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인터뷰

“박근혜 전 대표나 안철수 교수에게 대선까지의 1년여가 매우 중요합니다. 박 전 대표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의 청사진을 보여줘야 할 것이고, 안 교수는 국민이 검증할 수 있는 정치적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대통령의 자격’(메디치미디어 발간) 출간을 앞두고 있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24일 만났다. 윤 전 장관은 기자에게 내년 대선에 나설 후보들이 갖춰야 할 대통령의 자질을 언급하면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각각 ‘청사진’과 ‘정치적 경험’을 주문했다.

윤 전 장관은 향후 정치 지형과 관련,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제3 정치세력에 대한 국민 열망이 폭발적인 수준”이라며 ‘제3 신당’의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그는 “내년 대선은 국가 명운을 결정짓는 ‘운명적인 해’가 될 것”이라며 “올바른 지도자의 출현과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자격’이란 책을 펴낸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대통령의 자격’에서 국정운영기술(통치 리더십)을 뜻하는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라는 관점에서 전ㆍ현직 대통령들을 평가한 뒤 현재의 우리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질로 △국가와 대통령 직무에 대한 투철한 인식 △민주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 △정책 능력 △북한 관리 능력 등을 들었다.

윤 전 장관은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안철수 바람(安風)’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한 사람으로, ‘안풍’의 실체와 향배를 가늠할 수 있고 앞으로 전개될 정치권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하다. 책을 중심으로 우리 정치 현안과 이슈들에 대해 그의 의견을 들어봤다.

-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참모 부서에서 오래 일을 하면서 국가라는 게 뭔지,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여러 대통령을 가까이서, 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대통령이 드물다는 걸 알고 왜 그런지 한번 총체적으로 정리를 해보고 싶었어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노 대통령에 기대를 많이 했다가 실망한 심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그 때 집필을 생각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졌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1년을 보면서 나라를 저렇게 운영해서는 더 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에 집필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두드러진 문제점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야망만 키우고 리더로서 자질은 안 키웠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대통령이 되기까지 헌신의 노력을 다하지만 막상 집권해서는 어떻게 국가를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안돼 있는 겁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금 다르긴 해도 전체적으로는 부족했죠. 이명박 대통령은 ‘잃어버린 10년’을 말했으면서도 어떤 시대를 열어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결여돼 있었어요. 취임사에서 선진화 원년을 선언했지만 선진화를 무엇으로 인식했는 지 알 수 없고 준비된 공약이라고는 747, 대운하 정도였죠. 취임초 ‘강부자’ ‘고소영’ 인사로 흔들리더니 촛불시위로 혼비백산하면서 상황이 끝났죠. 취임초 1년이 가장 중요한데 임기 내내 상황에 끌려다닌데다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측면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아요.”

- 책은 스테이트크래프트 관점에서 전‧현직 대통령을 평가했는데 스테이트크래프트를 정의한다면.

“국가라는 법인체의 행위자로서 요구되는 각종 능력인데, 사전적으로 직역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기술’ 쯤 되죠. 통치 리더십, 국가운영 경륜 등으로 풀이할 수 있겠죠.”

- 책 제목이 ‘대통령의 자격’인데 이 시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될 사람의 자격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개인의 인문학적, 전문적 자질의 기반 위에 지금 우리가 요구받고 있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찾아서 국민에게 제시해서 동의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한 자격이겠죠.”

- 책은 대통령의 자격, 덕목으로 대통령직에 대한 투철한 인식, 민주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 정책능력, 북한관리능력 등을 꼽았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못 받는 이유가 여럿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권력의 사유의식’ 때문입니다. 이는 국가가 무엇인지, 대통령직이 무언인가에 대한 의식이 투철하지 않은데서 나와요. 국가는 공공성이 응결된 조직이고, 대통령은 공공성의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공공성이 투철하면 권력의 사유의식이 생길 수 없죠. ‘민주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말 그대로 정치적 민주주의가 전부가 아니고 한단계 발전해 경제적 민주주의, 사회적 민주주의로 확대되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사회가 불평등 구조가 안생겨 국민통합이 되고 국가발전도 이뤄집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주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CEO 출신 대통령에게 토론, 절차, 공론화 등 민주주의 과정이 낭비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겠죠. 그래서 효율성을 강조해 밀어붙이다보니 ‘소통 부재’라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이 두가지 자질은 무엇보다 중요하죠.”

- 그러한 대통령의 자질, 스테이트크래프트 측면에서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어떻게 보는지요.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으로는 대선에서 어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시절, 17대 총선을 치르면서 선거대책부본부장을 맡아 짧은 시간 만나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어요. 박 전 대표는 개인적인 품성은 대한민국 정치인 중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사(私)보다 공(公)을 앞세우는 정신이 투철하고 공적인 목표를 향한 헌신성이 뛰어나며 감정 절제가 초인적입니다. 그런 품성을 기반으로 스테이트크래프트를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 보여주질 못했다. 그동안 국가적인 중요 이슈에 대해 본인 의사 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정치 지도자로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에 부담을주지않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제는 총선을 치러야 하고 시간이 없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시대정신, 대한민국이 짊어진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누구와 하겠다는 청사진을 보여줘야 합니다.”

- 안철수 교수를 가까이서 지켜봤고, ‘큰 그림’도 구상했던 것으로 아는데 스테이트크래프트 관점에서 ‘대통령 후보’ 안 교수를 평가한다면.

“지난 5월과 8월 사이에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면서 4개월 정도 짧은 시간에 제한적인 범위에서 접촉했기 때문에 평가가 조심스럽습니다. 안 교수는 한국사회가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한국정치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투철했는데 자신이 정치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고 했어요. 또 정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를 일관되게 했기 때문에 안 교수를 대통령 후보감으로 관찰한 적이 없습니다. 안 교수의 정치적 소양은 있는 듯, 없는 듯해 판단하기가 어려워요.”

- 안철수 교수가 1년간 시대가 요구하는 대통령 자질, 스테이트크래프트를 준비할 수 있다고 보는지요.

“워낙 학습 능력이 뛰어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으나 스테이트크래프트는 책 몇 권 읽어서 되거나 시험공부하듯 되는 게 아닙니다. 책에 인문학적 소양, 이론적인 지식과 경험이 녹아있는 ‘암묵지’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런 단계까지는 1년 이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데 안 교수가 어느정도 노력하느냐에 따라, 또 정치‧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요.”

- 최근 안철수 교수의 행보를 두고 이미 정치권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많은데 안 교수의 대선 출마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지요?

“안 교수에게 충고 한 적 있어요. 정치할 생각 있으면 기본적으로 총선에 출마해서 국민의 심판 받고 국회에 들어가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당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정치해야지 학교에만 눌러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죠. 그런데 본인이 정치할 생각 없다고 한데다 9월초 이후에는 책 쓰는데만 전념해 연락한 적이 없어요.”

- 일부에선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너무 일찍 무대에 오르기보다는 총선 후 나서는 것이 전략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른바 박원순 시장식 과정인데 그건 온당한 방법이 아니라고 봐요.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은 떳떳하게 국민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토론회 몇 번 나간다고 검증되는 게 아닙니다.”

- 정치권에서 ‘제3세력’, ‘제3신당’ 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는데 어떤 세력, 어떤 신당인지요?

“지금 여야 또는 보수, 진보 두 세력이 이 나라를 더 이상 끌고 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한나라당, 민주당은 이미 국민의 불신을 받았고요. 제3세력, 제3신당 출현 가능성이 높은 셈인데 ‘제3’이란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간이라거나, 여도 야도 아닌 무조건 3당이란 의미도 아닙니다.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새로운 국가운영의 원리를 만들어내야 국민이 비로서 ‘제3세력’ ‘제3신당’이라 할 수 있겠죠.”

-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보면 안철수 교수가 제3세력이나 제3신당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는데.

“가능성은 뭐든지 열려 있다고 봅니다. 안 교수의 의지에 달려 있겠죠.”

- 법륜 스님의 평화재단에 참여하고 있는데, 항간에선 평화재단 중심의 ‘제3신당’, ‘안철수 신당’ 얘기도 나옵니다.

“평화재단은 교육원장직을 맡고 있어 참여하는 것이고, 법륜스님이나 저나 한국사회의 공공선,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차원에서 일을 하는 것이지 신당과는 무관합니다.”

윤여준 전 장관은 책 출간 후에도 당분간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고 했다. 책을 쓰면서 고전(古典)의 가치를 새삼 느꼈다며 사색의 깊이를 더하는 작업을 실천해보겠다고 했다. 3년 후쯤 이명박 정부를 전체적으로 다룬 것을 포함한 개정판을 내겠다고 한다.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한 스테이트크래프트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여준 전 장관은 ....

1939년 충남 논산 출생.단국대 정치학과 졸업

1966년 동아일보 기자

1969년 경향신문 기자

1977년 주일대사관 공보관

1979년 주싱가포르 대사관 공보관

1983년 국회의장 공보비서관

1984년 대통령 공보비서관

1987년 대통령 의전비서관

1988년 대통령 정무비서관

1990년 정무1장관실 보좌관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

1994년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

1997년 환경부 장관

1998년 한나라당 총재 정무특보

1998년 여의도연구소 소장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2년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2007년 한국지방경영연구원 이사장

2010년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합천 평화의 집 원장

2011년 평화재단 지도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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