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家 유산분쟁"이맹희씨 독자적인 일" CJ 발뺌불구 배후 지목대한통운 인수 출혈 미디어분야 투자 등 급전 필요했나?'장손 명예회복' 분석도

이건희 회장
"이번 소송은 '작은 전투'일 수 있죠. 어쩌면 '큰 전쟁'을 염두에 둔 시그널 처럼 보입니다."

최근 삼성가의 유산 분쟁을 둘러싼 소송을 언급하며 CJ측과 가까운 인사가 건넨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삼성과 CJ 간 상속 소송은 점차 치열해질 전망이다. 실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친형인 이맹희씨에 이어 누나인 이숙희씨가 가세해 9,000억원대의 상속 소송을 제기한데다 다른 형제자매들의 추가 참여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맹희씨가 제기한 소송에 CJ가 개입한 정황이 확인되면서 아들인 이재현 CJ회장의 역할 내지 노림수에 따라 삼성가의 상속전도 전혀 다르게 전개될 전망이다.

이맹희씨의 소송(2월 12일)에 대해 CJ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소송 다음날 핫이슈가 된 상황에서도 CJ 측은 "소송 사실을 몰랐다. 그룹과는 상관 없는 개인적인 일"이라며 "소송 취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재현 회장
그러나 소 취하는 이뤄지지 않았고 CJ가 소송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되면서 양측의 소송전은 더 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삼성은 이맹희씨 소송의 배후에 이재현 CJ 회장이 관련됐다고 규정한다. 무엇보다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는 81세 고령의 이맹희씨가 차명 재산 관련 소송을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CJ의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CJ는 이맹희씨의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와 함께 지난해 6월부터 이맹희씨와 연락하며 소 제기와 승소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CJ 측은 "소 제기는 이맹희씨가 독자적으로 한 것이고 이나 CJ는 소송에 직접적으로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맹희씨의 소 제기를 전후한 여러 정황은 CJ의 개입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맹희씨의 소송에 앞서 CJ 법무담당 직원이 화우의 변호사와 함께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뒤 다음날 귀국해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장을 제출한 것은 CJ의 소송 개입 여지를 뒷받침한다.

소송 인지대 22억5,000만원도 CJ측이 대신 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이맹희씨의 지인은 "이맹희씨가 140억원대의 주택에 거주하려면 최소 월 1,000만원 이상이 들텐데 재산도 없는 그가 그런 큰 돈을 받을 곳은 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소송에는 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삼성은 지난해 6월 상속 재산 분할 관련 소명 문서를 이명희씨에게 보내면서 주소지가 파악되지 않아 CJ 재무팀장에게 보냈다. 문서는 CJ 법무팀의 법률 검토를 거쳐 에게 보고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맹희씨가 가족관계 증명을 위해 소장에 첨부한 '제적 등본'의 발급 신청자가 이란 사실은 CJ그룹이 사실상 소송을 주도한 것과 함께 이 회장도 소송 사실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을 추정케 한다.

지난달 24일 이른바 ' 미행 사건'도 같은 맥락이라고 삼성은 주장한다. CJ 측이 미행 사실을 알면서 지속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특정 언론에 흘려 여론몰이를 한 데는 어떤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즉 미행 사건이 전적으로 삼성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삼성을 압박하고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CJ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삼성과 CJ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맹희씨의 소송과 CJ의 개입 논란에는 여전한 의문이 남는다. 이맹희씨나 CJ가 7,100억원대의 상속재산 때문에 삼성이라는 초일류 기업과 다투는가 하는 점이다.

이맹희씨의 경우 개인적으로 거금일 수 있으나 이재현 CJ회장에게 미칠 수 있는 삼성의 압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CJ도 재계 20위권에, 연매출 20조에 가까운 대기업이 7,000억원대 재산 문제로 삼성과 척을 진다는 것은 웬지 격이 맞지 않다.

때문에 이맹희ㆍCJ와 삼성의 상속 분쟁에는 CJ의 노림수 내지 계산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우선 CJ가 급전이 필요해 부친을 앞세워 소송을 제기했다는 설이다. 지난해 대한통운을 인수하는데 출혈이 큰데다 계열사들이 실적을 못내 자금 압박을 받은 CJ가 부득이 부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CJ가 종편 진출을 포함한 미디어분야 투자를 위해 약 8,000억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거절당했고, 이런 얘기를 전해들은 이맹희씨가 격노해 소를 제기했다고도 한다.

CJ가 또 다른 차명 재산을 확보하기 위해 소송을 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상성생명 및 삼성전자 차명 주식 반환 소송 외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차명주식, 또는 선대회장의 (비)자금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이 삼성가 장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도 있다. 즉 과 자녀들 중심으로 된 삼성의 지배구조를 뒤바꿔놓아 장손인 이재현 CJ 회장이 중심축이 되는 삼성체제로 재편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맹희씨 소송 직후 이숙희씨가 추가 소송을 제기한데다 다른 형제자매들까지 가세할 경우 삼성의 지배구조가 바뀔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일부 전문가는 이맹희ㆍ이숙희씨가 소송에서 이기고,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가세하면 삼성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삼성 측은 "선대회장이 도쿄에서 암치료를 받던 87년 초 가족들을 불러 놓고 삼성의 주식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논의했다"면서 "25년 전 다 정리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소송에 대해 이맹희씨 측과 삼성은 서로 우세를 점친다. 소송 결과에 따라 후폭풍의 양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상속 소송 이후 삼성과 CJ는 경쟁의 각이 더 예리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현준 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