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수의 돈까스가게' 주인 정광수씨는 과묵한 편이다. 얼핏 보기에도 과묵하고 실제 이야기를 해봐도 퍽 과묵하다. 두 세 번 쯤 질문하면 그제야 한마디 정도 반응한다. 대답이 길지도 않다. 단답형일 때가 많다. 대부분의 질문에는 씩 웃고 그만이다. 묘한 것은 과묵하지만 무뚝뚝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말수는 없어도 은근히 정겹다. 돈가스를 다 먹고 나서 문을 나서면서 "잘 먹었다"고 하거나 엄지손가락을 세우면서 '최고'라는 사인을 보내면 그는 말없이 얼굴 가득 '씩 웃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크게 웃지도 않는다. 그저 싱긋 웃는 정도다. "돈가스 가게이니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결국 내용은 돈가스에 관한 것이 됩니다. 음식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손님들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조리사이면서 한편으로는 가게 주인이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맛있는 돈가스를 손님들한테 대접하는 것입니다. 돈가스의 맛은 손님들이 평가하는 것이지요. 제가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가끔 제가 만든 돈가스를 먹고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그때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듣습니다."

거창하게 비유하자면, 판사는 판결문으로 이야기하고, 조리사는 음식으로 이야기한다, 는 정도가 되겠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음식으로 대화해야 한다. 음식을 만드는 이가 먹는 이, 즉 소비자와 '말'로 대화하면 반드시 '논쟁'이 생기고 결국은 '파탄'에 이르더라는 것이다. 점잖게 표현해서 이야기, 논쟁, 파탄이라고 하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음식을 가지고 손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싸움을 하면 한달 쯤 뒤에는 결국 문을 닫게 되더라"는 내용이다. 실제 그는 '정광수의돈까스가게'를 열기 전까지 이런 이야기, 논쟁, 파탄으로 4번이나 가게의 문을 닫아본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 '4번의 참담한 실패'가 오늘날 '정광수의돈까스가게' 밑거름이 되었다.

"손님들에게 음식을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주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만들고, 그걸 손님한테 내놓으면 그게 가장 좋은 대화의 방법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은 설명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먼저 알아보더라는 것이다. 그는 이제 음식은 소통이라는 뜻을 겨우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정광수씨가 처음 문을 열었던 곳은 서울 망원초등학교 앞이었다. 1층과 지하 1층으로 연결된 작은 공간. 1층의 평수는 3.3평, 지하는 3.4평이었다. 1층은 온전히 입구와 주방 공간이었고, 지하 1층에는 테이블이 있었다. 한 귀퉁이에 냉장고가 있고 이런 저런 집기류들이 있는 좁은 공간. 주방장, 주인, 홀 종업원, 계산대 일도 하는 1인 4역의 정광수씨는 주로 1층에서 일을 하고 손님들은 지하 1층에 있는 구조였다.

지하 1층 귀퉁이에는 작은 줄이 달려 있었다. 손님들이 필요한 일이 있으며 줄을 당기면 정광수씨가 내려왔다. 그러나 가게가 자리를 잡으면서 줄을 당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돈가스 식당에서 손님들이 원하는 것은 주로 칼이나 포크, 혹은 반찬 리필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셀프서비스였으니 정작 줄은 별로 사용되는 일이 없었다.

이사를 한 지금도 여전히 식당 군데군데 "포크와 나이프는 여기에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화살표 혹은 "물, 음료수는 냉장고에"라는 표지판이 달려 있다. 돈가스 외에는 대부분이 셀프 서비스다. 예전에는 지하 1층 한쪽 면에 "음료수를 주문하면 돈을 받고, 셀프서비스로는 얼마든지 마음대로 드시라"는 문구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셀프서비스 음료수는 무료, 무한 리필이다. 결국 1층과 지하 1층을 연결하는 줄이나 군데군데 써 붙인 문구들은 주인 정광수 와 손님들을 연결하는 '줄'이었다.

"저는 결국 음식점이란 것이 음식을 통하여 손님과 주인이 소통하는 곳이라고 믿습니다. 줄을 달아두었던 것도 결국 제가 손님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실제 나중에는 별로 줄을 당기는 분들이 없었지요. 하지만 줄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가끔 사용하는 손님들이 계시고 또 더러는 줄만 보고 안심을 하기도 하고, 저 역시 줄의 존재를 기억하면서 늘 손님들이 옆에 있다는 생각을 했고요."

검은 색연필로 소박하게 쓴 문구들 혹은 벽에 붙인 투박한 안내문구들, "돈가스는 남겨도 반찬을 남기면 주인 정광수의 마음에 상처가 깊이 남습니다" 같은 호소문(?)들. 그리고 예전 가게의 줄 등은 인터넷에 군데군데 포스팅되었다. 그리고 정광수씨의 생각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식당 자리로 좁은 골목길 안의 잘 보이지도 않는 공간을 고집하는 것은 사실은 나름 좋은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때문입니다. 넓고 번듯한 곳으로 가면 저도 편하고 오시기도 좋은데 문제는 임대료가 비싸다는 점입니다."

식당의 지출은 결국 '임대료+식재료비+인건비+기타비용' 등으로 구성된다. '정광수의 돈까스가게'는 이중 인건비와 기타비용은 이미 최소한으로 줄여서 고정시켰다. 임대료와 식재료비는 반비례한다. 임대료가 높으면 식재료비가 올라가고, 식재료비를 높이려면 임대료를 낮출 수밖에 없다. 그는 임대료를 최대한 줄이고 식재료비를 높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좋은 음식은 손님과 주인의 '좋은 소통'을 만들어 낸다. 지방에서 돈가스를 먹으러 서울 외진 망원동까지 오는 손님들에게 그는 좋은 음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한다. 물론 돈가스를 다 먹고 나서 행복한 표정으로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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