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닉스에 공들이는 SK 그룹M&A 7조원 투자로 계열사 자금 횡령혐의최태원 회장 검찰수사 돌파통신사업과 시너지 의문속 종합 IT업체 변신 포부

최태원(왼쪽) SK 회장이 22일 경기 이천 하이닉스 사업장을 방문해 권오철(오른쪽) 하이닉스 사장으로부터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최태원 회장이 자금 횡령으로 기소됐지만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불구속 기소된 지난달 5일 사상 최대 규모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SK그룹은 총 투자액 19조원 가운데 하이닉스에만 약 7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포춘코리아 2월호는 SK그룹이 하이닉스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집중 분석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2월 19일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계열사 자금을 횡령해 선물투자를 했다는 혐의 때문. 밤샘 조사를 받았던 최 회장은 이튿날 SK 본사로 출근했고, 이틀 뒤인 22일에는 새로 인수한 하이닉스 공장을 방문했다.

"지난 11월 하이닉스 인수 확정 이후 사업장 방문을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인수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글로벌 경제와 반도체 시황이 어려워져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아 (하이닉스에) 찾아왔다."

검찰 수사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에 미뤄왔던 하이닉스 공장 방문. 하이닉스 경영진에게 사업 계획을 듣고 나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SK그룹에 기회이자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가 지난해 11월 SK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을 위해 서린동 SK 본사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하이닉스는 앞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사업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만큼 대규모 투자 등 의사결정이 적기에 내려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인수 취지대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선 원가 경쟁력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특화된 가치 제공이 중요하다.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이 제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검찰은 최 회장이 경기 이천에 있는 하이닉스 공자을 방문한 다음날(23일) 법원에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상황은 급박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를 확정한 27일 검찰은 최재원 부회장을 구속했다. 총수 형제가 검찰의 수사망에 갇힌 터라 하이닉스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최 회장은 예년과 달리 신년사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SK그룹으로 볼 때 사상 최대 투자 계획(19조원)을 발표했다. SK그룹 전체로 보면 시설 부문에 투자될 돈이 약 10조원. 나머지 9조원 가운데 80%에 가까운 7조원을 하이닉스에 쏟기로 했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경여진에게 "30년 전 미래의 국가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지만 2차 석유파동 등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SK그룹 회장으로서 하이닉스를 반드시 성공시켜 앞으로 그룹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한 적 있다.

SK그룹이 하이닉스 인수에 뛰어든 시기는 지난해 여름. SK텔레콤이 7월에 "우리 필요에 따라 인수할 계획이다"고 말할 때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는 그룹과 관계가 없다"는 자세를 보였다. 당시 재계에선 검찰이 3월부터 최 회장을 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SK그룹이 자세를 낮췄다는 해석이 많았다.

어떤 이는 SK그룹 차원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할 돈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드러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그룹에 돈이 없어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하이닉스는 SK텔레콤의 자회사가 될 것이다"고 해명했다.

포춘코리아는 최태원 회장 형제의 계열사 자금 횡령 사건과 빠르게 진행된 하이닉스 인수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는지에 주목했다. 하이닉스는 10년 전인 2002년 미국 마이크론과 메모리 사업 부문 매각을 논의했고, 2009년엔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효성그룹으로 편입될 뻔했다. 국부 유출과 특혜 시비 때문에 매각이 실제 이뤄지진 않았지만 당시 SK그룹이 하이닉스 인수에 뛰어든 적은 없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당시에는 자금과 인수 조건이 달랐다고 설명했지만 포춘코리아와 인터뷰한 정보통신 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최태원 회장을 구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가 잘못되면 안 된다는 정부와 SK그룹의 공감대 때문에 최 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날카로울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할 때 깊숙이 관여했던 그는 "(하이닉스가)SK그룹 자체를 구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현재 하이닉스가 수익을 내는 등 전망이 좋아보이지만 반도체 산업의 흥망은 변화무쌍하다. SK그룹이 하이닉스 인수에 꽤 많은 돈을 들였는데, 반도체 업황이 나빠지면 하이닉스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하이닉스는 현대전자산업과 LG반도체가 합병된 회사. 외환 위기를 갓 넘겼던 99년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2조 5,000억원에 인수했다. 하이닉스란 새 이름으로 출발했지만 회사 사정은 무척 나빴다. LG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떠안은 부채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당시와 달리 현재 하이닉스는 자금 문제에 시달리고 있진 않다. 하이닉스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 동안 총 EBITDA(법인세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25조4,460억원을 기록했다. 해마다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액수가 2조 5,000억원 정도인 셈이다. SK텔레콤은 하이닉스 주식 1억 4,610만 주를 3조4,267억원에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하이닉스는 2001년 이후 10년 동안 흑자를 여섯 차례 기록했다. 회사 사정이 나빴던 2001~2003년에 적자였고,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있었던 2008년엔 1조 9,210억원이 적자였다. 적자를 합산하면 약 5조원이고 최근 5년간 영입이익은 4조원 이상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하이닉스가 독자 생존할 여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D램 가격이 반도체 업체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줄어든 것도 SK그룹에 좋은 소식이다. D램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낸드플래시 판매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D램 분야에서 세계 2위, 낸드플래시 분야에선 세계 3위다. D램과 낸드플래시 사이의 시너지 효과가 있는데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비메모리 반도체 쓰임새가 확장돼 시장도 넓어지고 있다. 하이닉스는 2004년 10월 비메모리사업 부문을 매각했지만, 사업 제한 기간이 끝난 2008년부터 다시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도 "비메모리 투자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도체 사업이 SK그룹이 하고 있는 사업과 전혀 다르다는 문제도 있다. SK그룹의 주력인 통신ㆍ정유 사업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협업으로 시너지를 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SK그룹은 하이닉스를 어떻게 키워나갈 생각일까?

SK텔레콤 하성민 사장은 지난해 11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해 종합 IT업체로 변신하겠다"고 말했다. 하 사장은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많은 이들이 모바일 기기의 기억장치로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하이닉스가 SK텔레콤과 사업 영역이 너무 달라 시너지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면서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의 관점에서 보면 가운데 (전자기기) 제조업체가 빠져 있지만 반도체와 통신 서비스를 갖는 건 ICT 전체를 아우르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 2등이 아니라 정보통신 업계 2등을 하겠다는 속내도 밝혔다. 하 사장은 삼성전자에 이어 국내 2위가 되겠다는 목표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하 사장의 바람처럼 하이닉스를 통한 정보통신 업체로의 변신이 쉽지만은 않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2위일 정도로 덩치가 큰 하이닉스를 제대로 경영하는 게 쉽지 않은 데다 삼성전자처럼 IT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생각도 목표라기보다는 꿈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이닉스 인수는 SK그룹 역사상 세 번째로 큰 인수ㆍ합병(M&A)이었다. 그동안 SK그룹의 M&G가 소비자 기반의 내수업종을 강화했다면 하이닉스 인수는 B2B를 겨냥한 셈이다. SK그룹의 양대 축인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은 공기업을 사들인 결과물이다. 선경(현 SK)이 1980년과 2006년에 각각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유공)와 인천정유를 사들여 국내 1위 정유사를 만들었다. 1994년 4,271억 원에 인수합병한 한국이동통신은 지금의 SK텔레콤으로 성장했다. SK그룹은 1999년에 경영난에 빠진 제2이동통신업체 신세계통신을 인수했고, 2007년에는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M&A에도 성공했다.

올해가 SK그룹으로선 하이닉스를 인수를 통해 그룹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룹을 먹여살리고 있는 통신과 정유를 넘어 IT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래저래 SK그룹의 변화 여부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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