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웨이'
'300억 대작'이란 수식어가 붙은 (감독 강제규ㆍ제작 디렉터스)가 부진의 늪에 빠졌다. 순 제작비만 280억 원으로 한국영화 역대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마이웨이'의 3일까지 누적 관객은 183만7,602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1일 개봉돼 14일 동안 200만 관객도 채우지 못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이 개봉 13일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것과 대비된다.

'마이웨이'는 생생한 전쟁 장면 하나만큼은 호평 받았다.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의 모습과 단말마의 비명으로 목숨을 잃는 병사들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 나온 소련군과 독일군의 교전 장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모습을 한 영화에서 모두 볼 수 있다는 것도 전쟁 영화 마니아들에겐 큰 즐거움이다. 할리우드 영화들과 비교해 크게 밀리지 않는 장면 묘사에도 '마이웨이'가 웃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마이웨이'의 부진 원인을 들여다봤다.

영화 흥행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을 꼽으라면 '액션' '감동' '웃음'이다. 세가지 중 하나는 꼭 잡아야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 아쉽게도 '마이웨이'는 확실하게 한가지를 잡지 못했다.

# 스케일 비해 스토리 빈약

'마이웨이'는 스케일에 중점을 둔 영화다. 전쟁물은 스케일과 함께 '감동'으로 승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이웨이'는 관중들의 울음을 짜내지 못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상영 당시 영화 중간중간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과 대비된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이를 "한국 사회에서 형제와 친구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다"고 설명했다. '마이웨이' 속 김준식(장동건)과 하세가오 타츠오(오다기리 조)는 '전우'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다소 어색하다. 전장에선 한 편으로 싸웠지만 함께 동고동락한 사이는 아니기 때문. 이 점 때문에 전쟁영화의 또 다른 감동 코드인 전우애를 선보이기에 부족했다.

출연배우 오다기리조(왼쪽)·판빙빙
완급조절 실패도 '마이웨이'가 가진 문제점이다. 2시간 30분 가량의 러닝타임이 짧다고 할 수 없지만 준식의 긴 여정을 담기엔 부족했다. 1938년부터 1944년까지 6년 동안 전쟁터를 전전한 준식의 이야기를 그려내느라 스토리 진행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다. 전개가 빠르다 보니 관객들은 울고 웃어야 할 시점을 잃어버렸다.

'마이웨이'가 부진한 또 다른 요인은 여러 에피소드가 결합된 형식 때문이다. 극중 준식과 타츠오는 일본군에서 러시아군으로, 이어 독일군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겪는다. 쉽게 말해 '마이웨이'는 크게 일본군ㆍ러시아군ㆍ독일군에서의 세 가지 에피소드가 결합된 형태다. 전 평론가는 "최근엔 관객들이 하나의 에피소드로만 구성된 영화를 선호한다"며 대표적인 예로 영화 '최종병기 활'을 꼽았다.

배우 장동건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은 영화가 내부적으로 보여준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는 '마이웨이'의 주인공임에도 타츠오 역의 오다기리 조 뿐만 아니라 김종대 역을 맡은 조연 김인권보다 돋보이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주인공 준식은 시종일관 착하다. 마라토너의 꿈에 대한 집념, 국경을 넘어선 전 인류적 사랑, 조선인에 대한 우정까지 전쟁터에서 수년을 보낸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 합작 영화의 암면(暗面)

'마이웨이'는 한ㆍ중ㆍ일 합작 영화다.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등 각국 배우들이 출연했고 판빙빙은 제작비의 10% 가량인 30억 원을 직접 투자했다. '한ㆍ중ㆍ일 합작 프로젝트 영화'라는 수식어는 결국 '마이웨이' 제작에 참여한 한ㆍ중ㆍ일 각국의 입장이 모두 고려됐음을 의미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판빙빙의 무리한 출연이다. 실제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은 인터넷을 통해 판빙빙 분량의 필요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판빙빙은 일본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명사수 쉬라이를 연기했다. 그의 출연 분량은 10분 남짓. 중국 배우들 중 유일하게 출연한 판빙빙의 출연분은 스토리 전개 상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중국 시장을 의식해 쉬라이란 배역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일본 시장에선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국내 네티즌들의 뭇매를 받았다. '마이웨이' 일본판 예고편에 등장한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됐던 것. 문제가 된 예고편은 일본 측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였다. '마이웨이' 관계자는 해당 영상이 일본 배급사에서 만든 것이라고 해명하고 수정 조치했다.

일본해 사건은 '마이웨이' 왜색 논란의 시작이었다. 영화 개봉 후엔 친일논쟁이 불거지며 흥행의 발목을 잡았다. 영화 전반부에서 타츠오가 보여주는 조국에 대한 신념과 당시 일본 군인들이 지녔을 법한 자긍심은 일본군에 소속된 일부 조선인들의 모습과 대비됐다. 남다른 식탐으로 "나는 야만인이다"라고 복창할 것을 명령 받는 춘복(김희원)의 모습과 살기 위해 친구까지 파는 종대는 저격으로 일본군들을 응징하는 중국인 쉬라이보다 못해 보였던 것도 사실.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인터넷을 통해 친일논쟁에 불을 지폈다. 또 다른 이들은 한국영화임에도 대사의 대부분이 일본어인 것에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일본의 구미를 맞춰준 것이 아닌 영화의 사실성을 살리기 위한 장치였다는 주장도 많다. 일본 군인들의 광기 어린 충성심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국주의의 무서움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극중 준식을 비롯한 많은 조선인들이 타츠오 등 일본인들과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도 당시 세태에선 정확한 묘사다. 일본군 소좌 출신인 타츠오가 일본군 소속 조선인들에게 한국어로 말을 거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심각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의 심리도 '마이웨이'에겐 악재가 됐다. 관객들에게 극장은 각박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공간이다. 영화관에서 2시간 정도 신나게 즐기고 영화로부터 위로 받길 원한다. '마이웨이'는 전쟁물이면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인물들의 삶을 다루다 보니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 돼 버렸다.

# 한국관객의 변화

관객의 액션 선호 성향도 '마이웨이'가 대중을 만족시키지 못한 이유가 됐다. 1990년대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멜로가 득세했다. 2000년대 들어선 '조폭 마누라' 같은 코미디물이 인기를 끌다 요즘엔 액션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반복적으로 전장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는 '마이웨이'에서 화끈한 전쟁 액션을 기대하긴 무리다. 준식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흰자위를 보이며 기관총을 난사하던 장동건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더불어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가 확실히 높아졌다. 2011년 영화 '7광구' 의 저조한 흥행 성적과 '써니' '완득이'의 성공이 이를 대변한다. 요즘의 대중은 스케일이 큰 작품보다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을 선호하고 있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의 잇따른 흥행 성공을 통해 한국 영화의 거장으로 우뚝 선 강제규 감독의 작품이기에 대중의 기대치는 높았다. 그래서 스케일에 비해 빈약한 '마이웨이'의 스토리 전개가 준 실망은 더 컸다.

앞으론 투자자들이 영화 제작에 보다 신중해질 전망이다. 트렌드의 변화와 대중의 심중을 읽지 못한 충무로는 이제 스케일보다 스토리에 중점을 둔 영화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전 평론가는 "이번 일을 계기로 30~40억 제작비를 들인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질 것이다"며 "한국 영화계가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물론 2012년에도 '도둑들' '타워' '비상: 태양 가까이'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개봉된다. 하지만 이들 작품의 흥행 성공 여부는 화려한 영상보다 탄탄한 스토리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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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엽기자 klimt@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