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비극의 현장에는 양주 시바스리갈이 있었다. 그래서 시바스리갈을 '박통의 술'이라고도 한다. 이 자리에는 술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경기도 고양의 '배다리막걸리'다. 매주 2~5말이 청와대로 배달되었고 박 대통령이 14년 동안 마셨던 막걸리다.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 대통령에게 "한번 마셔보고 싶다"고 부탁했던 바로 그 막걸리다. 박 대통령은 막걸리와 인연이 깊다. 박 대통령 덕분에 동래 금정산성의 '산성막걸리'는 '민속주 1호'가 되었다.

프랑스의 미식가이자 평론가인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은 "당신이 먹는 음식을 보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국적도 바꿀 수 있고 학력도 위조할 수 있지만 미각은 숨길 수 없다. 절대 권력자든 서민이든 그 사람이 평소 먹는 음식과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고 대통령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후 서거 며칠 전 "생선이 먹고 싶다"고 했다. 정상적인 식사는 불가능하고 코로 음식물을 넣고 있던 시기였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DJ도 마지막 순간에는 어린 시절 신안군 하의도에서 만났던 '생선'을 그리워했다. 그 생선은 홍어나 낙지, 민어, 농어였을 터이다.

건국 후 우리는 10명의 대통령을 맞았지만 '음식'으로만 보자면 두 명 정도의 대통령이 '식객'의 명단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박 대통령과 김 대통령. 참 재미있게도 두 사람은 평생을 정적으로, 그리고 참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았던 카리스마 강한 대통령들이었다. 두 사람이 즐겼던 음식을 보면 두 사람의 전혀 다르고 대조적인 삶과 생각이 보인다.

●하동관 곰탕과 욕쟁이 할머니의 콩나물 국밥

박정희
박 대통령의 고향은 경북 구미, 내륙의 '깡촌'이다. 음식이 빈한한 곳이었고 게다가 궁핍한 일제강점기였다. 소년 의 음식은 보리밥에 된장찌개와 쇠비름나물 정도였다. 아버지가 처가의 논을 소작해서 먹고 살 정도로 가난했고, "음식의 맛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인 경북 북부 지방의 유교적 분위기에서 자랐다.

박 대통령의 '후천적 음식 DNA'는 가난, 최소한의 음식, 그리고 '빠른' 군대식 음식문화였다. 좋아했던 음식도 곰탕, 설렁탕, 나물, 그리고 된장찌개 정도. 단골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당시 수하동의 '하동관'이었는데 제주도 시찰을 갔을 때 '하동관' 곰탕을 헬리콥터로 수송했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진다. 1960~70년대 유명한 요정 겸 호남한식집이었던 '장원'에 가서도 '나물 반찬 서너 가지에 쑥을 넣은 된장찌개'로 식사를 마쳤다. '장원'은 원래 푸짐한 호남의 한식을 내놓는 집으로 기본반찬만 해도 20-30가지가 넘는 집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그 음식들이 사치고 낭비였을 것이다.

'장원'은 전임 대통령들이 모두 들렀던 집으로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 전 대통령은 과일을 좋아했다. 접시에 과일만 한 접시 담아 드리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고 대통령은 홍어를 좋아해서 늘 홍어를 더 달라고 하셨다" 등이다. 이 집에서 손꼽는 '대식가'는 DJ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이다. "대식가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표현은 맞지만, "소식해야 오래 산다"는 말은 틀렸다. 두 분 모두 85세를 넘겼다.

카리스마가 강한 지도자는 음식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강하게 남긴다. 박 대통령과 연관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욕쟁이 할머니 이야기다. 1970년 무렵, 지방 시찰 차 전주를 간 박 대통령이 아침에 콩나물국밥을 찾자 비서들이 '배달 차' '삼백집'에 갔다. 그런데 주인할머니로부터 "지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와서 먹어라 해라"라는 말만 들었다. 결국 박 대통령이 '삼백집'에 갔고 할머니가 콩나물국밥을 먹는 박 대통령을 보고 "넌 새까맣게 생긴 게 꼭 같다. 옛다, 계란 하나 더 먹어라"고 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하동관 '곰탕'
권력자에게 '진상된 음식들' 혹은 대통령이 한두 번 들렀던 음식점을 대통령의 음식, 대통령의 맛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음식에 대한 기호는 이미 어린 시절 정해지고 속일 수 없이 나타난다.

박 대통령의 경우 대구사범시절 만났을 '대구탕반大邱湯飯' 정도가 후천적 음식 DNA로 남았을 것이다. 따로국밥, 육개장으로 전승된 '대구탕반'은 반찬이 간략하고 빨리 먹을 수 있다. '빠르고 간편하다'는 점이 그의 군대식 식사법과도 맞았을 것이다. 전주의 '삼백집'이나 서울의 '하동관' 대구의 '국일따로국밥' 정도가 그의 '단골집'이라고 할 만하다.

●함께 중화요리집 향원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는 '군인 출신답게' 음식을 가리지는 않았다. 대구 동향 출신이고 서울에서도 같은 연희동에서 살았던 두 전직 대통령의 맛집은 중국 출신 유명 조리사 이향방씨가 운영했던 연희동의 중화요리집 '향원'이었다. 1980∼90년대 유명했던 '향원'에서 전 전두환 대통령의 며느리들이 요리 강습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홍어·연포탕… 서 고향의 맛 만끽

국일 따로국밥
DJ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식객'이다. 대식가이면서 미식가였고 "많이 먹고 열심히 활동하는" 편이었으며 음식에 관한한 '출신성분'도 퍽 좋다.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하의도'가 DJ의 고향이다. 신안군 사람들끼리 만나면 나누는 농담이 바로 "임자, 도초, 하의, 비금"의 차례를 바꿔서 부르는 것인데 이들 모두 신안군의 섬이고 홍어, 낙지, 민어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1993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에 머물렀을 때 그를 감동시킨 '고국에서 온 소포'도 바로 홍어였다. 평소 많이 삭히지 않은 홍어를 좋아했던 그가 영국까지 나르는 동안 필히 많이 삭았을 홍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DJ는 인동초처럼 참고 견디며, 홍어처럼 곰삭은 냄새가 나는 정치인이었다.

하필이면 DJ의 재임 시절 흑산도 홍어가 흉작이라서 "목포에서 잡히는 홍어는 모두 청와대로 간다"는 뜬금없는 소문이 돌고 "DJ가 대통령이 되면서 홍어가 서울로 상륙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1988년 '평화민주당' 창당 때 이미 '홍어파티'가 있었고 출입기자실에도 DJ의 '홍어선물'이 배달되었다. 2005년 고 대통령 시절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미니 민주당'이 그야말로 '만만한 홍어 뭐'가 되었을 때도 민주당의 마포당사에 나타난 것은 홍어였다. 이때 "당헌에는 없지만 홍어는 민주당의 관습 당헌"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홍어는 호남이자 DJ의 상징이었다.

'YS의 거제도 멸치' 'DJ의 흑산도 홍어' '열린우리당의 부산 도다리' 등이 차례로 등장하고 드디어 정권의 '포항 과메기'까지 나타나면서 가히 한국 정치판은 '생선들의 전쟁터'가 된 셈이다.

DJ는 음식점 주인과의 따뜻한 교류로도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서울 내자동 ''의 이금심 사장은 1987년부터 고 김 대통령의 '호남음식'을 챙겼던 사람이다. 이씨가 기억하는 김 대통령은 "홍어, 농어 등 생선선물이 들어오면 ''에 가져와서 친구나 정치인 등과 나눠 먹었던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다. 이 씨 역시 고향이 신안으로 김 대통령이 만났던 밥상은 "홍어, 낙지꾸리, 매생이국, 연포탕, 먹갈치 등이 포함된 완벽한 고향의 밥상"이었다.

전주 콩나물국밥집 '삼백집'
김 대통령은 당뇨가 심했다. 대식가였고 음식을 좋아했던 김 대통령에게 의료진들이 권한 '당뇨에 괜찮은 음식'은 소의 양이었고 을지로 '양미옥'은 김 대통령의 단골집이 되었다. 2005년 결혼 43주년 기념연을 이집에서 연 김 대통령은 그 후 한 달에 서너 번씩 이집에 들렀다. 외국에 다녀오면 주인 내외에게 화장품 선물을 주는 등 살갑게 대했던 김 대통령은 '양미옥' 코엑스점이 문을 열었을 때는 축하분을 보내기도 했다. '양미옥'은 DJ의 마지막 외식집이었다.

●안동국시·… 오직칼국수

YS는 칼국수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YS의 칼국수'로 유명한 '안동국시'는 처음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대각선 방향에 문을 열었다가 1980년대 중반 양재동 ''으로 옮겼다. ''은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첫 장관회의에 칼국수를 내놓았던 집이다. 당시 식재료비가 20만 원 안쪽이었다니 퍽 소박한 음식이었던 셈이다. ''은 청와대에 '콩가루가 들어가는 안동 식 칼국수 비법'을 전하기도 했다. 성북동의 '국시집'도 YS의 단골집이었다. YS는 집권 초기 '칼'같이 시작했으나 역시 '국수'가 뒷심이 약하듯이 마지막에는 IMF사태를 맞는 등 '뒷심이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도 들었다.

●대강막걸리 6잔 '원샷'… 토속촌서 삼계탕

YS와 더불어 같은 서부 경남 출신인 고 대통령도 음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다. 질박한 성격 그대로 가리지 않고 어떤 음식이나 잘 먹는 편이었으니 '나만의 메뉴'는 없었던 셈이다. 다만 서울 효자동의 삼계탕집 '토속촌'이 노 대통령의 맛집으로 알려졌고 1997년 "국회의원 낙선한 낙동강 오리알들끼리 상호보증으로 돈을 빌려 운영했던" 고기 집 '하로동선夏爐冬扇'을 보면 노 대통령은 '육식체질'인가 싶은 생각은 든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바로 DJ의 ''에 들렀던 노 대통령의 '메뉴'다. 국회의원 시절 안희정, 서갑원씨 등과 들렀던 노 대통령 일행이 선택한 메뉴는 홍어가 아니라 낙지꾸리였다. '배워야 먹을 수 있는 홍어'는 생선이 귀한 내륙 김해 진영 출신의 노 대통령에게는 무리였을 것이다. 다만 노 대통령과 '소백산대강막걸리'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2005년 5월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한드미 마을을 방문했을 때 노 대통령은 '대강막걸리' 중 '오곡막걸리'를 연거푸 6잔이나 마셨다. 이후 퇴임 때까지 '대강막걸리'를 찾았던 노 대통령을 위하여 '대강막걸리' 측에선 퇴임식 후 봉하마을로 막걸리 2천 병을 보냈다. 노 대통령은 행사 때 이 막걸리를 사용하고 나중에 인삼을 선물로 보냈다. 이 인삼으로 '대강막걸리' 는 인삼주를 담아 보관했다.

노태우와 전두환
청와대와 가까운 서울 구기동의 '옛날민속집'은 YS, 고 대통령, 대통령의 공통적인 단골집이라 할 만하다. 두부가 별미인 이집에서 꼽는 대통령들의 메뉴는 "YS는 두부, 노 대통령은 간장게장, 대통령은 두부와 간장게장"이다. 일찍이 추사도 노인에게 가장 좋은 음식은 두부와 생강, 나물이라고 했으니. 평소 채식식단을 좋아하고 비교적 연장자인 YS가 두부를 좋아했던 것은 이해가 된다. 다만 육식을 좋아했던 노 대통령이 이집의 보쌈수육 대신 간장게장을 택한 것은 묘하긴 하지만.

●인사동서 칼국수… '사인 인심'도 후하네

대통령은 음식점에 가장 많은 사인을 남긴 경우다. 웬만한 맛집들을 다녀보면 서울시장 시절 이 대통령이 다녀간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음식의 종류도 냉면, 고기, 회부터 국밥, 설렁탕, 비빔밥까지 싸고 비싼 모든 음식이 총망라된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대통령에게 감히 휘호를 받기도 힘들었고 또 음식점 방문 기념으로 글을 남기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경우 정치인 직전의 직업이 대기업 CEO였다. 음식점, 음식점 주인들에게 퍽 친숙하게 대하고 웬만한 곳에서는 사인을 남기는 편이다. 하지만 단골집은 역시 칼국수집으로 인사동 백악미술관 지하의 '안동국시소람'이다. 굳이 한 곳을 더 꼽자면 고향 포항의 '새포항물회' 정도가 이 대통령의 맛집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신안촌
장원 '홍어'
김영삼
의 칼국수
소호정
노무현
토속촌 삼계탕
대강 막걸리
이명박
안동국시소란의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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