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검사 '전성시대'열렸다올 사법연수원 졸업 신규 검사 61명중 37명이 여성김민아·김연실·권성희 여걸 3인방 최고만 모인다는 특수·강력·공안부 배치 요직서 종횡무진 활약 편견 타파

검찰 내 '여풍(女風)'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여검사의 임관이 꾸준히 늘면서 2001년 총 49명에 불과했던 여검사는 현재 5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올해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신규 검사 61명 가운데 여성은 37명으로 남성을 앞섰다. 지난해 새로 임용된 검사도 120명 가운데 59명이 여성이었다.

여검사의 신규 임용 비율은 2009년 이후 평균 50% 가까이에 이르고, 연수원 수료자 중 여검사 임용비율은 무려 60%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전체 검사 중 여검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때도 올 것으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 각 요직은 물론, 종래 남자 검사들의 전담 부서로 여겨지던 곳에 여검사들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바야흐로'여검사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상반기 인사에서 대한민국 최고 검사만 모인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ㆍ강력ㆍ공안부에 여검사를 배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20일 특수1부에 김민아(39) 검사, 강력부에 김연실(37) 검사, 공안1부에 권성희(37) 검사를 임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와 공안1부에 여검사가 배치된 건 처음이고, 특수1부에도 2005년 이후 7년 만에 여검사가 배속됐다.

화제가 된 김민아ㆍ김연실ㆍ권성희 검사는 사법연수원 34기 동기생으로 2005년 연수원을 졸업한 8년 차 여검사다. 검찰에서 수사 1번지로 손꼽히는 서울중앙지검 핵심 부서에 입성한 이들은 "수사에는 남녀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남녀 구분 없이 실적과 자질에 따라 우수한 여성 검사를 중요 부서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를 윽박질러 사건을 처리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설득을 잘하는 여검사가 많아 중요 부서에 진출하는 여검사가 많아질 거라고 귀띔했다.

"평소 중앙지검 특수부 검사가 꿈이었다"던 김민아 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사로 실체를 밝혀내는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특수부라고 생각했다"면서 "척결해야 할 중대 범죄가 있으면 수사력을 모두 동원해 유죄가 확정되는 순간까지 일하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2008년 검찰총장 표창을 받았던 김 검사는 2010년엔 모범검사로 뽑히는 등 수사 능력을 인정받아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는 특수1부에서 일하게 됐다.

마약과 조직범죄를 수사하는 강력부는 창설 22년 만에 처음으로 여검사를 구성원으로 받았다. 서울중앙지검과 부산지검 공판부에서 마약 사건 재판을 담당했던 김연실 검사는 "검찰 수사관과 검사의 노력 때문에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일 수 있다"면서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를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내가 잘해야 후배에게 기회가 생길 테니 부담도 많다"고 말했다.

선거와 공안 사건을 전담하는 공안1부에 배속된 권성희 검사는 2008년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선거 관련 범죄를 수사했던 경험이 있다. 권 검사는 "선거 사범 수사를 하면서 돈 선거처럼 잘못된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느꼈다"면서 "선거판에서 돈을 주고받아도 괜찮다는 그릇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출산 휴가 하루 전 새벽까지 일하다 양수가 터져 병원에 실려간 일화로 유명하다.

이렇듯 여검사가 꾸준히 증가하고 활동 영역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검사이기 때문에 겪는 부담과 어려움도 있다.

여검사에게 고민을 물어보면 십중팔구가 검사 업무보다 육아와 가사를 꼽는다. 숱한 야근과 순환 보직으로 여검사는 집안에서 주말부부이자 빵점 엄마, 빵점 며느리인 경우가 많다. 지난해 5월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남자 검사는 집안일을 포기하고 일하는데 여자 검사는 애가 아프면 일을 포기하고 집에 간다"고 해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여검사의 '현실'을 그대로 언급한 것이라는 견해도 적잖았다.

권성희 검사처럼 멸사봉공하는 여검사 때문에 '여자라서 안돼'란 반응이 많이 줄었지만 여검사에게 육아와 가사는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다.

검사가 아닌 여자로 보는 시각도 여검사에게 애로 사항이다. 여검사 1호는 조배숙 민주통합당 의원과 임숙경 변호사로 1982년에 검찰에 입문했다. 대한민국 첫 여성 변호사(이태영)와 첫 여성 판사(황윤석)가 1954년에 배출됐으니 여검사는 여변호사와 여판사보다 무려 28년 뒤에야 탄생했다. 90년대 초까지 검사는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다는 통념이 있었다.

때문에 피의자가 여검사에게 "어린 것이 어디서 감히…"라고 큰소리를 치는 사례가 많았다. 서울동부지검 형사2부 이영주 부장검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피의자로 나이를 들먹이는 아줌마를 꼽았다. 또 억센 남성 피의자는 여검사에게 삿대질하는 예도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피의자는 물론이고 경찰까지 여검사 앞에서 "검사님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곤 했다.

여검사에 대한 편견은 조희진, 김진숙, 박계현, 이지원, 정옥자 등 선임 여검사가 10년 이상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점차 누그러졌다. 여검사 가운데 맏언니인 조희진(사시 29회, 사법연수원 19기) 검사는 2004년 천안지청장이 돼 첫 여성 부장검사로 기록됐다. 현재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파견된 조 검사는 차기 검사장 후보로 손꼽힌다.

김진숙(사시32회)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조사부장은 1999년 최초의 여성 특수부 검사로 이름을 알렸고, 박계현(사시 32회) 대검 대변인은 2011년 여검사로는 처음으로 '검찰총장의 입'인 대검찰청 대변인에 임명됐다. 이지원(사시 39회) 검사는 2004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속돼 서울지역 첫 특수 여검사가 됐고, 정옥자(사시 39회) 검사는 2002년 여검사로는 처음으로 공안 업무를 맡더니 2005년에는 조직폭력배를 잡는 강력부 여검사가 됐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을 듣기 싫어 술자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혈 여검사도 있다. 이들이 솔선수범하자 ▲일 처리가 깔끔하고 빠르다 ▲민원인 이야기를 잘 듣는다 ▲여검사는 원리원칙을 따른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졌다. 학연과 지연을 따지는 검찰 문화가 여검사 사이에선 보편화하지 않아 여검사가 급증하면서 연줄을 중요시하는 검찰 문화가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검찰 요직을 차지한 여검사는 그리 많지 않다. 조희진 검사 등 부장검사 이상급 여검사가 많아졌고, 김민아ㆍ김연실ㆍ권성희 검사 등 실력파 여검사가 부쩍 늘었다. 그러나 여검사 상당수는 형사부와 공판부 등 비인지 부서에서 일한다. 수사를 통해 범죄를 적발하는 특수부ㆍ강력부ㆍ공안부 등 인지 부서는 남성 검사의 몫처럼 보일 정도다. 겉으로 보이는 여검사의 위상은 몰라볼 정도로 커졌지만 '여성 최초'란 수식어가 화제일 정도로 여검사 위상은 아직 미약하다.

2005년 2월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여성 특수부장이 남자 검사 정강이를 걷어차는 걸 보고 싶다" 고 말했다. 그해 여검사가 139명으로 급격히 늘어난 데 대한 격려와 기대의 표현이었다.

2009년부터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신규 검사 성비를 살펴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이런 결과가 지속되면 2020년에는 여검사 수가 검사 전체 인원에서 절반 이상이 될 수 있다. 아직 내실을 다져야 할 때지만 외형적으론 여검사 전성시대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