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팀을 구하러 다니랴, 대회에 참가하랴 바쁘다.

토마토저축은행 소속이었던 한 여자 골프선수는 근황을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최근 성적은 꽤 좋았다. 그러나 골프단이 해체되면서 수입이 급격히 줄었다. 대회 성적보다 자신을 받아줄 소속팀이나 후원사를 찾는데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토마토저축은행이 9월 18일 영업정지된데 이어 토마토저축은행 골프단마저 9월 27일 전격 해체됐다. 삼화저축은행도 1월 14일 영업정지 명령을 받으면서 골프단에 소속된 선수들은 계약금조차 받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골프장도 회원권 시세가 급락하고 내장객 수도 줄어 울상이다.

골프산업에 먹구름이 끼었지만 골프 마케팅 열풍을 활용하는 금융회사는 늘고 있다. 저축은행 활황에 한몫했던 골프 마케팅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서민은행이 왜 귀족스포츠?

저축은행은 대표적인 서민 금융 업체. 골프는 대표적인 귀족 스포츠로 손꼽힌다. 저축은행과 골프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저축은행은 저마다 골프 마케팅에 힘썼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골프를 즐기는 고액 자산가에게 골프 마케팅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삼화저축은행 등은 고액 자산가를 유치하려고 골프단 선수들과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골프를 즐기는 일반인이라면 선수와 함께 라운딩할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다. 삼화와 토마토저축은행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골프 마케팅으로 고액 자산가를 고객으로 꾸준히 확보했다.

토마토저축은행은 2006년부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토마토저축은행오픈 대회(올해는 티웨이항공오픈)를 주최해왔다. 골프단까지 만들어 미국 무대에서 활동하는 이승호와 윤슬아 등 골프선수 12명을 후원했다. '이승호 우승기념 정기예금 특판' 상품을 만들어 성적과 금리를 연계한 골프 마케팅도 펼쳐왔다. 토마토저축은행과 함께 영업이 정지된 에이스와 제일저축은행도 해마다 이벤트성 골프대회를 열어 마케팅에 이용했다.

그러나 금융계는 서민 금융 업체가 귀족 스포츠인 골프 마케팅에 나섰다는 사실이 이율배반적이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검찰 수사 결과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회장은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골프 접대할 때 소속사 선수를 활용했다. 골프가 뒷거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저축은행의 골프마케팅에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저축은행의 빗나간 골프사랑은 OB로 이어졌다. 삼화에 이어 토마토저축은행까지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저축은행 골프단은 현대스위스저축은행만 남았다.

은행ㆍ증권사에 분 골프 열풍

골프 마케팅은 투자 비용보다 홍보 효과가 크다. 이런 까닭에 저축은행 사태와 별개로 은행과 증권사는 골프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엔 케이블 TV 골프 채널들이 온종일 각종 대회를 방송하기 때문에 홍보 효과가 부쩍 커졌다. 거액 자산가 가운데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꽤 많아서 은행과 증권사는 골프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금융계에서 골프 마케팅의 원조로 불리는 신한금융그룹을 필두로 하나은행, 기업은행, 미래에셋, BC카드 등은 골프단을 운영하거나 골프선수를 직접 후원하고 있다. KB금융그룹과 한화금융그룹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4월에 배상문, 강경남을 중심으로 골프단을 창단했고, 대신증권은 스크린 골프 선두주자 골프존과 손잡고 '대신증권 금융주치의배 골프존 라이브 토너먼트'를 주최하고 있다. '투자의 귀재' 증권사는 골프를 즐기는 VIP 고객을 직접 겨냥했다. 선수와 일반인이 함께 골프를 치는 프로암 대회를 열거나 소속팀 선수들과 라운딩하는 기회를 제공해 골프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골프는 여존남비?

한국 골프계를 돌아보면 남존여비(男尊女卑)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성적은 물론 인기까지 여자 골프가 남자 골프를 능가해 여존남비(女尊男卑)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최경주와 양용은이 미국프로골프(PGA)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박세리와 김미현, 신지애, 최나연 등이 합작한 한국인 통산 95승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여자가 남자보다 성적이 나은 종목은 골프 외에 배구와 농구가 있다. 여자 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구기종목 최초로 메달을 수확했고, 여자 농구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확했다. 그러나 박진감 넘치는 남자 배구와 남자 농구에 밀려 위상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왜 골프만 유독 여자 경기가 인기를 끌까?

일반인에게 배구와 농구는 관객으로서 '보는 운동'이지만 골프는 직접 즐길 수 있는 '뛰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골퍼 눈에 비친 남자 골프 선수의 스윙은 따라 하기 힘들어 비현실적이지만 여자 골프 선수의 스윙은 교과서로 삼기에 적합하다. 따라서 골프 실력을 향상하려는 일반인은 여자 선수에게 관심을 두기 마련이다.

골프 마케팅에서도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보다 적합하다. 마케팅 특성상 골프 실력 못지않게 외모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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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