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가 한나라당 완패로 끝났다. 20대와 30대는 물론이고 40대까지 여당에 등을 돌린 결과다. 각종 원인 분석이 쏟아졌지만 개그맨 최효종의 세태 풍자 개그에 답이 있다. 세태 풍자 개그맨으로 주목받고 있는 최효종은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KBS 2TV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에서 대학입시ㆍ등록금ㆍ취업난ㆍ명예퇴직 등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사마귀 유치원'에서 진학상담교사 일수꾼으로 출연한 최효종은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다는 어린이에게 사회 현실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와 40대 학부모들은 "사마귀 유치원을 보면서 너무 웃었지만 한편으론 슬펐다"면서 "박원순 시장 표 가운데 사마귀 유치원 시청자가 꽤 많을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20~40대의 마음을 관통한 최효종의 세태 풍자 개그를 살펴본다.

입시만능 학벌사회

"저는 커서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요."(학생)

"어린이 여러분, 대기업에 들어가는 거 어렵지 않아요!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고등학교 졸업 후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학 세 개 중 하나만 들어가면 돼요. 세 개나 되니까 폭이 '엄청' 넓죠? 너무 쉬워요."(일수꾼)

'일수꾼' 최효종의 말에 방청객과 시청자는 깔깔대며 웃는다. 대학을 서열화하고 명문대 입학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입시 세태를 통쾌하게 꼬집었기 때문. 혹자는 최효종을 진보 개그맨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최효종은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딱 중간에 있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세태를 개그 소재로 삼았다는 뜻이다.

대학 등록금 반값?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4년간 학비가 적게는 5천만원, 많게는 2억원이 드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부모님께 받아서 쓰면 돼요. 부모님께 받아쓰기 미안해서 안 되겠다고요? 그럼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 돼요. 시급 4,320원을 받고 10시간씩 1년을 숨만 쉬고 일만 했을 때, 여러분들은 1년간 꼬박 그 돈을 모으면 1년 학비가 생겨요. 1년 공부하고 1년 알바하면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게 돼요."(일수꾼)

현재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은 4,320원. 최효종의 말대로 매일 10시간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1년에 총 1,576만 8,000원을 벌 수 있다. 이렇게 벌어도 학기당 평균 등록금이 800만원 이상인 연세대, 이화여대 등 사립대학 학비에 모자란 게 현실이다. 반값 등록금 시위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최효종의 세태 풍자는 우리 사회의 아픈 구석을 웃음으로 꼬집었다.

어학연수와 성형수술

"이렇게 대학을 졸업하면 토익 900점만 넘으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데…. 어, 영어에 자신이 없다고요. 그러면 6개월간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떠나면 돼요. 어학연수를 갈 돈이 없다고요? 아까 그 편의점에 다시 들어가요. 숨만 쉬고 바코드만 (1년간)찍어대면 6개월간의 어학연수 비용이 생겨요. 어학연수를 갔다와서 면접 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면 돼요. 어, 성형수술비가 없다고요. 아까 그 편의점에 또 들어가요."(일수꾼)

최효종은 이른바 스펙 쌓기와 외모 지상주의도 꼬집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6월에 실시한 설문에서 직장인과 대학생 72.4%가 취업을 위해 해외 어학연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입사 시험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겠다며 성형수술을 받는 코미디 같은 현실을 꼬집을 땐 웃음과 함께 탄식도 흘러나왔다.

취업과 눈치, 명예퇴직

"대기업에 가서 10년 동안 꼬박 일만 하고 숨만 쉬어서 연봉, 야근수당, 보너스까지 다 모으면 그동안 공부했던 본전을 뽑을 수 있어요. 여러분, 이렇게 30년 동안 근면성실하게 사건ㆍ사고 없이 대기업에서 일하면…. 놀라지 마세요, 30년 만에 50이 넘어서 대기업 부장이 돼요. 그때 회장님 아들 서른 살이 상무로 오게 돼요. 여러분들은 그분께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드리며 그분의 비위를 맞춘다면 명예퇴직의 칼날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러면 정년퇴임까지 문제없어요."(일수꾼)

최효종의 말대로 서른살짜리 대기업 상무가 있을까?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맏아들 정의선(41) 부회장은 서른살이었던 2000년 상무로 승진했고,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큰아들 이재용(43) 삼성전자 사장은 33세였던 2001년 상무보가 됐다. 20대와 30대 시청자가 깔깔 웃을 때 쓴웃음을 짓는 40대도 있었다. 조기 퇴직이나 명예퇴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때문인지 '일수꾼'이 들려주는 개그가 비수가 돼 가슴을 찌를 수밖에 없다.

최효종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어때요. 이렇게 대기업 직원 되기 너무 쉽죠. 이렇게 대기업 직원이 돼서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글로벌 인재가 돼봐요." 최효종의 세태 풍자 개그는 각종 사회 문제와 모순을 빗대어 비웃음으로써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최효종의 개그가 끝나자 유재석을 닮은 개그맨 정범균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모두 잘 들었죠.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다음 생에는 회장님 아들로 태어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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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