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보다 화사한 샛노란 꽃이 시각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4장의 꽃잎과 4개의 수술, 하나의 암술이 한결같이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둥그런 꽃송이 형상으로 뭉쳐 핀 콩알만한 황금꽃들이 축축 늘어진 가지를 온통 뒤덮고 봄 향기를 풍긴다. 꽃의 지름은 4~7㎜로 작지만 20~30송이가 우산모양 꽃차례로 달려 화사하기 그지없다. 그 옛날 선비들이 심기 시작했다고 해서 선비꽃이라고도 불리는 산수유꽃이다.

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화려한 산수유 꽃밭인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이다. 이천시 백사면 도립1리, 경사1리, 경사2리, 송말1리, 송말2리 등 다섯 마을에는 산수유가 대단위 군락을 이루고 있다. 16만5,000여㎡(약 5만 평)에 어린 묘목을 비롯해 100년에서 500년 가까이 된 것까지 1만7천5백여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들어차 있는 것이다.

산수유는 꽃 뿐만 아니라 가을에 익는 열매도 아름답다. 맑고 윤기 나는 붉은 타원형 열매는 예쁘기도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소득원이다. 산수유의 씨와 열매는 말려서 한방 약재(해열 및 강장제)로 쓰이며 과실주를 담기도 한다. 살아서는 고운 자태로 눈을 즐겁게 하고, 죽어서는 뛰어난 효능으로 몸을 보하는 기특한 나무인 셈이다. 현재 백사면에서는 150여 농가가 산수유를 재배하고 있으며 1년에 20톤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약 500년 전 육괴정 주변에 심은 것이 효시

1990년 중반만 해도 백사면에 산수유 군락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이곳의 산수유 꽃밭이 알려지면서 상춘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천시에서는 2000년부터 해마다 산수유 개화시기에 맞추어 이천백사 산수유꽃 축제를 열었다. 13회를 맞는 올해의 산수유꽃 축제는 4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리지만 꽃샘추위로 만개 시기는 이보다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산수유는 개화 기간이 길어 4월 하순까지는 꽃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육괴정 담 너머로 핀 산수유
백사면이 산수유 마을이 된 효시는 약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립리에 육괴정을 세우면서 느티나무와 산수유를 심은 것이다. 이천시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된 육괴정은 1519년(중종 14년) 기묘사화로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했다.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여러 차례 중건하면서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정면 9미터, 측면 3.78미터 규모의 건물 및 이를 둘러싼 담장과 대문이 있는 사당 형태로 변모했다.

육괴정(六槐亭)이라는 이름은 엄용순을 비롯하여 김안국, 강은, 오경, 임내신, 성담령 등 여섯 선비가 시회와 학문을 논하며 우의를 기리자는 뜻으로 정자 앞에 연못을 파고 그 주변에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은 것에서 유래했다.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 중에 세 그루가 고사하고 나머지 세 그루만 살아 있었는데 후손들이 새 느티나무 세 그루를 다시 심었다.

소중한 천연기념물인 반룡송과 백송

도립리 어산 마을의 반룡송도 들러볼 만하다. 천연기념물 제381호로 지정되었으며 하늘에 오르기 전에 땅에 서리고 있는 용이라 하여 반룡송(蟠龍松)이라 불린다. 수령 500년 정도로 나무의 높이는 4.25미터,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1.83미터에 이른다. 약 2미터 높이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갈라진 모양이 특이하다. 흡사 용틀임하는 용처럼 가지가 기묘하게 비틀려 엉겨 있다.

반룡송은 일만 년 이상 살아갈 용송(龍松)이라는 뜻으로 만년송이라고도 불린다. 이 나무를 훼손하면 반드시 화를 입는다는 말이 전해지며 실제로 이 나무의 껍질을 벗긴 사람이 병을 얻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연기념물 253호 신대리 백송
백사면 신대리에는 천연기념물 253호인 백송이 고고하게 서 있다. 신대리 백송은 줄기가 아래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고 한 줄기는 위에서 다시 갈라져 세 줄기가 나무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16.5미터,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약 2미터이며 잔가지가 발달해서 균형 잡힌 둥근 모양을 보인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약 230년 전, 전라도 감사를 지낸 민정식의 조부인 참판 민달용의 묘소에 기념식수한 것이라고 한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져서 흰빛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백골송이라고도 불리는 백송은 중국이 원산지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었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로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알려주는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나들목이나 영동고속도로 이천 나들목을 이용한다. 이천에서 이포 방면 70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도립리라는 마을 입구 표지판이 서 있는데 이곳을 포함한 인근 마을이 산수유 군락지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이천으로 가는 버스를 탄 다음, 도립리 및 송말리 방면 23-8번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축제 기간에는 엑스포행사장(설봉공원)을 출발하여 이천터미널 앞-시민회관-보건소 사거리 선경아파트-백사중학교-반룡송 입구를 거쳐 행사장 입구로 가는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빛깔이 화사한 도립리의 산수유꽃
# 맛있는 집

이천시 사음동에 있는 옛날쌀밥집(031-633-3010)은 이천쌀밥으로 유명하다.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한 벼를 골라 쌓아놓고 그때그때 도정하기 때문에 언제나 햅쌀밥처럼 기름이 반지르르 도는 밥맛이 일품이다. 된장과 고추장을 직접 담그고 청국장도 직접 메주콩을 띄워 상에 올린다. 제육 보쌈, 굴젓, 조개젓, 게장, 깻잎장아찌, 무말랭이, 무장아찌, 장조림, 감자조림 등 20여 가지 반찬이 짜지 않고 착 감치는 맛이다. 그 밖의 추가 메뉴로 불고기, 한우 갈비, 더덕구이, 홍어회와 찜 등도 낸다. 국악 가락이 은은하게 울리는 가운데 한복을 차려입은 직원들의 모습도 보기 좋다.


1519년 엄용순이 세운 육괴정
천연기념물 381호 도립리 어산마을의 반룡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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