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명차 마이바흐(Maybach)도 상위 1%의 마음을 붙잡진 못했다.

벤츠로 유명한 독일 자동차 회사 다임러벤츠는 최고급 자동차 마이바흐 생산을 2013년부터 그만둔다. 다임러벤츠 디터 제체 회장은 최근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과 인터뷰에서 "마이바흐보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판매하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애용한다는 이유로 '이건희 차'로 불린 마이바흐는 롤스로이스, 벤틀리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 손꼽힌다. 한국에선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연예인 배용준 등이 애용한다.

모 대기업 회장이 즐겨 타던 벤츠를 마이바흐로 바꾸자 기사가 마이바흐를 운전하고 나서 "벤츠는 차도 아니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마이바흐는 1921년부터 1941년까지 딱 30년간 생산됐다. 메르세데스를 개발했던 빌헬름 마이바흐의 아들 칼 마이바흐는 시속 170㎞를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고 나서 자신의 성을 붙여 마이바흐라고 불렀다. 당시 마이바흐는 완벽과 성실의 상징이었고, 불과 1,800여 대만 생산돼 전설이 됐다.

다임러벤츠는 최고급 자동차 시장을 겨냥해 2002년 마이바흐를 부활시켰다. 당시 다임러벤츠는 벤츠를 앞세워 고급차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했지만 최고급 시장에선 BMW가 만든 롤스로이스와 폭스바겐이 제작한 벤틀리에 밀렸다. 벤츠 S클래스 구매자를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때문에 뺏기자 다임러벤츠는 마이바흐를 부활시켜 최고급 시장을 공략했다.

전설로만 남았던 명차 마이바흐는 61년 만에 부활했지만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연간 1,000대 판매를 목표로 삼았지만 실제 판매는 100~200대에 그쳤다. 지난해 판매량은 157대. 벤츠 S클래스와 마이바흐의 가격 차이가 너무 커 S클래스 대신 마이바흐를 선택하는 수요가 적었다. 벤틀리가 마이바흐보다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S클래스 다음 단계로 벤틀리를 선택하는 이가 많았고, 최상급 자동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는 아무래도 과거의 명차 마이바흐보다 현존하는 명차 롤스로이스를 선호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수입차협회는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마이바흐는 8대가 팔린 반면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각각 21대와 82대가 팔렸다. 가격에 따른 선호도가 벤츠 S클래스에서 벤틀리를 거쳐 롤스로이스로 이어졌다. 롤스로이스는 잠재고객 마음 속에 최고급 자동차로 자리를 잡았고, 벤틀리는 마이바흐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훨씬 앞섰다.

다임러벤츠는 약점을 고치기보다 장점을 살리기로 했다. S클래스 판매가 늘고 있는 반면 마이바흐 판매는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급성장한 BMW와 아우디가 고급차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도 다임러벤츠가 마이바흐를 포기하고 벤츠 고급 모델인 S클래스에 주력하는데 한몫을 했다.

이건희 회장은 마이바흐 생산이 중단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롤스로이스를 타고 출근했다. 지난달 18일 부친 추모식에도 롤스로이스를 이용했다. 평소 마이바흐를 애용했지만 최근 롤스로이스 사용 빈도가 늘었다. 일각에선 마이바흐 무상 점검 기간이라 그럴 수 있다는 반응도 있다. 다임러벤츠는 마이바흐만 전담하는 독일인 자동차 장인을 한국에 보내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1일까지 무상 점검을 하고 있다.

1%를 위한 마케팅과 해마다 무상 점검을 내세웠지만 전설의 명차 마이바흐는 또 다시 전설에 묻힐 운명이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