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기상 캐스터가 TV의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여쁜 얼굴에 날씬한 몸매, 매력적인 목소리로 날씨를 예보하면 ‘비가 와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는 시청자가 꽤 많을 정도다. 여성 아나운서에 이어 기상캐스터도 며느릿감으로 주가를 높인 지 오래다. 기상캐스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다 보니 연예인으로 변신하는 경우도 많다.

기상캐스터=통보관

오는 23일은 기상의 날이다. 기상예보는 1965년부터 시작됐는데, 오랫동안남성 전유물이었다. KBS 등은 국립중앙관상대(현 기상청)에 직통 전화를 놓고 관상대 직원을 통해 날씨를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제1호 기상캐스터는 김동완(77)씨다. 관상대 직원이었던 김씨가 방송에서 날씨를 전하면서 통보관이란 직함이 생겼다. 김동완 전 통보관은 독특한 날씨 예보로 인기를 끌었다. 비가 오면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온이 떨어지면 “미니스커트를 입기에는 추운 날씨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통보관은 1970년대 동양방송(TBC)에서 일상 생활과 접목한 일기 예보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 TBC 이병철 회장은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TBC에서 오랫동안 일해달라”고 부탁했고, KBS 사장은 그를 영입하고자 거액을 제시했지만 영입에 실패했다고 한다.

언론통폐합(80년)으로 TBC가 문을 닫자 김 전 통보관은 MBC를 대표하는 기상 캐스터가 됐다. 40~70대 시청자는 일기예보하면 김동완을 떠올리고, 경쾌한 피아노 연주곡 ‘The happy song’을 일기예보곡으로 부른다. 컴퓨터그래픽이 없던 시절, 그는 기상도를 직접 그리며 날씨를 설명했고, 기상캐스터 세계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기상전문기자 탄생

MBC에 김동완이 있었다면 KBS엔 조석준(58) 기자가 있었다. 조석준 기상캐스터는 1981년 기상전문기자 제1호로 KBS에 입사했다. 조 기상캐스터는 2001년까지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날씨 해설로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국기상협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2월 제9대 기상청장으로 취임했다. 40년 가까이 날씨와 관련된 일만 하니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 청장은 “타이거 우즈가 골프채를 내려놓을 것 같으냐”고 되물었다.

조석준(KBS)과 김동완(MBC)과 경쟁한 SBS 기상캐스터는 이찬휘 기상전문기자였다. 남성 특유의 저음으로 시청자 귀를 사로잡았던 이찬휘 기자는 전공 분야를 날씨에서 의학으로 바꿨다. 과학기자협회장을 역임한 이찬휘 전문기자는 SBS 생활경제에서 ‘이찬휘의 건강 리포트’를 진행하고 있다. MBC 기상전문기자로는 지윤태, 조이문, 김승환 등이 있었다.

1980년대 입사한 기상전문기자들은 현재 소속사 보도국 간부로 성장했다. MBC 지윤태 기상캐스터는 문화과학부 부장으로 일하고 있고, 재난방송주관사인 KBS에선 이기문 기자가 과학재난부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상전문기자 시대를 이끌었던 조석준, 이찬휘, 지윤태 기상캐스터는 공군 기상장교 출신이란 공통점도 있다.

여성 기상캐스터 시대

1990년까지 기상캐스터는 남성 전유물이었다. 금녀(禁女)의 벽을 깨트린 여성은 이익선(44). 여성 기상캐스터 1호인 이 기상캐스터는 1991년 KBS에 입사해 깔끔한 외모와 조리 있는 해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기상캐스터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MBC와 SBS도 서둘러 여성 기상캐스터를 기용했다. MBC는 정은임 아나운서, SBS는 박순심 아나운서에게 일기예보를 맡겨 여성 기상캐스터 시대가 열렸다.

여성 기상캐스터들은 봄에는 화사한 옷을 입고, 비가 오면 노란 비옷을 입어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비를 처음 입은 이는 이익선 기상캐스터. 그는 2010년 KBS 여유만만에 출연해 “우비를 입고 방송했던 날, 회사에서 잘리는 줄 알았다. 스튜디오에 비가 오지 않는 걸 다 아는데 오버가 아니냐는 꾸중을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여성 기상캐스터 시대에 청일점으로 손꼽힌 이는 이재승(34) jTBC 기상담당 기자다. 2006년 기상캐스터로 MBC에 입사한 그는 지난해까지 지상파 방송 3사에서 유일한 남성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다.

케이블 TV YTN웨더 채널도 지난해 남성 기상캐스터를 배출했다. 김형민(27) 기상캐스터는 YTN웨더에 있는 기상캐스터 12명 가운데 유일한 남성이다.

연예계 진출 러시

날씨 예보를 통해 인기를 끈 기상캐스터는 연예인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여성 기상캐스터 1호인 이익선은 지적인 인상을 앞세워 KBS 2TV 연예가중계와 EBS 시네마 천국 등에서 진행자로 변신했다. 2002년에는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로 출연한 적도 있다. MBC 뉴스데스크에서 날씨를 맡았던 김혜은(39) 기상캐스터는 2004년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배우로 전향한 김혜은은 2006년 EBS 문화정보프로그램 ‘문화예술 36.5’를 진행해 방송진행자로도 활동했다.

김혜은의 MBC 후배 안혜경(33), 박은지(29)도 연예계에 진출했다. 안혜경은 2006년부터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 KBS 김혜선 기상캐스터와 함께 쌍두마차로 불렸던 박은지는 지난달 MBC에 사표를 제출했고, 22일 방송될 MBN ‘끝장대결! 창과 방패’ 진행자로 변신한다.

기상캐스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다 보니 노출 논란도 끊이질 않는다. 얼짱으로 소문난 박은지는 몸매가 드러나는 패션으로 인터넷 연예 매체에 화제를 몰고 다녔다. 야하다는 느낌이 드는 옷도 있지만 실제보다 부풀려진 소문도 꽤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엔 청순한 인상을 앞세운 기상캐스터가 눈에 띈다.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하는 정혜경 기상캐스터와 KBS 장주희, 유승연 기상캐스터는 긴 생머리와 청순한 외모가 돋보인다.

방송 3사 뉴스를 대표하는 기상캐스터는 김혜선(KBS), 정혜경(MBC), 오하영(SBS)이 손꼽힌다.



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