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뢰혐의 무죄’ 박주원 전 안산시장 표적수사 논란

수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던 박주원 전 안산시장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판 ‘부러진 화살’논란이 뜨겁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조해현)는 지난 10일 건설업체 김모 회장에게서 사업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로 기소된 박 전 안산시장에 대한 파기 환송심에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김 회장에게는 박 전 시장에 대한 뇌물공여 부분을 유죄로 판단,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김 회장)이 증거로 제시한 업무용 수첩은 나중에 따로 작성된 것으로 수첩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인터넷에서 본 사람을 잠깐 지나치는 사이에 알아볼 수 있었다거나, 계속해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피고인(김 회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김 회장)이 돈을 줬다는 시간에 박 시장은 시청사에서 전자 결재문서에 여러 번 결재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문서추정 시간과 배치된다”며 “물리적인 시간과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돈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 전 시장은 시장으로 재직하던 2007년 4월 9일과 6월 4일 김 회장으로부터 안산시 복합단지개발사업과 관련해 사업자로 선정되게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1억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징역 6년에 추징금 1억3,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현장부재 주장(알리바이)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은 위법하다”며 1·2심 판결이 합리적 추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검찰, 수사에 무리수 뒀나

박 전 시장 측은 검찰 수사에 대해 처음부터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해 왔다. 하지만 수사 초기 언론과의 접촉에서 극도로 말을 아꼈다. 수사 내용과 의도에 대해 의심은 가지만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 전시장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죄가 있고 없고는 검찰이 판단할 것”이라면서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검찰 조사를 통해 오해가 풀릴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는 박 전 시장의 생각과는 반대로 진행됐다. 오해를 쉽게 풀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참다 못한 박 전 시장 측은 “검찰이 억지로 사건을 만들고 있다. 증거가 충분치 않고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정확한 알리바이가 있는데도 무조건 혐의를 덮어씌우고 있다. 검찰이 잘못된 수사에 대해 반드시 문제 삼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후 박 전 시장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구속된 이후 1년 3개월 넘게 차디찬 독방에 갇혀 혹독한 검찰 수사와 재판정에서의 수모를 견뎠다.

K검사 배후 추측 무게

당시 박 전 시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전 시장에 대해 보복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적지 않게 흘러나왔다. 검찰 고위간부인 K검사와의 악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악연은 지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 전 시장은 검찰수사관으로 참여정부 시절의 최대 게이트인 A씨 로비 내사 무마 의혹사건 수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때 K검사는 이 사건 연루 의혹으로 곤경에 빠졌고, 검찰수사관인 박 전 시장에게 청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시장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K검사의 청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K검사는 이 사건 때문에 인사 큰 불이익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일각에서 “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박 전 시장에 보복성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 때문이다.

검찰의 한 소식통도 “박 전 시장의 수사가 검찰의 표적수사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런 내용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들이 다수 드러나고 있다”며 “박 전 시장이 이를 문제 삼을 경우 검찰은 도덕성과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검찰이 박 전시장을 수사하는 과정에 수사 서류의 일부를 조작했다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실제 수사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수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한다거나 조사 내용을 교묘하게 왜곡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박 전 시장의 수사에 참여했던 검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박 전 시장에 대한 수사는 황당한 면이 없지 않다”비판이 나왔다고 한다.

박 전 시장은 “나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치적 표적수사임에 분명하다”며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지만 머지않아 검찰 내부에 불법수사가 만연하고 있음을 밝힐 수 있는 증거들을 국민 앞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시장은 그러나 그 내용에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수사개입’ L씨 숨은 실세

검찰 수사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연루돼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박 전 시장은 관련 첩보를 입수해 사실 관계를 따지고 있다고 했다. 국정원 인사는 원세훈 국정원장의 최근인 고위 간부 L씨. 그는 자신이 나온 특정고교 출신자들을 신임하고 중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는 ○○고교 출신인데, 공교롭게도 K검사도 ○○고교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시장의 사건을 총괄 지휘한 수원지검의 고위급 B검사 역시 L씨와 같은 동향에 ○○고교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각 기관에 있는 특정고교 출신들이 박 전 시장 수사에 깊게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친이계를 살리기 위해 박 전 시장을 내쳤다는 정치적인 분석도 있다. 한나라당내 친이계가 2010년 6ㆍ2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박 성향인 박 전 시장을 미리 손본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당시 정치권에선 이명박 정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요직에 있는 친박계 인사들을 줄줄이 손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기도 했다.

기소한 검사 최근 사임

박 전 시장이 무죄로 풀려나자 박 전 시장 사건을 맡은 한모 검사가 최근 사임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검사는 사임 이유에 대해 “부인이 몸이 안 좋은 데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원지검 안팎에서는 “사실상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라며 “그 수사에 대해 여러 가지로 부담이 많았던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전 검사는 2010년 ‘올해의 검사상’까지 받은 유능한 검찰인이다. 2009년 수원지검에서 국회의원 1명과 지방자치단체장 3명을 기소하면서 대검찰청이 수여하는 이 검사상을 받았다.

박 전 시장은 무죄 판결 후 “불순세력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시작된 나에 대한 검찰 수사는 잘못된 수사의 표본을 모두 총정리 해 놓은 것과 같다. 완전 검찰판 부러진 화실”이라며 “내가 경험한 검찰수사를 바탕으로 책을 쓰려고 계획 중이다. 책 제목은 ‘범죄수사, 이렇게 하면 안 된다’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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