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샐러리맨 초한지'
사면초가(四面楚歌) 금의환향(錦衣還鄕) 다다익선(多多益善) 등 유명한 고사성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역사소설 '초한지(楚漢志)'가 그 출처다. 동아시아의 고전 게임인 장기도 '초한지'에서 나온 것이다. 장기판에서 목표가 되는 '초(楚)'는 항우를, '한(漢)'은 유방을 뜻한다. 항우와 유방, 두 사람의 천하 다툼이 장기판 위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셈이다.

그 '초한지'가 2012년 초 방송가와 영화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SBS는 내년 1월 2일 '샐러리맨 초한지'(극본 장영철, 정경순ㆍ연출 유인식)로 2012년 드라마의 포문을 연다. 1월 12일에는 '초한지-천하대전'(감독 이인항ㆍ수입 조이앤컨텐츠그룹)이 국내 개봉해 '적벽대전' 시리즈에 이어 중국 역사 블록버스터의 계보를 이어간다.

#초한지, 재벌드라마 변신

'샐러리맨 초한지'는 소설 '초한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드라마다. 출연진의 극중 이름도 '초한지'에서 차용했다. 주인공 오유방(이범수)은 '초한지'의 유방과 태생 및 성격이 유사하다. 몇 년째 실업자였지만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점이 오래도록 한량으로 살았지만 여유로웠던 유방의 닮은꼴이다. 최항우(정겨운)는 항우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인물. 그는 극중 경영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단 기간 천하그룹 이사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지만 성격은 능글맞다. 저돌적인 성격이지만 아버지의 원수인 천하그룹 회장 진시황에게 복수하고자 음모를 꾸민다.

그 밖에 박범증 최항량 한신 호해 번쾌 소하 장량 등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소설 '초한지'에서 따왔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에서 유방의 황후로 훗날 여태후라고 불리는 여치는 드라마 속에서 엉뚱하게 진시황의 외손녀 백여치(정려원)로 바뀌어 등장한다. '초한지'에서 여태후는 진시황과 전혀 연관이 없는 인물이다. 드라마에선 재벌가의 딸과 주인공 유방의 러브 라인 형성을 위해 무리하게 백여치를 집어넣은 흔적이 보인다. 이 점은 그 동안 숱하게 봐온 다른 재벌가 관련 드라마들과 차별성을 갖지 못하게 한다.

영화 '초한지-천하대전'
또한, 조력자들이 등장해 유방과 항우를 돕는다는 점은 '초한지'와 유사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어느 정도일지는 미지수다. 조연들의 역할 부여에 따라 '초한지'의 맛을 어디까지 살릴 수 있을지 여부가 판가름 날 수 있다.

#둘중 누가 진정한 영웅인가

'초한지-천하대전'은 삼국지를 영화화한 '적벽대전'과 유사하다. 소설 속 스토리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 거대한 스케일로 전장을 묘사하는데 치중했다. '적벽대전'이 그랬던 것처럼 남성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작품이다.

'초한지-천하대전'은 소설 '초한지'와 마찬가지로 작품 속에서 '항우와 유방 중 둘 중 누가 진정한 영웅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특히 영화 속 항우는 단순히 유방의 적으로 인식되기엔 지나치게 매력적이다.

배우 풍소봉이 맡은 항우는 관능미가 넘치는 인물이다. 마른 체형에 짙은 쌍꺼풀, 길게 풀어헤친 머리를 하고 전장에서 창을 휘두르는 모습은 거친 남자로서의 향기가 짙게 난다. 소위 말하는 '짐승남'의 모습이다.

반면 여명이 분한 유방은 항우에 비해 항상 반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장에선 투구를, 일상에선 관을 쓰고 등장하는 캐릭터다. 태생적으로 풍요롭게 자란 것은 항우지만 영화에서는 유방의 풍모가 더 귀족적이다. 이는 항상 전장의 일선에서 뛰어다닌 항우와 전선의 후방에서 전장을 관전한 유방의 지휘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다.

중국어권 스타 유역비가 열연한 우희는 군대 통수권자로서가 아닌 '남자로서' 항우와 유방의 매력 대결을 유발시키는 존재다. '초한지-천하대전'은 실제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유방-항우-우희 간의 삼각 관계를 넣었다. 소설 속 우희는 항우의 아내로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목을 벤 여인이다. 영화 '패왕별희' 속 경극에서 배우 장국영이 연기한 것이 바로 우희다. 그가 '패왕별희' 마지막 장면 중 스스로 목을 베고 자결하는 것도 우희의 전철을 밟은 것이다. 영화에서 우희에 대한 유방의 사랑은 항우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우희는 역사 속에서 항우의 여자이기 때문.

사랑하는 여인과 나란히 죽는 영화 결말 속 항우의 모습은 소설에선 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의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전장에선 창을 던져 적의 몸을 관통시키는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삶의 마지막에 사랑 때문에 눈물 흘리는 그의 순애보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풍소봉의 매력만큼 묘하게 어울린다.

#왜 초한지인가

'초한지'가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된 것은 '초한지'가 스스로 드라마적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초한지'의 묘미는 판이하게 다른 두 주인공이다. 항우는 출신 배경과 능력에서 비범한 인물이지만 유방은 평범하다 못해 부족한 구석도 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라는 점에서 '삼국지'조차 갖추지 못한 반전 결말을 갖고 있다.

또, 다른 역사 소설에 비해 등장인물의 수가 적고 관계가 복잡하지 않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샐러리맨 초한지'가 '초한지'의 주요 인물들을 드라마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소설 속 등장인물 수가 제한적이고 그들 모두 항우와 유방 양 편 중 한 쪽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지 않은 점도 장점이다. '삼국지'를 영화화한 '적벽대전'은 소설의 극히 일부임에도 영화 두 편으로 나뉘어 상영됐다. '초한지-천하대전'은 소설 전체를 담진 못했지만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홍문의 연회와 해하 전투를 묘사할 수 있었다.

이런 '초한지'의 특성과 함께 힘들어진 서민들의 삶도 2012년 들어 '초한지' 관련 작품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정치 및 경제 등의 분야에서 '힘 있는 자'들이 보여준 실망스런 현실에서 서민 출신 유방이 강자 항우를 뒤집는 모습은 대리 만족을 줄 수 있다. 그리고 2012년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해다. 대선을 통해 국민들이 지도층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서민 출신 여성이 재벌가 자제에게 구제받는 흔한 드라마보단 부족한 남자의 성공 스토리가 더 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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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엽기자 klim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