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공연 직후 팬들에 둘러싸여 사인회를 갖고 있는 로라 피지
재즈란 무엇인가? 몹시 단순하고도 쉬운 질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만큼의 질량을 갖는 의문이다. 확실한 것은,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으면 이후의 모든 담론이 사상누각으로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할 만큼 저것은 본질과 닿아 있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교과서적으로 말해 재즈는 횡적(리듬)으로는 '스윙', 종적(하모니)으로는 '블루 노트'라는 두 가지 음악적 얼개로 짜인 음 현상이다. 역사적 견지에서 본다면 그것은 아메리카란 낯선 땅에 졸지에 노예 신세로 끌려온 흑인들이 그들을 에워싸기 시작한, 즉 유럽의 음악을 접하고 나름의 소화---이해 또는 오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성된 제 3의 음현상이다. 엄청나게 폭력적인 문화 충돌의 결과물로서 재즈는의 이제 힙합과 같은 기층 흑인 문화에서 고급 사교 클럽 같은 상위 문화권까지 두루 공유하는 문화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다시, 재즈란 무엇인가? 재즈가 오ㆍ남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버전업 된 질문의 필요성을 느낀다. 미상불 갖다 붙이면 재즈가 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귀에 걸었다고 다 귀걸이인가? 1996년 졸저 <재즈 재즈>(황금가지 발행)에서 당시 광고 배경 음악으로 봇물처럼 나오던 재즈를 말했을 때, 재즈는 우리 문화 스펙트럼에서 하나의 새로운 상징이었다. 그리고 이제, 여러 차원의 자의적 경로를 통해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재즈들'을 본다.

최근 두 차례 잇달아 가졌던 로라 피지의 내한 무대는 그렇게 본다면 연령을 초월한 국내팬들의 호응 덕에 독특한 풍경을 일궈 냈다. 2월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첫 공연을 끝내고 강동아트센터에서 치렀던 무대에서 그녀는 재즈란 곧 숨쉬기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자기 나이에 가장 어울리는 호흡법'과의 동의어가 재즈라는 사실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절로 옛 생각이 났다.

1997년 재즈 가수 헬렌 메릴이 공연을 위해 내한했을 때, 이 역사적 인물을 지근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거의 다짜고짜 카메라 기자와 같이 호텔방에 가서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절로 났다. 당시 거장 트럼페터 아트 파머와 함께 내한 공연을 펼쳤던 메릴처럼, 피지 또한 연륜이 쌓여 어느덧 망육순(57세)이다. 그러나 나이를 잊었던지 혹은 나이를 잠시 속였던지, 무대에서의 그녀는 어느덧 중년의 여인이라 해도 좋을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로라 피지 공연 (루이까또즈 제공)
그녀는 어느덧 재즈가 돼 있었다. 노련함이라는 말로만으로는 못다 표현할 어떤 경지에서 노닐고 있었다. 보컬이라는 장르가 원래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쇼 비즈니스와 긴밀하게 연관을 맺으며 성장하긴 했지만 그녀가 최근 두 차례 가졌던 내한 무대의 안팎에서 보여준 것은 재즈가 본연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며 동시에 대중적인 양식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물론 본격 재즈 가수로서 데뷔 20주년을 맞기까지 축적한 연륜이 가장 큰 공신이지만.

스윙 리듬에 맞춰 느릿느릿 춤추듯 등장하면서 그녀는 묘한 아우라로 다가왔다. 뮤트 트롬본은 쿨 재즈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맛으로 피지에게 힘을 불어 넣고 있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영화'쉘부르의 우산'의 테마 'I Will Wait For You'를 짙은 허스키로 들려주며 그녀는 한국과의 재회를 기뻐하는 듯 했다.

바로 전날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졌던 공연보다 더 '재즈적으로' 완벽한 무대를 그녀는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였겠으나 한국적 관행과는 조금 비껴날 수도 있었을 문제였다. 바로 포 비트(four bea)t 박수다. 한국인들의 성정에는 첫째 박자에 박수 치는 편이 훨씬 편안하지만 서양 음악의 관점에는 둘 째와 네 째 비트, 즉 액센트가 들어가는 박자에 박수를 쳐야 곡의 진행과 맞아떨어진다. 최근의 한국 관객들, 특히 젊은 층에게 저 같은 박수 치기는 상당히 자연스러워졌지만 나이든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박수 치기 방식이다.

그녀는 "편안한 분위기와 완벽한 호응이 어제 한 세종문화회관보다 낫다"더니, 박수 치는 법을 시범으로 보였다. 객석은 그 요구에 빠르게 순응, 어느덧 2, 4 비트 박수에 능숙해졌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의 기준으로 일체가 돼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재즈의 아우라가 서울의 밤하늘을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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