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동 의원
장군의 손녀가 투사의 딸로 변신했다. 투쟁 상대는 평소 친분이 있던 학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도올 김용옥(63) 원광대 석좌교수가 90년에 월간지 신동아에 쓴 기고문이 화제다. 당시 김 교수는 김두한 회고록과 각종 자료를 비교ㆍ분석해 김두한(1918~1972년)이 청산리 대첩의 주인공 백야 김좌진(1889~1930년)의 아들이란 사실에 의문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김 교수의 '도올세설'이란 책에도 그대로 수록됐다.

도올세설이 발표된 지 21년이 지났다. 그동안 입을 다물었던 김두한의 맏딸 김을동(66) 미래희망연대 의원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김 의원은 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상 발언을 통해 김용욕 교수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 의원은 4일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선 법적 대응까지 암시했다.

일제 강점기 서울 종로를 주름잡았던 김두한. 그는 광복 후 반공 운동에 앞장섰고 3대와 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삼성그룹 계열사 사카린 밀수 사건이 있었던 1966년에 국회에서 김정렴 재무장관에게 오물을 투척했다. 당시 국회 모독죄로 투옥됐지만 영웅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의 극적인 삶은 소설과 영화를 거쳐 드라마 소재로 사용됐고, 김두한은 항일 영웅이자 장군의 아들로 불렸다.

장군의 아들은 가짜?

김용옥 교수
가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한 이유는 뭘까? 공교롭게도 김두한의 회고록이 실린 책 명인옥중기(名人獄中記ㆍ1968년)가 실마리를 제공했다.

"나는 사실상 고아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일곱 살 때까지, 그러니까 교동 보통학교 2학년에 다니던 때까지는 그래도 외조모님과 어머님의 알뜰한 사랑 속에서 클 수 있었다. 그러나, 저 세계 전사상 희귀한 청산리 대첩이 있자 일경은 즉각 외조모님과 모친을 투옥했다. 그래서 나는 말 그대로 천애 고아가 됐던 것이다. 그리고 열살 되던 해에 불망의 독립군 대장인 부친의 별세를 전해 듣고 울었다.(김두한)"

청산리 전투가 벌어진 1920년에 김두한의 나이는 만 2세였다. 우리 나이로는 세 살. 김좌진 장군이 세상을 떠난 1930년에는 만 12세였다. 김두한이 기억한 어린 시절은 역사와 맞질 않는다. 회고록에는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을 할아버지라고 소개하고, 김일성이 해방 직후 남반부 인민사령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대목도 꽤 많다.

이런 까닭에 는 도올세설에 '내가 김두한에 관해 출간된 모든 정보를 대강 다 훑어보고 난 후에 내린 하드 팩트(hard fact)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중략) 그가 다리 밑의 거지에서 종로 일대를 제패하는 깡패 두목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가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픽션과는 전혀 무관한 사태이며, 김두한 자신에게도 의식된 족보의 사실일 수가 없으며, 오로지 쌈꾼의 실력, 그야말로 적나라한 실력 하나로 주먹계의 패자가 된 인물이었다. 그 이외의 어떠한 논리도 가식이다'고 주장했다.

나는 장군의 손녀!

은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 아니라는 주장은 독도가 일본땅이란 억지와 비슷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 의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도올의 주장이 말이 안 되는 게 우리 증조 할머니께서 우리 아버지(김두한)를 찾은 나이가 13살이다. 그때부터 할머니 슬하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좌진 장군의 어머니 한상희씨와 본처 오숙근씨는 김두한을 가족으로 인정했다. 안동 김씨 족보에도 김두한은 김두한의 아들로 기록돼 있다.

김 의원은 중외일보 1930년 2월 18일자를 공개했다. 이 신문엔 김좌진 장군 슬하에 두한이라는 아들이 있고, 1925년 만주에서 부자가 만났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가 실렸다. 김 의원은 같은 해 조선일보와 매일신보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게재됐고, 중외일보 1930년 5월 20일자에는 '김좌진 유고로 안동 김씨 회합, 두한군을 위하여'란 기사에 안동 김씨 문중이 김두한의 교육 문제를 논의했다는 내용이 실렸다고 밝혔다.

도올세설에 발끈한 김 의원은 "우리 할머니가 손자도 몰라보는 청맹과니냐"면서 "아버지의 정치적 행동이 도올의 사상과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비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거도 없이 가족사를 부정하는 것이 학자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냐"고 비난했다. 또 "가족과 관련한 유언비어가 계속 퍼지고 있어 한때 도올 선생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할까 생각했지만 참았다"면서 "이 무책임하고 편향된 발언이 확대ㆍ재생산되며 개인과 국가, 역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식인과 학자들 사이에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냐에 대한 논란은 오래 전부터 많았다. 김두한은 김좌진을 잡기 위해 일본이 꾸며낸 가짜 아들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안동 김씨 가문은 김두한을 집안 식구로 인정하고 있다. 어떤 이는 김두한의 생모 박계숙과 김좌진 장군의 관계는 확실하나 김두한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고도 말한다. 또 명인옥중기에 따르면 김두한의 외할머니가 상궁이었는데, 어떻게 궁 밖에서 딸을 낳았는지 의문도 남는다.

현대사를 전공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2002년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김두한이 장군의 아들이 아니라는 확증은 없다"면서도 "김두한을 항일 영웅으로 생각한다면 그 역시 웃음거리다"고 말했다. 의혹은 있지만 증거가 없다는 뜻. 또 김두한이 민족을 위해 싸운 항일 협객이란 인상도 영화 '장군의 아들'과 드라마 '야인시대'를 통해 지나치게 미화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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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