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이맘때 북한에 가장 필요한 것은 비닐과 트럭 기름, 그리고 식량이다. 비닐은 이듬해 파종과 겨울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구해야 하고, 트럭기름은 최소한의 운송에 요구된다. 올해 최악의 식량사정은 북한의 겨울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 단둥에서 북한을 오가며 20년 가까이 무역업을 해 온 조선족 동포 K씨는 지난 17일 김정일(69)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곧바로 평양으로 달려갔다. 오랜 기간 가깝게 지낸 북한 고위층 인사들을 통해 김 위원장의 사망 과정에 대해 얘기를 들은 K씨는 매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북한 나름대로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 기틀을 잡아가고 있는데 그 중심, 기반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내년 4월 강성대국 진입을 목표로 핵문제와 먹고 사는 문제에 매진하면서 한편으론 당과 군부로 양분된 국가구조를 '정상국가'의 틀로 다져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김 위원장은 군부 반발에 방패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김 위원장 사후 북한의 앞날과 관련,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 체제에 대해 K씨는 "위원장께서 적어도 3년 가량은 조국을 이끌어야 하는데…"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 부위원장이 있지만 조국의 문제를 혼자 짊어지기엔 힘들고, 김정은은 아직 어리다"고 말했다.

그의 진단처럼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急逝)'로 날아온 불안전한 기류가 한반도 전역을 뒤덮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영도체제를 공식 선언해 안정을 꾀하고 있지만 현실은 매우 불투명하다. 김정은의 후계자 역량에 논란이 있는 데다 지지기반이 불확실하고 당과 군부, 군부내 강온파의 권력투쟁, 북핵을 둘러싼 갈등 등 폭발 요소들이 잠재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가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 하는 것은 한국은 물론 동북아, 나아가 전 세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북한은 일단 '유훈통치'로 김정은 시대를 열었지만 어디로 향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권력 구조와 대내외 환경을 들어 몇가지 시나리오를 제기한다.

첫째, 김정은 1인 체제로 가는 경우다. 3대 세습에 의해 권력 장악은 했지만 안정성은 김정은의 능력에 달렸다는 것이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 시대의 파워 엘리트들이 당분간 김정은 체제의 안착에 노력할 것"이라며 "엘리트들의 충성도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김정은 세습은 오래 전부터 결정돼 있었다"면서 "남북관계는 현 상태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둘째,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이다. 김정은이 명목상의 지도자에 머물고 실질적 통치권은 집단지도체제에 있는 경우다. 김정은이 경험 부족과 복잡한 상황 때문에 독자적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을 때 상당한 권력이 그의 후견인들에게로 넘어가는 형태다.

리처드 부시 미 브루킹스 연구소 동북아 정책센터 소장은 "김정은을 앞세우고 당과 군부, 내각이 후견하는 집단지도 체제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 사회의 특성상 김정은 1인 체제로 갈 개연성이 있지만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위해 중심의 집단지도 체제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셋째, 북한 내 다양한 정치 세력이 김정은에게 도전하면서 계파 간 권력투쟁을 하는 경우다. 을 비롯한 후견인 그룹이 단지 보조 역할에 머물지 않고 권력 장악을 위한 게임을 시작하는 경우에 권력투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다른 아들인 김정남과 김정철이 어떻게 나올지도 변수라고 한다.

넷째, 군부 강경세력이 김정은을 견제하고 새 권력을 창출하려는 경우다. 김정은 체제가 과도한 개혁과 개방 움직임을 보일 경우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 강경파가 쿠테타를 일으켜 김정은을 몰아내고 직접 통치에 나서는 상황이다.

북한의 미래는 북한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지금 북한에는 '현실'의 가장 핵심 축었던 김정일 위원장이 사라졌지만 그의 그림자는 현실처럼 선명하다. 여전히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을 이해하는 키워드이고 김정은의 존재성 역시 김 위원장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김 위원장의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ㆍ심장쇼크로 밝혀졌다. 김 위원장이 '과로'한 직접적인 원인은 내년 4월 '강성대국'에 걸맞는 성과를 이끌어내고 군부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강행군한 탓이다.

북한은 노동당과 군부라는 두 바퀴로 움직이는 국가다. 김 위원장은 국방위원장으로 직책상 군부까지 지배할 수 있게 돼있지만 현실의 군부는 높은 벽이고 견제자로 존재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신년 초마다 황해도 율도섬을 시작으로 초두순시에 나선 것이나 부친인 김일성 주석 때보다 군부대 방문 횟수가 월등히 많은 것은 군부를 의식한 행보다. 다시 말해 김 위원장 사후에도 군부는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으로 김정은 체제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김정은에 관한 부분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우선 '후계자'라는 타이틀이다. 김정은이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지면서 북한의 3대 세습이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아직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고 '후계자'로 비춰질 뿐이라는 게 북한 고위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앞서 소개한 조선족 무역상 K씨도 "김정은이 후계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당과 군부의 고위급 인사는 다 안다"면서 "김일성 주석도 후계자로 김정일 위원장을 인정했을 뿐 손자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일성-김정일 때와 달리 김 위원장 사망 전까지 김정은에 대해 '후계자'란 용어를 쓰지 않은 것도 김정은이 후계자가 아니라는 반증이라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주석이나 김 위원장이 '후계자(3대 세습)'를 생각했다면 장남인 김정남(40)에게 '제왕학(帝王學)'을 가르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정남과 김정은의 나이 차이(11살)가 많은 상황에서 뒤늦게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설명도 따른다. 김 위원장이 군부 최고위급 인사나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주석에게 "후계자는 없다"고 한 것은 북한과 중국에서 웬만큼 알려진 얘기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작년 9월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 있다는 게 베이징 북한소식통의 전언이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2008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자신의 건강과 권력을 고려해 어린 김정은을 당의 요직으로 급하게 밀어 올렸다는 것이다. 원래는 김 위원장이 장남인 김정남에겐 해외임무를 맡기고, 둘째 김정철은 군에, 막내인 김정은은 노동당에 전략적으로 배치시키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는 것. 김 위원장이 경력도 일천하고 서른도 안된 김정은에게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라는 파격적인 직위를 부여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군부대나 산업시찰에 김정은을 대동하고, 이번 장례에서 '김정은 띄우기'가 두드러진 것은 같은 맥락으로, 김정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김 위원장의 부정(父情)과 측근들의 보신책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생존시와 사망 후 '김정일 행보'의 밑그림은 대부분 김정은의 고모부인 국방위 부위원장이 그린 것으로 파악된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정치국 위원 겸 경공업 부장의 남편인 장 부위원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일 위원장 그룹이 군부를 제치고 전면에 나서면서 북한의 생존전략과 남한을 활용하는 방안에 관한 그랜드 플랜을 짰다. 장 부위원장은 2002년 4월 북한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 남북경협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보여줬고, 2005년 7월 '북남경제협력법'을 제정ㆍ공포한 데 이어 2006년 초에는 전면에 등장해 2007년 3~5월 북한의 군부, 내각, 외교 및 대남라인 등에서 대대적인 인적 교체를 단행하는데 관여했다.

장 부위원장은 '인사'를 통해 곳곳의 요직에 자신의 사람을 심었다.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에서 당비서들인 최룡해ㆍ태종수ㆍ김평해ㆍ박도춘ㆍ문경덕 등이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으며, 리영호 군총참모장, 김정각 군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 등 측근 인사들이 실세 기관을 장악하게 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부인인 김경희 경공업 부장의 위상이다. 경공업 부장은 북한의 최대 과제인 '먹고 사는' 문제를 관장하는 자리로, 그만큼 장 부위원장의 파워를 말해준다.

김정일 사후 북한은 장 부위원장과 그의 사람들이 관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 장례에서 김정은을 국가장의위원 1번에 올리고 '유훈통치'를 명목으로 김정은에 상당기간 힘을 실어준 것도 장 부위원장의 복안이라고 한다. 현재 김정은과 장 부위원장의 관계를 단종과 수양대군 관계로 비유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처럼 막강한 힘과 조직을 갖춘 장 부위원장도 군부에 대해선 조심스런 행보를 취하고 있다. 자칫 과도한 행보가 군부 강경파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만일 김정은의 유훈통치에서 파열음이 나온다면 그룹과 군부 강경파의 대립이 유력하다. 북핵 문제와 북미관계, 남북관계에 여전히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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