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 가장 무서운 전염병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도시 전체를 거대한 장례식장으로 만들었던 천연두와 결핵, 콜레라, 흑사병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천연두는 오랫동안 인류를 위협했던 최악의 전염병으로 손꼽힌다.

조선시대에 두창(痘瘡)·포창(疱瘡)으로 기록됐던 천연두는 홍역과 함께 마마로도 불렸다. 마마는 왕과 왕자 등을 부르는 극존칭인데, 두창을 일으키는 귀신을 마마로 불렀다. 치사율이 높았던 천연두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 천연두에 대한 두려움이 큰 나머지 북한산에 여제단을 만들어 마마신에게 제사도 지냈다.

천연두는 얼마나 오래된 병일까? 인도에선 기원전 1,500년쯤, 중국에선 기원전 1,100년쯤 천연두로 보이는 질병에 대한 기록이 남겨졌다.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도 천연두를 앓은 것처럼 보이는 흔적이 보인다. 천하무적으로 불렸던 로마군도 천연두 때문에 전투력을 잃었고, 로마군이 머물렀던 도시에는 천연두로 인한 사망자가 쌓였다.

유럽에선 천연두가 정치적 혼란을 불렀다. 왕이 천연두 때문에 갑자기 목숨을 잃으면 왕위 계승 논란이 생기곤 했다. 멕시코 중앙 고원을 중심으로 번영했던 아즈텍 문명이 16세기에 몇 명 되지 않는 스페인 침략자에 패망한 까닭도 천연두였다. 아즈텍족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기에 스페인에서 건너온 천연두에 맥없이 쓰러졌다. 유럽 제국주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천연두 면역력일 수 있는 셈이다.

그렇게 무섭던 천연두도 예방접종 앞에선 약했다. 18세기 말 영국인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 접종법을 개발했고, 예방접종할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천연두에서 안전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천연두는 20세기 후반까지 기승을 부렸다. 한국 전쟁 기간에만 수만명에게서 목숨을 앗아간 천연두는 1967년을 끝으로 한국에서 자취를 감췄다. 1977년 소말리아에서 발생한 환자를 끝으로 천연두에 걸린 사람은 없었고, 세계보건기구는 1980년 5월 8일 "지구상에 천연두가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이상준기자 jun@hk.co.kr