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정현 의원이 지난 3월 7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천 탈락에 항의하는 내용의 피켓을 든 지지자들과 함께 당 지도부에 공정한 재심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여권 출신들
'낙동강벨트'서 접전… 부산 선두권
경주 김석기도 주목… 수도권선 상대적 열세

● 야권 출신들
DJ맨들 호남 대거출마… 광주에 ·조영택
전남선 ·최인기… 민주당 "도와주면 출당" 엄포

4ㆍ11 총선이 29일부터 본격적인 선거기간에 들어간 가운데 여야 후보들은 전국 각지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여느 때와 달리 제3당이 힘을 쓰지 못하는 점이 주요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이에 따라 지지층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으로 자연스레 나뉘면서 양당이 치열한 접전 구도를 보이고 있다.

이전 15, 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과 국민회의에 맞서 자민련이 제3당으로서 원내교섭단체를 만들 정도의 선전을 했고, 17대와 18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또는 열린우리당과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유선진당과 민주노동당 등이 제3세력으로의 위치를 구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유선진당이 텃밭인 충청권에서도 그리 지지세를 높이지 못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통합진보당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를 이뤄내 사실상 독자적인 후보 배출은 호남지역을 제외하곤 거의 없는 상황이다. 총선전이 여야의 1대1 구도로 흐르고 있는 이유다.

박형준
하지만 이 같은 치열한 여야의 맞대결 구도 속에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여야의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 의원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지역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태세다. 이들 유력 무소속 후보들은 대개 현 의원이나 전직 의원, 또는 정ㆍ관계 고위직을 지낸 경력 등이 있어 지역에서는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다. 선두 다툼을 벌이는 양당 후보들에게 적잖은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단순히 변수에 그치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수도권을 비롯해 부산과 대구 등 새누리당 텃밭인 영남권에서 출마한 무소속 후보와 광주 등 민주당 텃밭인 호남지역에서 출마한 무소속 후보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인사들이 많다. 또 이들을 보는 지역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당선되면 영남은 새누리당, 호남은 민주당으로 입당할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점에서 의외의 이변이 연출되는 곳이 적잖이 나올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더구나 여야 싸움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기성 정치 대결 양상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무소속으로 대거 쏠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립 지대 격인 제3정당이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무소속이 그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다. 더구나 무소속 후보에게 쏠리는 유권자들의 동정심도 나름대로 강점이 될 수 있다.

4년 전인 18대 총선에서는 무려 25명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바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 이상의 규모로 무소속 후보들이 맹위를 떨칠지 정가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단 이번 총선에 무소속으로 나선 후보는 전체 후보 927명 중 257명(27.7%)으로 2008년 18대 총선(127명)에 비해 2배가 넘는다. 최소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는 곳에서는 이들 무소속 후보가 가져가는 표 수가 당락을 가르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여야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영남 무소속 '조용한 반란'

이윤성
먼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이른바 '낙동강 벨트'를 두고 접전을 벌이는 부산ㆍ경남(PK) 지역에 조용한 반란이 시작되는 조짐이다. 당초 여당은 연고를 앞세운 텃밭지역이란 정서에 기대 압승을 자신했고, 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향수를 등에 업고 '문ㆍ성ㆍ길'(문재인 문성근 김정길)트리오를 전면에 내세워 PK 약진을 꿈꿨다.

하지만 경선방식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부산 수영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필두로 부산 한 복판에서도 판세가 출렁이고 있다. 현재 박 전 수석은 유재중 새누리당, 민주당 허진호 후보 등과 경합 중인데 현지 분위기로는 유 후보와 박 후보의 양강 구도가 전개되면서 허 후보가 뒤쫓는 형국이라고 한다.

부산 진구갑에서도 무소속 정근 후보가 현역 의원인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과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의원을 지낸 민주당 김영춘 후보와 함께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앞선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전현직 의원인 두 후보에 맞서 무소속의 반란이 실현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대구에선 공천 탈락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현역 의원들이 있다. 배영식(중ㆍ남구) 이명규(북구갑) 의원은 같은 지역구의 다른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하며 새누리당 후보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또 구자춘 전 의원의 아들 구성재 무소속 후보(대구 달성군) 등 8개 지역 무소속 후보간에 '무소속 희망연대'를 결성하며 세몰이를 벌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박영준(중ㆍ남구)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선전 여부도 주목된다.

경남과 경북 등 지역 선거구로 내려가면 무소속 후보들의 들썩임이 더욱 크다. 대부분 이들 지역은 소도시인데다 유권자 수도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적기 때문에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발품을 잘 활용하면 '바람 선거'를 이겨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김성식
경북에서는 정ㆍ관계 고위직이나 대기업 경영인 등 유명 인사들의 무소속 출마가 눈에 띈다. 포항 남구울릉군에는 정장식 전 포항시장, 경주에서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영천에서는 최기문 전 경찰청장, 문경ㆍ예천에서는 신현국 전 문경시장, 고령ㆍ성주ㆍ칠곡에서는 석호익 전 KT부회장이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일부는 출마의사 거둬

민정당과 민주당을 오갔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영양ㆍ영덕ㆍ봉화ㆍ울진에서 나선다. 이들 외에 공천에서 탈락한 김성조 성윤환 의원과 정종복 전 의원도 당초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뒤 후보 등록까지 했지만 친정 격인 새누리당 지도부의 만류에다 지역 여론을 의식해 사퇴했다.

경남의 경우 한나라당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과 관련해 당을 떠난 진주을 최구식 의원의 무소속 출마에 대한 선전 여부가 관심이며, 의령ㆍ함안 합천의 강삼재 전 의원, 산청ㆍ함양ㆍ거창의 강석진 전 거창군수와 김태호 의원의 동생 김창호 전 국회의장 공보수석 등이 무소속으로 나서 선두권을 위협하고 있다.

호남에서는 구 민주당 출신의 전직 의원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대부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인 연(緣)을 맺고 있어 DJ 향수를 등에 업고 돌풍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정태근
광주는 동구에서 모바일 경선과정에서 투신 자살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섰고, 여기에 양형일 전 의원이 같은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냈다. 서구갑에서는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조영택 의원이 나섰고 새누리당 출신인 정용화 전 청와대 비서관도 무소속으로 뛰어들었다. 북구을에서는 김재균 의원이 무소속으로 뛰고 있다.

DJ 향수가 가장 진하게 배어있는 전남은 더욱 무소속 후보들의 도전이 거세다. 여수갑에는 김충조 의원, 나주ㆍ화순은 최인기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고, 무안ㆍ신안에는 전 민주당 대표, 고흥ㆍ보성은 신중식 전 의원, 장흥ㆍ강진ㆍ영암은 유인학 전 의원 등이 고토회복을 노리고 있다.

전북에서도 전주완산갑 신건 의원, 익산을 조배숙 의원, 정읍 유성엽 의원 등이 민주당 문을 나서 무소속으로 선거전에 나섰다. 또 전주덕진의 김태식 전 의원, 익산의 최재승 전 의원, 군산의 신영대 전 청와대 행정관 등의 무소속 도전도 지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수도권서도 이변 나올까

새누리당은 인천 남동갑 의원과 강원 춘천의 허천 의원, 서울 중랑갑 유정현 의원, 서울 중랑을 진성호 의원, 경기 수원을 정미경 의원의 무소속 출마가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이들이 자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것도 문제지만, 여야간 접전을 벌이는 수도권에서 여당 표를 잠식해 야당 후보를 도와주는 결과가 나올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 3월 5일 민주통합당 조영택(왼쪽부터) 최인기 강봉균 의원이 5일 국회에서 공천 탈락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에 둘러싸여 걸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당 지도부는 이들과 친분이 깊은 당내 인사들을 보내 불출마로 돌아설 것을 설득하고 있지만 워낙 뜻이 완강해 아직 소득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이들 수도권에 나선 현역 의원 출신 무소속 후보들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소식은 영ㆍ호남 등 지방에 비해 아직 잘 들리지 않는 편이다. 아무래도 여야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무소속 입지가 좁은 탓이다. 그러나 유정현 정미경 의원 등은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또 탈당한 (서울 관악갑) (서울 성북갑) 의원의 수성 여부도 정가의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서울 마포을) 의원의 득표력에도 시선이 쏠린다.

민주당도 야권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여론조사 조작 사건과 관련해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의원이 다시 금배지를 달 수 있을지 여부가 가장 관심거리다. 또 공천에서 탈락한 이상수(서울 중랑갑) 의원의 재기 여부도 주목된다. 민주당도 새누리당과 같이 자당 소속이었던 인사들의 무소속 출마가 선거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27일 박선숙 사무총장 명의로 시도당에 공문을 내려 보내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선 후보를 돕는 당원과 지방의원들은 제명하거나 출당 조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무소속 후보들이 나름대로의 선거 전략을 세워놓고 치열한 득표전에 임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둘러싼 여야 지도부 및 해당 지역 후보들의 방어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부분도 이번 총선에서 주요 관전포인트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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