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연합뉴스
"네가 우리 오빠를 때렸어?"

어린 시절 최나연은 오산에서 유명한 개구쟁이였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한국계 선수 통산 100의 주인공 최나연(24ㆍSK텔레콤). 그의 아버지 최병호씨는 "밖에서 오빠가 맞고 들어오면 나연이가 쫓아가 때려주고 왔다"고 회상했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당찼던 최나연은 칼싸움, 총싸움을 즐겼고 동네에선 골목대장으로 통했다.

자율의 대명사 최나연

수많은 한국 여자 골퍼가 강하게 키워졌지만 최나연은 할 일을 스스로 챙기면서 강해졌다. 어린 시절 오빠를 지켜준 당찬 꼬마는 LPGA 무대에서도 좀처럼 기가 죽지 않는다. 아버지 최씨는 21일 "우리 나연이는 훈련과 생활을 모두 스스로 챙기기 때문에 기복이 심하지 않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갈수록 성장하는 진화형 선수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한국 무대를 누비는 수많은 여자 골프 선수와 골프 대디는 경기 결과가 나쁘면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다. 경기 내용을 복기하고 부족한 점을 연습하곤 한다. 그러나 최나연은 골프장을 벗어나면 골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한때 하루에 골프공 1,000개씩 때리며 승부욕을 불태우기도 했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골프 실력을 키우는 영리함까지 갖췄다.

골목을 누비고 다녔던 최나연은 초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허리까지 길렀던 머리카락을 운동에 방해가 된다며 싹둑 잘랐고, 해가 져서 골프장 문을 닫을 때까지 골프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성실하고 승부욕이 남달랐다.

칼싸움과 총싸움이 도움됐을까? 최나연의 스윙은 임팩트에서 마무리까지 자세가 가장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윙이 부드럽고 자세에 군더더기가 없는데다 스피드가 빨라 장타를 펑펑 때린다. 드라이버와 롱아이언 샷이 장기인 최나연은 마음만 먹으면 270야드 드라이버샷 정도는 가볍게 때리기 때문에 약 500야드짜리 파5홀에선 투온을 노린다. 이런 까닭에 최나연은 최근 LPGA 최강자이자 최장타자인 청야니(22ㆍ대만)와 우승을 주고 받았다.

최나연의 성격은 침착하다. 남 앞에선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아 주위에선 말이 없기로 소문났다. 오죽하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혼이 났어도 어머니에게조차 말하지 않았을까. TV에서 골프하는 모습을 보면 소심해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몸에 밴 결과다. 최나연의 부친은 "감정을 절제하는 능력이 정상에 오르는데 도움이 됐다"면서도 "이젠 환호하는 갤러리에게 손도 흔들고 웃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골프에만 집중하다보니 갤러리와 소통이 약해 아쉬운 눈치였다.

최악 결과에도 평상심

왼쪽부터 구옥희,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신지애.
최나연의 좌우명은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자'다. 아버지 최씨로부터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후회하더라도 일단 해보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결과다. 골프 선수들은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 그러나 최나연은 좀처럼 일희일비하지 않고 최악의 결과에도 평상심을 유지하곤 한다.

최나연은 지난 9일 끝난 LPGA 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에서 13언더파를 기록해 청야니(14언더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최나연은 취재진을 만나 "(청야니가)역시 세계 1위답게 잘친다"고 칭찬하면서 "청야니는 최고 선수지만 나를 믿고 최선을 다해 쳤다"고 말했다. 온힘을 다해 노력하되 결과를 수긍한다는 의미다.

LPGA 한국(계) 선수 통산 100승의 주인공이 된 지난 1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최나연은 말레이시아 유망주 켈리 탄을 한국 식당에 초대했다. 김치찌개 같은 한국 음식을 알려주겠다는 생각에서다. 최나연은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상 대원외고 2학년 때부터 프로로 전향했지만 마음 씀씀이만큼은 넉넉했다.

최근 활짝 웃은 최나연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골프선수로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 개인적으로는 못다한 공부에도 집중해 교수가 되고 싶단다. 부친은 "나연이가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많다"면서 "교수님께 전화도 자주 드리고 학교에도 들리고 싶어한다"고 귀띔했다. 골프 실력 외에도 최나연은 남다른 구석이 많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