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일 '지식창조형 이공계 인재 양성 및 활용 방안 포럼'이 열린 국회 도서관 대강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이 자체 개혁에 나선다. 당명을 포함해 당의 모든 것을 쇄신하는 대수술에 들어갈 태세다. 10ㆍ26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를 내준데 따른 위기감의 발로다.

마치 예전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야 한다"는 말로 삼성의 개혁을 주도한 것과 같은 일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은 당명이 몇 차례 바뀌었지만 한나라당은 같은 이름으로 계속 일을 해왔다"면서 "재보궐 선거 이후 당명을 바꾸자는 요구가 있던데 쇄신을 위해 바꾸자고 하면 바꾸겠다"고 말했다.

나경원 후보 선대위에서 대변인직을 맡았던 안형환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한나라당의 자연수명이 다했다. 선거 결과를 돌이켜보니 1987년 형성된 정당체제가 붕괴된 것 같았다"면서 "근본적으로 나무를 다시 심던지 뿌리에서 다시 출발하던지 해야지 곁가지 치는 것만으론 안 된다"고 고강도 개혁을 주문했다.

이렇게 기존의 한나라당으로는 내년 총선이고 대선이고 모두 어려울 것이란 공감대가 당내 퍼져 있다. 비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 문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한 대치를 계속하고 있어서 당 쇄신 논의가 잠시 가려져 있지만 물밑에서는 당 쇄신을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가 분출하고 있다.

한나라당," 당명 포함해 모든 것 다 바꾼다"

한나라당 내에서 논의되는 개혁프로그램의 제1장은 당명 변경이다. 아예 새로운 간판으로 국민에게 다가서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1997년 말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창당했다. 신한국당에서 경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 탈당하자 조순 총재의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한나라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후 15대, 16대, 17대 대선을 치르면서 14년간 당명을 유지해 현존하는 원내 정당 중에는 가장 오래된 정당이 됐다.

그러나 세태가 변한 건지, 안 의원 말대로 정당이 제 구실을 못해서 그런 건지 역사가 있는 정당이란 것이 유권자들에게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경험으로 축적된 노하우 자체가 때 묻은 기성 정치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새 옷으로 갈아입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어떻게 바꿀까. 단순히 이름만 고치는 화장법 수준으로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가 없다. 당명을 포함한 당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건 당연하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지금의 보수ㆍ부자ㆍ영남 위주의 이미지를 최대한 탈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실제 홍 대표가 최근 대학생과 가진 미팅에서 한 학생은 "한나라당을 생각하면 고급 오픈카를 타고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꼬집기도 했다. 홍 대표는 이와 관련 당내에 법조인이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매 공천마다 한나라당은 30% 정도의 물갈이를 했다. 따라서 내년 총선에서는 '탈 한나라당'을 위해서라도 절반에 가까운 현역 의원이나 원외위원장들의 공천 탈락을 예상할 수 있다.

홍 대표가 씨름선수 출신인 이만기 강호동씨 등의 영입 필요성을 주장한 것도 같은 의미다. 유정현 의원도 "기득권들이 권력을 놓는 것이 가장 큰 개혁"이라면서 "공천시기를 앞당기는 등 공천개혁을 통해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에서 바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만이 한나라당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조기 등판론 솔솔

그럼 누가 나서서 새 인물을 영입하는 등의 물갈이를 주도해야 할까.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 차기 주자 후보군의 가장 맨 앞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서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 총선 공천을 주도하면서 19대 총선에서 승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보선 패배 직후 정태근·정두언 의원 등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이 '박근혜 역할론'을 제기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친박계 의원들까지 이 같은 주장에 가세하는 분위기다. 친박 중진 허태열 의원은 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박 전 대표는 거의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다음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되지 않겠느냐"며 "박 전 대표가 당연히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 의원은 "정기 국회는 홍 대표 체제로 치르고, 총선 정국으로 넘어가면 새로운 인물의 수혈, 새로운 정책에 대해 다음 대비를 하는 지도자들이 나서서 얘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공천은 홍 대표가 아니라 박 전 대표가 직접 챙겨야 한다는 얘기다. 친박 성향의 권영세 의원도 "새 체제는 박 전 대표를 포함해 전면적으로 나서는 게 필요하다"며 "박 전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해 당을 이끄는 모습을 통해 확고하게 검증된 유일한 대선주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 박 전 대표가 최고 사령관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다. 선거 다음날만 해도 대안 부재에 따라 홍 대표 체제하에서 당을 쇄신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FTA 정국을 맞으면서도 국면이 전환되지 않자 친박계가 홍 대표 체제 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전면에 다시 등장하려 하는 것이다.

여기엔 최근의 '막말 파문' 등이 덧씌워 지면서 구 정치 이미지가 적지 않은 홍 대표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과연 내년 총선을 돌파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도 들어 있다.

2004년 4월 한나라당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 후폭풍을 맞으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렸었다. 그 때 박 전 대표는 천막당사를 만들고 여기서 총선을 지휘하며 전국을 누볐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에 비해 절대 열세라는 전망을 깨고 대등한 수준의 의석 수를 만들어 냈다. 내년 총선을 걱정하는 지역구 의원들과 원외위원장들의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이다. 당연히 친박과 친이계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박 전 대표가 직접 전면에 나서 총선 정국을 돌파한 뒤 그 추동력으로 대선까지 내달리란 얘기다.

내년 초 '박근혜 신당'의 모습으로 재출발

박 전 대표가 새로운 당 체제의 중심에 설 경우 어떤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설까. 이미 기성 정치로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재보선으로 입증됐다. 때문에 군부 중심의 민정당, 3당 합당의 민자당,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주도한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을 배출한 한나라당의 잔재가 남아있는 모습으로는 곤란하다. 완전히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가히 혁명적 변신만이 살 길이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도 당연히 요구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중심이 된 새로운 정당으로 출발하려면 이 대통령 본인이 좋든 싫든 비켜서야 한다.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대통령의 탈당 문제가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홍 대표가 물러서고 새 체제가 새 당을 만드는 시점은 올 연말부터 분위기가 달아 오를 것 같다. 연말 국회의 최대 화두는 내년 예산안 심의다. 여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도 임기 마지막 해의 사업 마무리를 위해 여권의 예산안 협조가 필요하다. 야당으로서는 결사 저지에 나설 것이 분명해 여야 합의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여당의 단독 처리가 그려지는 대목이다.

마지막까지 국회에서 볼썽 사나운 장면이 연출된다면 누군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할 수 있다. 홍 대표 체제의 마지막 장면과 연결지어진다.

종합해보면 한나라당의 뉴 브랜드 전략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연말 예산안의 여당 단독 처리에 따른 책임을 지고 홍 대표가 2선으로 후퇴한 뒤 임시 지도부 체제를 거쳐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새 당명의 여당이 출현한다. 사실상의 '박근혜 신당'은 이 대통령의 탈당을 포함해 기존 의원과 원외위원장을 절반가량 물갈이 한 뒤 새로운 중도보수의 이념과 중산층 및 서민에게 다가서는 노선으로 내년 총선에 나선다는 시나리오가 된다.

한가지 가정해보자.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선 19대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할 경우 이런 기세는 대선까지 별 변화없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총선에서 부진을 면치 못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장 보수진영에서 박 전 대표 불가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야권의 '안철수-손학규-문재인-유시민-김두관' 등으로 이어지는 대선주자의 대항마로 박 전 대표 외의 다른 인물을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몽준? 김문수? 정운찬? 김태호? 박세일? 이석연? 오세훈? 아니면 제3의 인물?

차기 여권의 지형도가 복잡해진다. 보수의 위기는 이렇게 다가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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