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의 속박을 근본주의적으로 거부하는 프리 뮤지션--프리 재즈인지 프리 뮤직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은 자기만의 음악을 위해 정진한다. 그러나 나는 자꾸 뒤로 숨고 … , 부끄럽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뾰족한 방법이 없다. 자신만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편한 길로만 가려는 습성이 안타까울 뿐이다. 해야할 것을 회피하는 나 자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G20에 들었다고, 세계 4대 스포츠 대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떠들썩하지만 강 선생처럼 자기 길을 고집해 온 예인들에 대한 홀대를 나몰라라 하는 것은 위선이다. 길이와 다양성에서 일본과 우리는 아직 현격히 차이 난다. 겉멋만 존재한다. 재즈뿐 아니다. 그 와중에 강 선생은 제대로 가고 있다. 결국 그들이 성공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시대 음악은 갈수록 소비자, 즉 대중의 관점에 더욱 비중을 둔다. 특히 대중 음악 작곡의 경우, 안무나 청중의 반응 등 음악 외적 문제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재즈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대중과의 접촉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자신의 작업에 몰입하는 자들이 가장 '정확한'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언젠가는 진정한 음악이 대우 받는 때가 오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하고 보니 내가 더 초라해 지는 것도 같고..... (그는 '옳은 길' 혹은 '아름다운 길'이라는 주관적 표현 대신 정확한 길'이라 표현했다. 객관적, 나아가서는 과학적이라는 함의까지 포함하고 있는 그 어휘는 진정한 재즈에 대한 고민과 탐색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

진짜 용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맨앞에서 돌격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쏟아지는 총알을 피하려 자꾸만 숨어드는 것 같은 형국 아닌가. 결국 나는 프리의 길과는 멀어졌다

젊은 재즈 뮤지션들이 내 연주를 듣고 재즈의 길로 들어섰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그럴 때면 솔직히 부끄럽다. 예전에 나는 재즈를 위해 태어났다, 재즈를 위해 헌신ㆍ고뇌한다고 자신해 왔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젊은 재즈 학도를 위해 변변한 힘도 못쓴다는 생각이다.

사실 프리 재즈의 세계적인 흐름으로 보자면 선생은 그리 앞선 게 아니다. 그렇다고 미학적으로 성취도가 낮다거나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그에게는 그만의 것이 있다는 사실이 진정으로 중요하다. 아무도 넘보기 힘든 절대적 독창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두고 한국적이라 해도 좋고 동양적이라 해도 좋다. 확실한 사실은 서구 재즈의 접근법으로는 모방할 수 없는 고유의 경지라는 점이다

그럼, 같은 동양권인 일본은 왜 '동양적 재즈'가 없나? 그들의 천재성은 모방하는 데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적어도 그들의 재즈에는 일본적인 것이란 없다. 그러나 강 선생의 연주를 눈 감고 들어보라. 완벽하게 한국적인 게 느껴진다. 우리 산천을,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다니는 기분이 단박에 든다. 한국적인 가치를 굳이 의도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의 삶 모든 것이 녹아 든 것이다. 그의 음악은 서양인은 물론 일본인도, 흉내조차 못 낸다. 음악이란 살아 온 환경의 자연스런 총합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에는 이 변화무쌍한 한국에서 살아 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면 내 음악은 어떤가? 나는 삶에서 이렇다 할 큰 굴곡은 못 느꼈지만 내가, 우리가 겪은 많은 일을 내 음악 속에 고스란히 녹이려 애써왔다. 한국인들이 평균적으로 겪는 수고로움, 사회에서의 고생, 시대적 고난….

개인적으로 봤을 때, 한국에서 재즈를 해나간다는 것은 전쟁이다. 그 싸움터에서 강씨와 꿋꿋이 동행해 온 박재천 부부는 지켜져야 할, 소중한 부분이다. 문예진흥기금의 지원 항목에서 재즈는 아예 빠져버린 현실을 돌아볼 때 더욱 그렇다.

자, 음의 재현과 학문적 탐구란 측면에서 프리 뮤직에 접근해 보자.

먼저 쇤베르크, 바르톡 등 12음 기법파의 접근 방식, 즉 기보에 의한 재현이 있다. 다음, 녹음 등의 수단으로 음을 채취해 그를 천착하는 방식이 있다, 그렇다면 강씨의 프리 뮤직이 앞으로 어떤 양태로 존재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의 음악은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방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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