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맞춰봐!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내 이름은 공천심사, 잣대, 가격 등과 함께 쓰인다. 쭉 늘어났다 금세 줄어드는 특성 때문인가 봐.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다면 머리를 유심히 살펴봐. 내가 보일지도 모르니까, 난 누굴까?

정답은 고무줄. 고무줄을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굴까? 영국 고무 산업을 일으킨 토머스 핸콕(1786~1865년)이 1823년에 고무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기록만 놓고 보면 스티븐 페리가 1845년 3월 17일 영국에서 특허를 따냈다. 페리는 핸콕이 운영했던 공장에서 일했다.

고무는 콜럼버스 제2차 아메리카 원정(1493~1496년)을 통해 서양에 알려졌다. 콜럼버스 일행은 아이티 섬에 상륙해 고무로 만든 공을 처음 봤다. 원주민은 탄력성이 큰 공을 가지고 놀았다.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오래 전부터 원주민이 고무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해 공이나 신발을 만들었다.

고무가 고무줄로 변신하자 일상생활까지 바꾸었다. 예전엔 연필 지우개로나 쓰였지만 고무줄은 의복과 포장 등에 널리 사용됐다. 때마침 미국 발명가이자 고무 산업 개척자인 찰스 굿이어(1800~1860년)가 유황을 섞어 탄력이 뛰어난 고무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고무줄 전성시대에 고무는 자전거와 자동차 바퀴에도 사용됐다.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고무는 세계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영국인 헨리 위컴은 1876년 브라질에서 파라 고무나무 종자 수천개를 몰래 밀반출해 영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보냈다. 서양인이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고 열대에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농업경영 플랜테이션(plantation)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고무 농장이 엄청난 규모로 조성되자 중국 남부 노동자가 대거 이주해 부족한 노동력을 채웠다. 합성고무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동안에 발명됐지만 고무줄만큼은 여전히 천연고무를 통해 생산된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각국에 화교 세력이 존재하는 이유가 고무줄에 있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