대 지분을 갖고 있어 사실상 최 회장이 SK C&C를 통해 그룹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SK C&C는 매출 가운데 63.9%가 내부거래로 이뤄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부를 편법 상속한다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의 또 다른 사례는 CJ그룹 계열사인 씨앤아이레저산업이다. CJ그룹 이재현 회장과 자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씨앤아이레저산업은 전체 매출 가운데 무려 97.09%를 CJ그룹 건물 관리를 통해 얻었다.

삼성그룹 계열사 에버랜드도 매출 가운데 40% 이상을 내부거래를 통해 얻었다.

계열사간 수의계약 조사

공정위 자료를 살펴보면 총수 일가 지분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 일가 지분이 100%인 기업 34개사는 내부 거래가 평균 37.89%에 이르렀으나, 총수 일가 지분이 30% 미만인 회사 831곳은 내부거래 비중이 12.06%에 그쳤다.

또 비상장 기업이고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내부거래가 많다는 특징도 보였다.

그러나 특정 대기업에서 내부거래가 많았다는 이유로 부도덕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수직계열화가 중요한 중화학공업 관련 기업은 내부거래를 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대기업 내부거래의 경우 상장여부, 업종, 수직계열화 여부, 지분율, 회사규모 등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므로 일률적인 접근은 곤란하다"면서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고 규모가 작은 비상장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사실로부터 재산 증식을 위한 물량 몰아주기의 개연성은 존재한다"고 밝혔다.

특히 공정위는 시스템 통합(SI), 부동산, 도매, 광고 등을 담당하는 대기업 계열사일수록 총수 일가 재산 증식을 위해 일감을 몰아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공정위는 대기업이 계열사에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MRO)와 SI 분야에서 일감을 몰아주는지 여부를 점검하고 광고와 건설쪽 계열사가 그룹 안의 일감을 수의계약하는지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대기업 내부거래가 편법 재산 증식로 약용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처럼 공정위가 대기업 내부거래를 탐탁치 않게 바라보자 대기업은 겉으로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불만과 불평을 쏟아냈다. 경쟁력을 높이려고 수직계열화했거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1%의 탐욕에 대한 99%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 만큼 공정위가 찾아낸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고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는 "대기업 내부거래가 총수 일가 재산 상속이나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온 사실이 공정위 자료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며 조속한 개선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