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처음 맞닥뜨린 것은 1990년대 전반 KJC사무실에서였을 것이다. Korea Jazz Club 혹은 한국재즈클럽을 줄여서 그렇게들 불렀다. 일본의 JJC를 본뜬 순수 아마 단체였다. 실은 재즈를 매개로 한 친목 단체이자 그들을 위해 무대도 만들던 모임이었다.

한국일보가 경복궁 건너편 중학동에 있을 때, 마침 KJC는 회사에서 길 하나만 되는 건너면 사간동에 있었다. 프랑스문화원 바로 옆이다.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그 곳을 알게 된 것은 입사 몇 년 뒤에나 이뤄졌다. 재즈라는 것이 마이너, 아니 마니아 장르였던 당시 재즈를 통상적 취재 대상으로 간주하는 미디어는 없었으니까.

그 때 사쯔마와리(察廻)로 형사계에서 살다시피 하던 사회부에서 문화부로 옮긴 지 얼마 안 돼,, 나는 우연한 기회에 회사 바로 옆에 KJC라는 아주 작은 사무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바람 쐴 겸 찾아 가 보았다. 권명문, 한경애씨 등 두 분이 그 곳을 지키며 재즈 뮤지션들의 소식을 전해주고, 가끔은 무대도 만들고 있었다. 재즈란 것이 훗날 '기획자들'이 눈독 들일 물건이 되리라고 꿈도 못 꾸던 때였다.

앳된 딸(지금은 전위적 무대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강화정씨)을 데리고 나타난 그는 다음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동료 뮤지션의 근황 같은 것을 듣고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 모습은 이를테면 은둔자의 그것에 가까웠다. 시쳇말로 존재감이 희박했다. 병아리 기자였던 내게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등 그 곳의 벽을 장식하고 있던 흑백 사진의 주인공 대부분은 낯설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얼굴을 빼고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그것을 어떻게 하면 그럴싸하게 포장해낼 수 있을까 --- '소통' 시킬 수 있을까 --- 에 대한 생각으로 차 있었던 나에게 재즈는 분명 새 지평이었다. 그 때 , 강태환씨를 만나게 됐으니 인연의 출발치고는 제법 필연적이었던가도 싶다. 재즈에 대한 나름의 정보와 사유가 축적돼 가면서, 그는 또 다른 존재 양식으로 유형화되는 쪽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니. .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불세출의 예인들을 제법 많이 만나 집중 취재도 해 봤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를 왜 비껴갔을까? 연극 연출가 오태석, 화가 송수남, 지휘자 금난새, 영화 감독 이장호 씨부터 대중 가수 한대수까지 30명의 노장들을 취재해 한국일보에 '다시 길을 떠나다'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시리즈 완결 직후 동명의 책으로도 묶어 냈던, 한 면 짜리 인터뷰에서 그는 빠져 있다.

모두들 자기 분야에서 당당한 일가를 이룬 자들이다. 여기서 완성이란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기 완결 구조 혹은 비가역적 구조를 뜻한다. 그들과의 대담은 그래서 시종 물 흐르듯 했다. 현재의 도달점은 명확했고, 그에 닿기까지 몇 번의 결절점(이를 두고 '시기 구분'이라 하나?)이 본인의 입에서 명료하게 발화돼 나왔다. 나는 요령 있게 터뜨려 주면 되었다.

사실 강씨를 포함시키려 마음 먹으면 얼마든 넣을 수 있었지만, 완성형을 거부하는 그의 예술이 과연 두부 자르듯 서술될 수 있을까 하는 예단에서 그는 일단 제외됐던 것이다. 이 순간에도 그는 진전한다. 새로운 발견에 기뻐할지도 모른다. 그에게로 가는 길에 보다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보다 높은 경지를 향해 내면에서 서서히 발효중인 어떤 것이 있음을 나중에 확인하게 됐다.

나는 새해 인사에 기대어 그를 한번 떠보았다. 이제 강태환이라는 '현상'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그 과정을 건너 뛰었을 경우, 강태환이라는 방대한 텍스트는 우리 음악사에서 하나의 예외적이며 우연적인 사건으로서만 남지 않을까 하는 기우이기도 했다.

궁즉통이라던가, 사전에 협의하거나 내색한 것도 아닌데 그 또한 자기 정리에의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곧 알게 됐다. 어떤 코드가 작동되고 있었던 것일까.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만남이 그렇게 해서 이뤄졌다. 단순한 인터뷰가 아닌, 하나의 큰 텍스트를 위한 만남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시켰다. 문제 중심으로 하기로 하고 시작된 집중적 대담이라는 점을 전제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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