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 노인 등친 입주권 사기유령 복지재단 사무실 열고 다단계로 집없는 서민 모집"임대아파트 구입해주겠다" 12억7000만원 가로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경제범죄특별수사대 관계자들이 서민상대 임대아파트 입주권 사기사건 브리핑에 앞서 증거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사기라고요? 얼마나 훌륭한 분인데, 절대 그럴 분들이 아닙니다."

경찰서에 불려 온 피해자들은 사기꾼을 옹호하며 역정까지 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온 60~70대 저소득층 노인들은 '5,000만원만 내면 서울 강남에 자리잡은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주겠다'던 사기꾼들을 끝까지 믿고 싶었다.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번듯한 신혼집을 마련해주고 싶었던 아버지 정모(64)씨. 그는 돈이 없어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던 아들을 위해 친척에게서 5,000만원을 빌렸다. 정씨는 '아파트 입주권을 주고 20년 뒤에는 소유권까지 준다'는 말에 솔깃해 사기꾼에게 선뜻 5,000만원을 건넸다.

야간에 청소부로 일하는 김모(67)씨는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일대를 청소한다. 이렇게 평생 모은 돈 4,400만원을 사기꾼에게 건넸다. 경기 광명에 있는 소형 빌라에서 남편, 아들 부부, 손자 등 가족 8명과 함께 사는 김씨는 몸이 불편한 아들에게 집 한 채를 물려주는 게 꿈이었다.

정씨와 김씨를 비롯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60~70대 저소득 노인 83명을 상대로 회원 접수비 5,000만원만 내면 반포와 잠실에 있는 임대아파트를 20년간 사용하게 해주고 소유권까지 넘겨주겠다고 속여 총 12억 7,000만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26일 사기 전과 4범인 권모(54)씨 등을 복지재단을 빙자해 서민의 돈을 가로챈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사기 혐의로 구속된 권씨 일당은 지난해 2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오피스텔에 국제호밍복지재단이란 유령단체를 차렸다. 각각 총재와 이사장 등으로 역할을 분담한 권씨 일당은 다단계 방식으로 노인을 끌어 모았다.

"국제호밍복지재단은 미국에 본사가 있고 연간 예산이 수 경원에 이르고 집 없는 서민을 위한 주택 복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회원 접수비 5,000만원만 내면 SH 공사가 보유한 반포동 00아파트, 잠실동 00아파트 등을 구입해 2012년 1월까지 입주시켜 주겠다."

참 복지를 강조한 사기꾼의 말은 사탕보다 달콤했다. 권씨 등이 수백억원짜리 수표와 통장을 보여주자 눈이 번쩍 뜨였다. 감언이설에 넘어간 김씨는 밤새 청소하면서 모은 돈 4,400만원을, 정씨는 아들 결혼식을 위해 빌린 돈 5,000만원을 기쁜 마음으로 넘겼다. 피해자들은 의심 없이 권씨를 이웃에게 소개했다.

권씨 일당은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피해자를 모아놓고 강의했다. 참 복지에 대한 설명에 이어 허무맹랑한 사업계획으로 피해자의 귀를 사로잡았다. "전라도 지역에 숨겨진 조상 땅 700만평을 찾아 복지자금으로 사용하겠다." "중국 상무장관에게서 투자를 받아 황학동에 있는 상가를 사고 인근에 중국 상품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피해자들은 통장과 수표까지 보여주는 권씨를 믿었다.

권씨가 장담한 아파트는 이미 오래 전에 입주가 끝났다. 게다가 임대주택은 법에 따라 거래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피해자들은 평생 모은 돈을 권씨에게 바쳤다. 간혹 의심하는 노인도 있었지만 권씨 등은 이들을 해당 아파트 빈집에 데려가 재단 소유 아파트라고 속였다. 이런 식으로 수십 차례 세뇌를 받은 피해자들은 의심 없이 돈을 내놓았다.

권씨 일당은 피해자에게 이웃을 데려와 회원이 되면 아파트 가격(5억원)의 3%(1,500만원)를 주겠다고 꼬드겼다. 피해자들은 주변에 "5,000만원으로 집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했고,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미끼로 벌인 사기 피해자는 83명으로 늘었다. 꼬리가 길면 밝힌다고 했던가? 권씨 일당이 가로챈 돈이 늘어나자 이들의 사기 행각이 경찰에까지 전파했다.

이들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지난 17일 오후 권씨 일당 세 명을 재단 사무실에서 붙잡았다. 총재와 이사장으로 행세한 김씨와 권씨는 구속됐고, 달아난 오모씨는 지명수배를 받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 국제호밍복지재단은 유령 단체였고, 권씨 일당은 각자 사기ㆍ폭행 등 전과가 있는 사기꾼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집이 필요한 절박한 노인의 처지를 악용한 사기 사건이다. 최근 전세금이 폭등해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서민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하는 사기 사건이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 서민 경제를 침해하는 범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돈을 빼앗긴 노인 가운데 일부는 경찰서에서 설명을 들었지만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심 없이 참 복지를 실현하려는 훌륭한 사람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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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