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1 총선에서 비례대표 공천은 각 당의 '정체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다. 그 중 비례1번이 전하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1번에 대표적 여성 과학자인 민병주(53)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전 회장을 선정했다. 당 공천위가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을 대변할 수 있고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인물, 그리고 이공계 출신과 여성 인재를 우대하겠다고 밝힌 공천 기준에 부합한다는 평가에서다.

비례1번으로 사실상 예비의원이 된 민 전 회장은 향후 의정 활동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 "과학으로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소임을 다하고 싶다"는 소박한 포부를 밝혔다.

"저도 놀랐어요"

"인터넷을 보고 알았습니다. 사전에 어떤 연락도 받질 못했어요."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8대 회장을 역임한 민병주 대표.
민 전 원장은 자신이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에 선정된 것을 "의외"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당은 물론, 공천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을 법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도 특별한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당 공추위에 따르면 민 전 원장은 과학 분야, 특히 원자력 분야에 진출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로, 원자력의 이용및 위기관리를 연구해온 재난예방 전문가로 높은 평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홍원 공추위원장은 그를 1번으로 배치한 배경에 대해 "미래 성장 동력인 원자력 분야에서 20여년간 정책 개발에 힘써왔고, 후배 여성 과학인들의 귀감이 된 점을 높이 샀다"고 설명했다.

민 전 원장은 막상 여당의 비례대표1번이 되고 보니 '부담'이 상당하다고 했다. "비례대표 1번이라고 하니 부담이 많이 됩니다. 공천의 상징성도 있고, 기대도 클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그를 아는 과학계 지인들은 '자격 있는' 인물이라는 평과 함께 의정활동에서도 주목할만한 업적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민 전 원장은 과학계에서 드물게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원자력 분야의 권위자다. 일본 규슈대학 최초 여성 핵물리학 박사, 한국원자력연구원 최초 여성박사, 최초의 여성 원자력연수원장ㆍ 연구지원관리단장, 원자력안전전문위원 등등.

그가 이렇듯 원자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남들이 꺼리는 희소 분야에 열정을 갖고 뛰어들고 남녀차별이라는 벽을 실력과 의지로 극복해간 결과다.

그는 군의관인 아버지와 숙명여전을 나온 어머니 사이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수학에 소질을 보였다. 미술에도 재능을 보이고 관심이 많아 미술대학을 갈까 생각했으나 여성도 전문직을 갖는 것이 좋다는 어머니의 권유로 이과대(이화여대)에 진학했다. 물리학과를 선택한 것은 이과 수업 중 물리학 실험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82년 이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고체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일본 규슈대학에 진학해 이 대학 여성 최초로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연구기간에 새로운 핵종(83, 85Nb, Mo)을 발견했으며, 처음으로 89Nb에 대한 핵의 구조를 밝혀내는 성과를 내는 등 역량을 인정받아 일본원자력연구소,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특별연구원으로 일했다.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원 여성 해외유치과학자 1호로 원자력연구원과 인연을 맺은 그는 원자력안전전문위원 등 원자력 분야에서 위원으로, 또한 원자로, 중수로 핵연료 개발 등 연구과제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중수로형 원자력발전소(경북 월성 소재)에 공급할 핵연료 개발에 기여했고, 국내 중수로 안전해석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또 여성원자력전문인협회(WIN-korea)를 설립해 부회장으로 활동했으며, 2005년에는 원자력연수원장으로 임명돼 한국원자력연구원 개원 47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관리자에 올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아시아여성원자력전문기구(WIN-ASIA) 발족에도 기여한 그는 2005년 여성 원자력 전문인력 양성에 기여한 공로로 세계원자력협회(WNA)가 주는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여성과학자 모임인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8대(2010~2011) 회장을 역임한 그는 과학기술부 산하 원자력안전전문위 전문위원, 한국여성과학기술총연합회 이사,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 연구위원,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원자력안전전문위원 등을 맡으며 정부의 원자력 정책과 민간의 원자력 연구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그는 여성 과학자인 자신을 비례1번에 선정한 것과 관련, "우리나라의 미래를 과학에 기반하고, 이공계 출신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면서 "과학으로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직 여성이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보육, 탄력적인 근무 등 '복지' 문제가 중요한 만큼 이 부분에 의정활동의 비중을 두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근혜 비대위원장과의 인연을 물으니 2000년 말 한국엔지니어클럽 초청 강연 때 먼 발치서 본 게 처음 마주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었던 정책 세미나 '과학기술의 융합과 산업화를 통한 창의국가'에 토론자로 직접 참석한 게 유일한 인연(?)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세미나에서 '과학기술의 공공성', 즉 과학기술의 사회적 기여를 통한 복지 증대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원자력은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바가 크고 이것이 개발도상국에 장점으로 홍보되고 있다"며 "안전에 중점을 두면서 당분간 병행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공추위는 공천 과정에 일관성을 유지한 철학은 국민에게 꿈을 심어주고 나눔과 배려, 미래에 대한 도전과 모험, 즉 변화하는 사회 패러다임을 반영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민 전 원장이 그러한 가치를 어떻게 구현하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어떻게 대변해 나갈 지 그의 의정활동이 기대된다. 박종진 기자

●민병주 전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은

-1959년 출생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ㆍ동 대학원 석사, 일본 규슈대 박사

-원자력연구원 연수원장, 원자력인력개발센터장, 원자력교육센터장

-제8대 대한민국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2010.1.1~2011.12.31)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녹색자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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