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중개상 '김영완 뇌관' 터지나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
8년전 대북송금사건 열쇠 민감한 시기에 귀국 의구심
지난달 귀국 검찰 조사 박지원 전 원내대표 관련 새 혐의내용 진술 알려져
함께 대북송금 창구 역할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도 지난주 참고인 조사 받아
권노갑 전 고문도 거론 통합 앞둔 야권 긴장

참으로 묘한 시기에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났다.

2003년 대북송금 사건과 현대 비자금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무기중개상 김영완(58)씨다.

김씨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가려진 의혹과 2003년 고 정몽헌 현대그룹회장 죽음의 미스테리에도 관련있는 인물이다.

김씨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실무자인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 고 정몽헌 현대그룹회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대북송금의 은행 창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영완씨
김씨는 지난달 26일 귀국해 곧바로 검찰 조사를 받고, 사흘 뒤인 29일 다시 출국했다. 지난 6일에는 이들 사건과 관련있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김씨가 이명박 정부 임기말, 그것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여러 함의를 지닌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김씨의 '귀국'이다. 김씨는 2003년 3월 대북송금 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미국으로 도피하였다. 국내에선 그를 소환하기 위해 나름의 조치를 취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국내 추적을 따돌리던 김씨가 8년 9개월여 만에 스스로 귀국했다.

사실 김씨의 귀국은 한국과 미국의 '공조' 로 볼 여지가 크다. 한국과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김씨의 귀국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이해'와 관련, 한국은 정치적 계산을, 미국은 대북송금의 실체를 파악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활용하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게 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씨의 귀국 '시점'은 그러한 분석에 설득력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한국의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은 카오스 상태다. 여권은 지도체제 붕괴와 함께 재창당 논의가 한창이고, 야권은 통합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 정몽헌 회장(오른쪽)과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이 2000년 9월 방북 때 모습. 주간한국 자료사진
어떤 정치 지형이 그려지느냐에 따라 여야의 총선과 대선의 향배가 갈린다. 김씨의 등장은 그러한 정치권 빅뱅의 지점에서 하나의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김씨가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대중(DJ) 정부의 실세들과 깊이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 전 원내대표는 현재 통합야당의 유력한 당권주자로 거론되고 있고 민주당에서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그의 거취는 향후 정국의 변수가 될 수 있다.

박 전 원내대표는 2003년 대북송금 수사에서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150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2006년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해외에 있던 김씨는 '박 전 원내대표에게서 150억원의 CD를 받아 관리했다'는 자술서를 제출했지만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김씨가 귀국함에 따라 150억원을 둘러싼 사건의 실체가 밝혀질 가능성도 있지만, 박 의원의 무죄가 이미 확정됐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재수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선 또 다른 얘기가 들린다. 김씨가 박 전 원내대표와 관련해 새로운 혐의내용을 진술했다는 것이다.

법조와 정가 일각에서도 김씨가 8년 9개월여 만에 국내로 들어와 검찰 조사를 받을 때에는 무언가 '한 방'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나타낸다. 김씨가 대북사업과 관련해 DJ 정부의 은행창구 역할을 한 만큼 박 전 원내대표를 비롯해 당시 실세들의 돈 거래 내역을 잘 알고 있고, 이를 검찰에 진술했다는 그럴듯한 소문도 있다.

야권 일각에서도 정부가 김씨를 통해 박 전 원내대표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해놓고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석인 견해가 있다. 민주당이 통합야당의 한 축을 이룬다고 할 때 김씨의 검찰 진술로 박 전 원내대표를 비롯해 DJ 정부 핵심 인사들의 비리가 불거질 경우 통합야당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더구나 통합야당이 DJ 정부의 대북정책을 승계하고 실제 깊이 관여한 인사들이 적지 않아

대북정책 수행과정에서 금전 비리 등이 드러나면 총선, 대선 국면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벌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는 현대그룹이 지정한 스위스 계좌로 3000만 달러를 보낸 경위를 조사하면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다시 부를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고문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김씨를 통해 현대그룹 비자금 20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2004년 징역 5년이 선고된 바 있다.

최근에는 DJ 정부시절 대북송금과 관련, 현대그룹의 해외 지사에서 오스트리아 모 은행, 모스크바 일부 은행 등을 통해 평양으로 입금됐다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온다.

는 1990년대를 전후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알게 된 후, 고 정몽헌 현대그룹회장과 가까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는 이익치, 고 정몽헌 회장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는 설과 박 전 원내대표가 미주한인회장일 때부터 알고 지냈다는 얘기가 있다. 권노갑 전 고문과는 1990년대 무기중개상을 하면서 국정감사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인연을 이어왔다고 한다.

김씨는 대북정책의 실무자인 박 전 원내대표, 고 정몽헌 회장, 이익치 전 회장이 움직일 때 거의 함께 움직였다. 그만큼 이들의 '비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야권이 김씨의 검찰 진술에 긴장하는 이유다. 통합야당의 행보에 김씨는 언제든 '뇌관'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