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지만…' 김성근(왼쪽)감독과 당시 이만수 수석코치가 지난해 9월 22일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하고 나서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독설을 내뱉을 정도로 사이가 벌어졌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가 내세운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는 처음부터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있었다. 김성근(69) 감독과 이만수(53) 수석코치라는 불안한 동거는 5년 만에 헤어지고 나서 폭발했다. 이들의 불화는 스포테인먼트가 지닌 모순을 잘 보여준다.

"전화를 수없이 해봤지만 안 받아주시더라." 이만수 감독이 2일 CBS 라디오에서 한 말은 김성근 전 감독을 자극했다. 김 전 감독은 잡지 GQ 12월호 인터뷰에서 '예의에 벗어난 놈'이라며 발끈했다. 전화 문제로 폭발할 정도로 이들의 갈등은 뿌리가 깊었다.

달력을 2006년 가을로 넘겨보자. 김성근과 이만수는 SK 감독 후보였고 SK 고위층은 누굴 선택할지 고민이었다. 당시 김성근은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SK를 우승으로 이끌 지도자는 아니라는 말이 많았다. 이만수는 스타성이 눈에 띄지만 지도자로서 검증이 안 돼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6위로 시즌을 마쳤던 SK는 눈앞의 성적이 급했다. 고민 끝에 SK는 김성근 감독과 이만수 수석코치라는 조합을 선택했다. 수석코치를 결정한 사람이 감독이 아닌 SK 고위층이었다. 감독은 원치 않는 후배를 수석코치로 부려야 했고, 수석코치는 자신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선배 밑에서 일해야만 했다. 시작부터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스포테인먼트를 주창했던 SK 신영철 사장은 "성적과 흥행을 동시에 노린 포석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구계에서는 'SK가 성적 때문에 김성근을 선택했지만 만약을 대비해 이만수까지 데려갔다'는 말이 떠돌았다. 김성근을 선택해 감독직을 맡겼지만 이만수에게 차기 감독을 약속했다는 의미다.

위태로워 보였던 이들의 동거는 세인의 관심에서 곧 벗어났다. 김성근 감독은 2007년 SK에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선물했고, 4년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을 3회나 차지하면서 영웅이 됐다. 성적이 좋아지니 인기도 높아져만 갔다. 덩달아 SK가 경영철학으로 내세운 스포테인먼트는 스포츠 마케팅에서 금과옥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과 이만수 수석코치 사이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좋은 성적에 가려 눈에 띄질 않았을 뿐 이들의 불화는 야구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SK가 1위를 독식하던 2007년과 2008년에도 이만수 차기 감독설이 돌았고, 김 감독 눈밖에 난 이 수석코치는 지난해와 올해 2군 감독으로 좌천됐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이 수석코치는 "할 말은 있지만"이란 말만 남긴 채 짐을 싸 2군으로 갔다.

김성근 감독이 가졌던 불만은 올해 재계약 협상에서 폭발했다. 신영철 사장이 '양해를 구해야 할 후배가 있다'고 말하자 심기가 불편해진 김 감독은 취재진에게 "예의가 아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신 사장은 나중에 '농담으로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지만 김 감독은 이만수 수석코치에게 허락을 받아야 재계약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겉으론 화목했던 김성근과 이만수의 불편한 동거는 올해 8월 18일 끝났다. 김 감독이 "시즌이 끝나면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하자 SK는 이튿날 김 감독을 경질하고 2군 감독이었던 이만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빼어난 성적과 스포테인먼트란 미명에 가렸던 구조적 모순은 5년 만에 폭발했고, 야구인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처럼 차기 감독은 이만수의 몫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지휘봉을 잡은 사령탑에 오른 이만수 감독은 '김성근 감독과 전화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전화를 드렸는데 받질 않으신다"고 말해왔다. 이 사실을 안 김 전 감독은 이 감독에게 '교인이 왜 거짓말을 하느냐? 교회에 가서 하느님께 사죄하라'는 내용이 담긴 전자우편을 보냈다. 그는 "내가 전화가 오지 않았다고 말하니 그때야 전화가 왔는데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해고된 선배 자리를 물려받은 이 감독 입장에선 전화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그러나 김 전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모시던 선배가 해고됐는데 전화 한 통 없고, 그 자리를 물려받았는데 연락하지 않은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전화해도 받질 않았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보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이 감독의 발언도 김 전 감독의 귀에 거슬렸다. SK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가을 잔치를 치르면서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거지 감독이 할 역할이 없다" "나는 투수를 절대 무리하게 등판시키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말만 놓고 보면 틀린 게 없다. 그러나 '난 김성근처럼 야구를 하진 않겠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물론 김 전 감독과 이 감독의 갈등이 오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SK의 애매한 태도가 이들의 갈등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SK가 2006년 차기 감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이만수 감독에게 수석코치를 제의했다는 소문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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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