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한국 최초 여성 법조인은 누굴까?

백인당(百人堂) (1914~1998년) 여사가 1951년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54년 대한민국 제1호 여성 변호사가 됐다.

평양여고 교사였던 이 여사는 남편 정일형 박사가 일제에 의해 수감되자 이불 장사를 통해 생계를 꾸렸다. 무뎌진 가위를 보며 “날이 잘 드는 가위가 있었으면”을 되뇌던 이 여사는 1946년 서울대 법대 첫 여학생이 됐다. 이 여사는 판사가 되고 싶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야당 국회이원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을 거부했다.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였던 이 여사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민주 변호사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민주화 운동과 여성 운동에 공헌한 이 여사는 1973년 세계여자변호사회 부회장이 됐고, 막사이사이상(1975년), 국제법률봉사상(1984년), 브레넌 인권상(1989년) 등을 받았다.

한국 최초 여성 판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2년 제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황윤석(1929~1961년)씨다. 사학자 황의돈의 딸인 황 판사는 1954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됐다. 황 판사는 1960년 필리핀에서 열린 세계여성법률가회의에도 참석했으나 이듬해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태영
한국 최초의 여성 검사는 1982년에서야 생겼다. 사법고시 22회에 합격한 조배숙(56), 임숙경(60)씨가 남성 법조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검찰에 입문했다. 조 검사는 1986년, 임 검사는 1987년 판사로 변신했다. 여성변호사 회장을 지낸 조배숙 변호사는 민주통합당 3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 의원과 경기여고ㆍ서울대 법대 동창인 김영란(56) 국민권위원장과 (55) 변호사도 법조계 역사에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됐다.

한국 최초의 대법관은 김영란 위원장의 몫이다. 경기여고 3인방 가운데 가장 먼저 사법고시(20회ㆍ1978년)에 합격한 김 위원장은 2004년 여성 최초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변호사로 전직하면 연봉 100억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김 위원장은 “전관예우를 받아 돈을 버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며 퇴임 후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을 정도로 청렴하고 강직했다.

변호사는 2003년 법무부 장관이 됐다. 3인방 가운데 법조계 입문은 가장 늦었지만 경력은 가장 화려한 셈이다. 법무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등을 고려해 검찰총장보다 선배인 검찰 고위간부 출신이 맡아왔다. 그런데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보다 사법연수원 11년 후배인데다 판사 출신인 강 변호사가 법무장관이 되자 검찰이 발칵 뒤집혔다.

여성 최초 사법고시 수석 합격자는 1971년에 나왔다. 서울대 법대와 사법고시 13회에 1등으로 합격한 이영애(64) 자유선진당 의원은 서울대 법대와 사법연수원을 1등으로 졸업했다. 여성 최초 지방법원 부장판사, 여성 최초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각종 최초 기록을 휩쓴 이 의원은 2004년 2월엔 춘천지법원장이 돼 여성 최초 법원장으로도 기록됐다. 가톨릭 신자인 이 의원은 경기여고 8년 후배인 변호사의 대모로도 화제를 모았다.

여성 최초 헌법재판관이라는 영예는 전효숙(61) 이화여대 교수가 차지했다. 여성 최초 형사부 부장판사를 역임했던 전 교수는 2003년 8월부터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활동했다. 전 교수는 97년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가 없었더라도 무리한 구속 수사로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는 등 합리적인 일처리로 신망이 두터웠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